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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이게 뭐야.퉷. 퉷."

잘 아는 누나가 알려준대로 물과 계란의 비율도 잘 맞추고, 눌러 붙지 않게 젓가락으로 수시로 저었는데, 계란탕의 맛은 제가 맛 본 것 중에서 최악이었습니다.

전라도 땅에 객지생활을 한 지 5년. 학생때는 기숙사 생활로 기숙사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지만, 직장을 잡은 후 자취를 시작한 2003년도 부터는 음식을 혼자 해 먹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물을 많이 넣어서 물밥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법 쌀도 잘 씻고, 물 조절도 잘해서 생쌀(?)밥이나 삼층밥, 특히 물밥은 만들진 않습니다. 특히 제가 잘 끓이는 라면에 흰 쌀밥을 말아 먹으면,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입니다. 밑반찬이야 1달에 한번씩 집에 들러 어머니께서 해 주신 걸 싸와서 먹는다지만, 국은 제가 직접 끓여 먹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아침식사에 국이 없으면, 밥을 잘 먹지 못하는 까다로운 입을 가지고 있어서 더합니다. 아침엔 입맛도 없는 데다가 아직 아침의 설잠을 덜 깬 터라 국없이 뻑뻑한 밥을 넘기기에 부담이 가죠.

누구한테 다행인 줄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까다로운 입맛으로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습니다. 어머니의 음식의 주특기는 국이나 탕 같은 국물이 있는 음식입니다. 김치 반찬 하나만 있어도, 어머니의 국만 있으면 밥 한그릇은 뚝딱이었으니까요.

입맛이 없는 아침에는 주로 짜지 않고, 은은한 얼갈이 배추 된장국, 쇠고기 무국, 사골국이 올라오고, 점심에는 보다 입맛을 돋구는 김치돼지찌개, 호박잎을 곁들인 두부된장찌개가, 저녁에는 어머니의 음식의 백미인 버섯전골, 육개장, 해물탕이 단골손님입니다.

국없이 밥을 먹어 입맛이 떨어진 저는 매번 밥을 사 먹을 수도 없고, 라면에 말아먹는 것도 질렸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재료로 해 먹기 쉽다는 국을 제가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 실험재료는 미역. 같이 사는 형님이 호주에 있을 때, 가장 쉽게 해 먹을 수 있다며 여러번 끓였줬던 기억이 났고, 마침 마른미역이 세봉지나 있어서 재료를 사러 멀리 나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선 미역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마른 미역을 깨끗한 물에 불려 놓고 간장간으로 하다가 국물이 새까맣게 될 수도 있으니까, 소금간으로 간을 맞췄습니다. 이건 다 형님이 한대로 따라한 겁니다

뭐 크게 어렵지 않더군요. 아니 쉬웠습니다. 간도 입맛에 맞았고, 냄새도 그러저럭 입맛을 댕겼습니다. 허나 잘 끓고 있는 미역국에 뭔가 하나가 빠진 듯 보였습니다.

쇠고기였습니다. 분명히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미역국엔 적당히 썰어 놓은 국거리 쇠고기가 있었습니다. 끓고 있는 미역국을 두고 쇠고기를 사러 나갈 수도 없었지요. 하지만 전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맛은 몰라도 재료면에서 뒤지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냉장실을 급하게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남자 둘이 사는 자취집에 특별한 뭐가 있을리 없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냉동실 문을 열자 마자 쌓여 있는 김이 보였습니다. 미역의 사촌(?) 김을 넣고 끓여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평소에 김을 좋아했던 저는 짭짤한 김과 약간 싱거운 미역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분후 저의 위대한 퓨전 김미역국이 완성됐습니다. 상을 다 차려놓고, 멋지게 시식을 시작했습니다.

"퉷…. 이런…."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김의 독특한 짭짤한 맛은 온데 간데 없고, 미역과 뒤엉켜 모양도 맛도 그야말로 미궁이었습니다. 전 그때야 알았습니다. 진정 음식을 못하는 것은 좀 짜고, 맵고, 단 것이 아니라,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저의 퓨전 김미역국은 싸늘하게 식어 쓰레기 봉투에 고스란히 버려졌습니다. 이 후 계란탕, 김치찌개도 모두 다 실패였습니다.

전 오늘도 슈퍼에 가서 즉석미역국을 사 먹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입니다. 즉석 미역국도 제가 끓인 어떤 국보다도 맛은 있지만, 입맛엔 맞지가 않습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을 그리며, 허기진 배를 채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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