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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22일 23시경 방사능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한 영광핵발전소 5호기, 사고가 발생한지 3주째가 되고 있지만 한수원측은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2003년 12월 22일 23시경 방사능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한 영광핵발전소 5호기, 사고가 발생한지 3주째가 되고 있지만 한수원측은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최고의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운영돼야 할 원자력발전소 5호기가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난 지 18일이 지난 9일 현재까지도 정확한 원인규명을 못해 빈축을 사고 있다.

영광원전측은 "유출된 방사능은 인체에 전혀 해가 없을 정도"라고 밝혔으나 주민대책위와 환경단체의 반발은 물론, 영광원전 인근 계마리와 성산리 주민들이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등 갈수록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방사능 감지기 정상 작동했지만 오작동으로 착각

방사능 유출사고는 지난해 12월22일 밤 11시22분 비상대책기구 건물내에 있는 기술지원실의 방사선 감지기가 경보음을 울리면서 시작됐다. 비상대책기구는 사고발생시 수습활동을 펴기위해 근무자가 들어가는 곳으로, 이곳의 감지기가 경보음을 발산하는 것은 공기중에 방사능이 퍼졌다는 비상사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원전측은 감지기의 경보를 단순한 오작동으로 여겼다. 김연수 영광원전 소장은 "감지기 경보가 울린 것은 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반상황이 그렇지 않아 오작동으로 생각했다"며 늑장대처 이유를 해명했다.

단순 오작동으로 판단한 원전 관계자들은 6호기의 감지기를 떼어와 5호기에 설치하는 등 12월26일까지 방사능 유출 가능성은 배제한 체 엉뚱한 곳만 헤매다, 12월27일 터빈건물 집수조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자 관련설비를 차단하고 29일 원자로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최초 경보가 울린후 4일 17시간 동안 오·폐수 처리장을 통과한 방사능이 함유된 물 3500여t이 바다로 방류된 후였다.

이에 대해 발전소측은 "배출 방사능량은 63.9메가베크렐(MBq)이며, 배출 방사능에 대한 주민선량 잠정 평가결과 유효선량 기준치인 0.03밀리시버트(mSv)의 1/61000 수준이어서 인체엔 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해수 및 토양 시료에서도 방사능량은 평상범위 이내로서 인공핵종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광주민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원전측의 발표와 대처에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방사능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발전소장 "순수계통 유입 이해되지 않는다"

8일 오후 영광원전 5호기 방사능 유출사고와 관련해 환경단체 및 영광원전 대책위 관계자들이 발전소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8일 오후 영광원전 5호기 방사능 유출사고와 관련해 환경단체 및 영광원전 대책위 관계자들이 발전소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지난 8일 오후2시경 환경운동연합, 반핵국민행동, 영광원전범군민대책위 관계자들은 영광원전을 방문 원전측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고 사고경위와 대책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김현수 영광원전 소장은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잘못했다"고 말했다.

영광원전측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1차 냉각수가 탈염수 공급계통 모관으로 유입돼 방사능이 비상대책기구 건물과 실험실을 통해 터빈건물 집수조와 폐수처리장을 거쳐 바다로 유출됐다는 것.

1차 냉각수는 핵 연료봉을 냉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탈염수는 바닷물에서 염기와 각종 미네랄을 제거한 순수한 물로써 냉각수로 쓰이며 나머지는 순수 공급 배관을 통해 보조건물이나 실험실, 비상대책기구 등에 공급돼 세척 등 다용도로 쓰인다. 때문에 순수계통에는 방사능 함유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밸브를 설치하는 등 3중의 역류방지 장치가 돼있다.

이번 사고는 순수계통에 방사능 함유배관을 흐르는 물이 유입돼 발생했다. 특히 3개의 밸브를 모두 역류해 방사능에 오염된 원자로 냉각제가 순수계통으로 유입된 것은 '중대사고'라는 지적이다.

영광원전측은 이물질이 밸브에 끼어있어 밸브 디스크 안착 불량이 역류를 야기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김연수 영광원전 소장은 "이것은 현장 검토내용이고 확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한다"며 "방지 밸브가 여러 개 있는데도 역류됐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해 정확한 역류원인을 찾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이날 면담에서 향후 동일 사고발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김 소장은 "원전은 A·B계열 2중 유로로 구성돼있어서 다른 곳도 점검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며 재발가능성을 부인했다.

경보 울린 지 7일만에 주민통보

8일 오후 영광핵발전소 5호기 방사성물질 누출사고와 관련해 환경운동연합 회원 및 기자들이 사고현장방문에 앞서 몸 속 방사능수치를 측정하는 전신계측수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8일 오후 영광핵발전소 5호기 방사성물질 누출사고와 관련해 환경운동연합 회원 및 기자들이 사고현장방문에 앞서 몸 속 방사능수치를 측정하는 전신계측수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영광원전측의 안전불감증은 감지기 경보를 오작동으로 착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2일 최초로 경보가 울린 후 27일에야 방사능 유출을 인지한 원전측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9일 영광 환경감시센터에 사고를 통보했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주민들을 즉시 대피시켜도 부족한데 사고 1주일 뒤에 통보해준 것은"이라며 어이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어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18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믿고 맡길 수 있느냐"고 말했다.

또 이날 면담에서 방사능 유출사건에 대한 정보 및 자료공개를 요구하는 민간단체 관계자들에게 원전측은 "공문을 접수시키면 검토후 공개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이같은 원전측의 태도는 한국형 원전(영광 5·6호기, 울진 3∼6호기)에 대한 주민들의 총체적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과 12월, 원자로 비상냉각 배관에 설치된 열전달 완충판이 영광 5호기에서 3개, 6호기에서 4개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방사능 유출 사고까지 발생하자 원전 인근 주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5호기에서 떨어져 나간 열전달 완충판은 원자로 바닥까지 흘러들어가 원자로 용기에 손바닥 크기의 흠집을 냈다.

이영재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이장은 "원자로 안으로 완충판이 떨어져서 5호기의 경우 원자로 용기에 흠집까지 났다고 해서 걱정하고 있던 차에 방사능까지 유출됐다고 하니 이제는 (무서워서) 못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장은 이어 "원전이 들어선 뒤로 농어업이 안 돼 생계문제로 고민했지만 방사능까지 유출되고 난후에는 생존문제가 돼버렸다"며 "마을에서 전체회의를 했는데 모두들 불안해서 못살겠으니 이주대책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정부와 한수원에 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영광원전 대책위 관계자들의 불신은 한국형 원자로의 설계결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광원전 대책위 위원을 맡고 있는 김성근 교무는 "원래 설계상으로는 순수계통에는 방사능 물질 유입이 안되게끔 돼있는데도 불구하고 3개의 밸브를 역류해 순수계통에 방사능이 유입됐다"며 "우리는 5호기의 방사능 유출을 근본적인 설계 결함 때문이라고 유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면담에서 "IAEA에 보고된 사고 중 영광 5호기와 같은 유형이 있느냐"는 김 교무의 질문에 강환성 영광원자력본부 본부장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해 사태의 심각성을 나타냈다.

한편, 영광원전 5호기 방사능 유출과 관련해 민관 합동조사단이 꾸려질 전망이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한수원, 국무조정실과 협의해서 민관공동조사단을 꾸려 활동에 들어가는 한편, 인근주민 안전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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