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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이 뛰어나고 잘 보존되어 있는 외환은행 합숙소. 건물아래는 다량의 백제유물이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외관이 뛰어나고 잘 보존되어 있는 외환은행 합숙소. 건물아래는 다량의 백제유물이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 황평우
서울시는 8일 "부지 5000여평, 연면적 3800여평의 옛 합숙소 건물 5개동을 리모델링해서 주말이나 1∼8주 동안 합숙하면서 영어만 사용하는 영어체험마을을 조성하여 오는 10월 개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곳은 초기 백제의 유물과 유적 등이 발굴돼 사적 11호로 지정된 곳으로,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활용이 가능한 곳이다.

그동안 문화재 보호 구역내의 주민들은 개발제한으로 재산상의 불이익을 많이 받아 왔다.

풍납동 주민뿐만 아니라 경주, 부여, 공주, 익산, 안동 등 전국의 많은 지역들이 우리나라에 다양하게 분포한 문화재로 인해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최근 문화재보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지역의 어려움을 고려해 다양한 정책을 계발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환은행 본관.  영어체험마을이 아니라 한성백제기념관으로 조성해야된다는 여론이 높다
외환은행 본관. 영어체험마을이 아니라 한성백제기념관으로 조성해야된다는 여론이 높다 ⓒ 황평우
물론 시민단체도 문화재보호법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에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문화재보호구역내 개발은 해당문화재를 잘 보존하며, 지역 주민에게 부가되는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하며, 해당문화재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 시설물의 활용계획도 전체 주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이 가도록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충분한 활용계획을 수립하고 공청회와 설명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풍부한 물적, 정신적 토대(Capital 또는 Foundation)를 단순히 보존, 관리하거나 훼손을 막아내자는 수동적 자세로 일관했으며, 최근 활용차원에서 공론이 대두되기 시작했으나 이제는 경영(Managemant)이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한다. 1차원적인 좁은 범위가 아니라 전체를 경영(운용)하는 3차원적인 종합 방향의 큰 개념의 정책 계발이 필요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논리에 의해 시작된 부여의 '백제역사재현단지'는 4500억원이 투입되기로 되어있고, 2005년 완공 예정이지만 그 시설의 활용계획은 아직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경주 역시 외부 관광객이 숙박(대형호텔) 및 이용하는 부대시설들의 경우 외부 대자본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 즉 경주의 역사문화를 토대로 한 경제적 이익은 외부 대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실제로 경주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거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되는 풍납동 옛 외환은행 합숙소의 활용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시에 의하면 이 합숙소에는 한 번에 400명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영어체험마을 교육 참가자들은 합숙기간(최대 8주) 동안 영어만 사용하게 된다. 또한 합숙을 위해 마을에 들어갈 때도 영어권 국가에 입국하는 것처럼 모형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을 받고 영어식 이름을 부여받으며, 마을 안에서는 모형 달러 등 영어권 모형 화폐만 사용해야 하며, 공항이나 호텔, 우체국, 가정 등을 실제와 유사한 세트로 재현해 영어권 문화와 생활을 익힐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카페나 편의점 등 일부 편의시설은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해 영어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이번 서울시의 영어체험마을 활용계획이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올 혜택은 없다는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합숙을 하면서 인근 주민들과는 더욱 괴리가 발생할 것이며, 변형된 시립영어학원에 불과한 계획이다.

현재 옛 외환은행 합숙소 진입로는 차량 한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도로이다. 합숙생들의 원활한 유입을 위해 또 인근 주택을 매입하고 길을 넓힐 것인가? 묻고 싶다. 또한 서울시는 1월 5일 발표한 언론보도의 해명자료에 영어체험마을을 한시적으로 조성·운영한다고 밝혔다.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곳에 121억 원의 혈세를 낭비하겠다는 말인가?

외환은행 합숙소 정문과 담장.  입구가 좁아 길을 확장해야하며, 담장으로 둘러져 있어 마을보다는 수용공간 즉 시립영어학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환은행 합숙소 정문과 담장. 입구가 좁아 길을 확장해야하며, 담장으로 둘러져 있어 마을보다는 수용공간 즉 시립영어학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 황평우
현재 풍납토성 일대를 발굴 조사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발굴지를 문제의 외환은행 합숙소 터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겨우 한시적으로 1∼2년을 사용할 공간을 121억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건물 리모델링 비용으로 78억원을 낭비한다는 말인가?

서울시는 적은 비용을 받으며 운영하겠다고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영세민들은 단 돈 몇 만원이 없어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영어체험마을은 가진 자들의 시립영어학원에 불과한 것이며, 풍납토성의 백제 역사·문화의 정체성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옛 외환은행 합숙소 건물 5개 동은 1983년에 건립되었지만 서울시 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5개 건물 중 한 개 동 정도는 한성백제역사를 연구하며,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여 풍납동 주민들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서울시는 해명자료를 통해 풍납토성 발굴유적에 대한 성격이 완전히 규명되는 시점에 영구 구조물형태의 박물관을 조성하겠다는 실로 답답하고 몰역사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풍납토성의 유물이나 역사성 규명이 맨땅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다.

실로 엄청난 고통과 어려움을 헤쳐내고 보존한 외환은행 합숙소 건물인지 모르고 있는 서울시가 안타까울 뿐이다.

나머지 4개 동도 노인층, 주부층, 저소득층, 청소년, 어린이 등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어야하며, 모든 시민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즐기며 이용되어야 하는 공간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공간의 활용에서 발생되는 경제적 이익이 혹시 있다면 모두 그 동안 고통받았던 풍납동 지역 주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계획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건물을 재활용하며 복합문화센터로 다시 태어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분단의 상징인 동서독 경계선의 챨리검문소가 박물관으로 활용하며 입장료 수입을 올리고 있는 상황을 언제까지 부럽게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서울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은 것이다. 이 터는 지난 2001년 2월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건물 형태와 용도를 바꾸려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시는 2월부터 바로 공사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서둘러 밝혔지만, 아직 문화재청에 심의 신청도 내지 않았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가 거부되면 영어체험마을 설립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영어체험마을이건 복합문화공간이건 무원칙한 서울시의 옛 외환은행 합숙소 건물 활용계획발표로 기대감에 부풀었던 풍납동 주민들은 규정과 제도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서울시 때문에 또 한번의 고통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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