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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 조선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1938년 4월 1일)

암울한 일제 식민지의 삶을 살아가던 한 젊은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반세기를 훨씬 지나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해방 50년이 넘도록 식민 역사조차 청산하지 못한 채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쪽 출신의 북한 노동당 평당원의 이야기를 그린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은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이진선. 1938년 일제 식민지하의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입학한 그는 민족해방을 고민하는 학우들과 사상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 제적당한 뒤 몇 년간의 일본 유학 후 귀국, 본격적으로 조국해방운동에 가담한다.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 오는 가운데 유격전을 준비하던 중 8·15를 맞이한 그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새로운 해방 조국을 꿈꾸며 조선공산당 운동에 적극 투신한 후 1946년 월북, 한반도 북쪽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잠시의 소련 유학 시절을 제외한 평생의 삶을 조선노동당 평당원으로 반도 북쪽에서 영위해 온 그가 1998년 삶을 마칠 때까지 꾸밈없이 적어간 사색의 편린들은 그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한 사람의 사회주의자로서 사회주의 혁명에 삶을 바친 그였지만 그의 일기에는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나라, '아름다운 집'을 짓고자 했던 민족과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진하게 베어있다.

무엇보다 그가 견지하고 있는, 본래의 (사회주의의) 길을 점점 벗어나고 있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은 그가 맹목적으로 이념만을 추구했던 자가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유일사상이란 발상 자체가 얼마나 사회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는가. 굳이 따지자면 한낱 정책노선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일러 사상, 그것도 유일이라는 이름으로 당 전체에 확립하려는 모습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 숭배의 극단적 형태가 아닌가."(1967년 8월 29일)

방향을 잃고 엇나가는 체제를 무력하게 바라보고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남북을 아우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민족주의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집>은 한 사회주의자의 혁명 일기이면서 동시에 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여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꾸밈없는 자기 고백과 그 사랑 속에서 더 없는 기쁨을 누리는 순수한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여느 누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만날 수 있다.

"아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다. 그를 부인하면 할수록 그가 가슴 깊이 다가온다. 그를 잊으려는 결심이 오히려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느새 신여린은 내 마음자리 깊숙이 들어와 있다."(1939년 9월 5일)

"여린에게 답장을 받았다! 여린의 첫 편지다. 그동안 줄곧 답장이 오지 않아 수많은 밤을 뒤척여야 했다.…(중략)… 여린은, 최근에 보낸 편지를 처음으로 받았다고, 그전에 보낸 편지들은 어머니께서 감추어두어 이제야 모두 돌려받았다고 했다. 앞으로는 우편배달 시간엔 꼭 나가볼 생각이나 마음을 놓으라며. 긴 고뇌가 단숨에 풀리는 환희의 순간이다. 저절로 흥얼거린 곡이 베토벤의 '합창'이란 사실을 깨닫고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웃었다. 지금 일기를 쓰는 이 순간까지."(1940년 9월 26일)


전쟁통에 목전에서 죽어간 아내와 자식을 묻으며 혁명을 완수하겠노라 다짐한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또 다른 인연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가슴에 간직한 채 생을 마치는 그의 모습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저자 아닌 저자가 서두에 언급한 것과 같이 사회주의 혁명에 온 삶을 바친 사람에 관한 것이기에 이따금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잣대나 정서에 어긋나는 기록도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념에 대한 선입견을 잠시라도 벗고 진정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일생을 살아온 한 지식인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가 갖고 있던 순수한 민족애와 휴머니즘을 쉽사리 부정할 수 없으리라 느껴진다.

한반도와 그를 둘러싼 여러 나라의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읽을거리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시간들이 그가 살아온 -우리도 부분이나마 함께 겪어온- 격동의 세월을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가 그가 살아갔던 그 때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음은 단지 나만의 생각일까.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반도 남쪽에서 태어난 청년인 나에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했던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너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한반도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가 사랑했던 동지의 손을 거쳐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집>은 출판 직후 잠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가 조중동의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금방 묻혀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왜 조중동이, 특히 조동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은 책을 펴들면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새해를 시작하는 이때,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미 읽었다면 다시 한번 책을 꺼내 들어도 괜찮으리라 생각된다. 한국 근, 현대사의 격동의 시기 속에서 자신의 삶에 정직하게 마주섰던 그의 모습은 동일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훨씬 오래전 그가 먼저 접했을 한편의 시를 그의 일기와 함께 옮겨 적어 본다.

1941년 12월 30일 화요일

"윤동주 형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졸업기념으로 시집 '병원'을 내려고 19편을 묶었는데, 이양학 교수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만류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 가운데 내게 어울릴 만한 시 한편을 보낸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감성이 제법 절제되어 있는 그의 시가 가슴에 와닿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아름다운 집

손석춘 지음, 들녘(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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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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