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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만드는 교사와 훈련생들
빵을 만드는 교사와 훈련생들

장애인들의 재활 의지를 다지는 안양2동 경수산업도로변에 위치한 관악 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청결함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제과제빵실은 아담했다.

김종순 교사의 지도에 따라 다섯 명의 장애인이 빵을 만들고 있었다. 나란히 둘러서서 빵을 만드는 손길이 피를 나눈 한 형제처럼 정겹게 보였다.

믹싱기에서는 생크림이 휘핑되고, 장애인들의 희망처럼 하얗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숙성실에서 꺼내 왔다. 순간, 작업대에는 밀가루가 깔려지고 김종순 교사는 날렵한 솜씨로 반죽을 뚝뚝 떼어 저울에 얹는다. 집었다 놓으면 놀랍도록 정확한 45g이다.

분할된 반죽을 공처럼 둥글고 매끄럽게 굴려 빵 모양을 만드는 훈련생들의 솜씨가 날렵하다. 여기서 일하는 장애 훈련생들은 2~30대로 2~3년 숙련된 경력자들이다.

크림빵, 소보루, 식빵(우유, 옥수수), 팥빵, 쿠키 등이 종류별로 척척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처럼 둥글게 굴려진 반죽에 한 훈련생이 팥소를 얹자 일행은 단숨에 팥빵을 만들어 차곡차곡 팬에 담아놓는다.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빵이 가득 담긴 팬을 스스로 알아서 척척 오븐에 넣는다.

한 쪽에서는 훈련생 이모씨가 혼신을 다해 짤주머니로 쿠키 반죽을 팬 가득히 짜내고 있었다. 줄무늬 곡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정교한 모습이 영락없는 작품이다. 기능이 숙달되었음에도 중량을 측정하는 등 정교한 작업은 여전히 교사의 몫이다.

쿠키를 짜는 훈련생
쿠키를 짜는 훈련생
오븐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빵이 익어 가는 시간조차 훈련생들은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말없이 기자재를 정리하며 청소하는 모습이 오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다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빵을 오븐에서 꺼내 식히고, 빵의 배를 갈라 방금 휘핑한 생크림을 넣고, 슬라이서에서 식빵을 잘라 포장하는 동안 작업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쿠키를 포장하는 훈련생에게 "몇 개씩 담아요" 물었더니 "여~어얼개" 어설프게 손가락까지 편다. 정신지체에 언어장애까지 중복장애로 말은 어눌했지만, 순수하고 해맑은 표정은 천사처럼 아름답다.

교사가 자리를 비워도 훈련생들은 묵묵히 일만 할 뿐 요령을 피우는 일이 없다. 포장된 먹음직스런 빵들이 출입구 판매대로 옮겨졌다. 일정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본격적인 청소로 이어진다.

행주로 숙성실 칸칸을 틈새까지 꼼꼼히 닦아내고, 빵을 구었던 팬은 유분 없이 닦은 후 오븐에 구워낸다. 어느 곳을 손가락으로 훑어도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청결했다. 청소가 끝날 무렵, 폭폭 삶은 행주와 면 장갑이 눈처럼 하얗다.

작업대 아래 공간의 문을 열어보니 전부 냉장고다. 휘핑 크림이며 계란에서 통조림 캔까지 모든 재료들이 신선함 유지를 위해 냉장 보관되어 있었다.

김종순 교사는 "면역력이 약한 장애인 시설이라서 철저한 소독과 위생은 기본이고, 작업 이전에 청소부터 시작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요. 재료는 항상 신선하고 좋은 것을 쓰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며 빵을 만들지요"라고 말한다.

정성이 듬뿍 담긴 사랑의 빵은 500원부터 2만5천원에 판매된다. 하루 전, 케이크나 빵 10개 이상을 전화로 주문하면 배달까지 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제품이 원칙적으로 당일 제조된다. 즉석에서 휘핑한 생크림 케이크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축하용 폭죽이며 양초까지 꼼꼼히 챙겨주고 있다.

서른이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청순하고 애띤 한 훈련생은 "집에만 있다가 빵 만드는 일을 배우며 생전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라고 말한다.

포장하는 훈련생
포장하는 훈련생
재료비 등 제반 경비를 제외한 이익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 퇴근하며 일한 장애인들에게 작업 능력에 따라 20~30만원씩 차등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안양시에서 설립하여 천주교 사회복지회에 위탁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복지관의 제빵 훈련은 1998년 5월, 로타리클럽(2620지구. 3490지구. 3750지구)에서 장애인의 재활의지에 필요한 기자재를 복지관에 기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장성락 팀장은 "앞으로도 장비 후원이 더 있어 준다면 많은 장애인들에게 훈련의 기회가 돌아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관악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장애인 훈련생을 모집, 작업장에서 기술을 연마시켜 취업까지 알선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불황 속에서 취업이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같은 불황 속에서도 장애인들이 느끼는 취업은 더욱 더 어려울 수밖엔 없다. "가진 것은 없어도 나눌 것은 많다"는 광고처럼 우리의 관심을 쏟을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된다.

빵 판매대에서
빵 판매대에서

덧붙이는 글 | 관악 장애인 복지관 ☎031-389-2789 (내선232)

[우리안양]에도 송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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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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