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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겸재 정선
양양 낙산사, 겸재 정선 ⓒ 돌베개
겸재 정선은 이 여덟 명승지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 관동팔경도를 두고 유홍준 교수는 '떠나고 싶은 마음, 가보고 싶은 마음을 눈으로 달래 보는 꿈의 그림'이라 하고 그림 속의 관동팔경은 '카메라와 자동차가 없던 시절인지라 더욱 매력적이고 동경의 대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자동차가 있고 카메라가 있는 지금 관동팔경도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카메라로 담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요란한 건축물과 거대한 해수관음상은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에게 눈요기 감은 될지언정 마음을 달래 주는 매력적인 동경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이런 것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낙산사는 유달리 담이 강조되고 있다.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방형의 담은 폐쇄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소쇄원의 담장이 인공과 자연을 적절히 구분하여 인공미와 자연미가 공존케 하는 역할을 하였듯이 낙산사의 담은 옛 것과 새로운 것을 구분 지으며 혼탁한 관광문화가 빚은 질 나쁜 문화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낙산사 담장
낙산사 담장 ⓒ 김정봉
멋을 아는 우리 조상들은 담 하나를 쌓더라도 그냥 쌓지 않고 멋을 잔뜩 부린다. 암키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으면서 상하교차로 동그랗게 다듬은 화강석을 반복하여 박아 아름다운 별꽃무늬를 연출하였다.

낙산사 별꽃무늬 담장
낙산사 별꽃무늬 담장 ⓒ 김정봉
낙산사는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창건 설화와 관련하여 의상과 원효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동해 변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의상이 찾아와 기도 끝에 관음을 만나 이 곳에 절을 지은 반면 그 뒤를 이어 찾아든 원효는 관음보살을 만나기는커녕 봉변만 당한다.

신라 불교의 쌍벽을 이루고 있던 의상과 원효, 왜 그들의 능력은 차이가 나는 것으로 그려졌을까? 의상은 진골 출신이었고 원효는 육두품출신인데다 의상은 엄격성, 규범성을 강조하며 호국신앙을 내세운 반면 원효는 민중과 함께 하며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통일 전쟁을 치르고 난 신라는 새로운 국가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고 그에 맞는 사상은 원효의 것보다는 의상의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의상의 '코드'가 더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의상보다 중생과 함께 하는 원효의 이념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래서 낙산사의 설화에서 무리를 해가며 원효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중으로 의상은 법력이 뛰어난 '반듯한' 승려로 그리고 있다.

낙산사의 창건설화가 대중의 코드에 반하여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던 아니던 한번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고 남아있다.

낙산사 담을 에워싸고 심어져 있는 대나무와 이름으로나마 의상의 숨결이 느껴지는 의상대 그리고 그 북쪽 밑으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바닷가 석굴 위에 지어진 홍련암이 남아있다.

대나무는 의상의 낙산사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다
대나무는 의상의 낙산사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다 ⓒ 김정봉
홍련암은 바닷가 석굴 위,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암자로 법당 밑으로 10cm의 구멍을 뚫어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게 하여 특이하다. 네댓 명의 어린애들이 그 구멍을 통해 보면서 신기해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의상대는 낙산사 하면 떠올리는 일출의 명소로 1926년 만해 한용운이 이 곳에 머물 때 세운 것으로 10년 뒤에 폭풍우로 무너진 것을 현대에 와서 개축하였다.

의상대에서 내려다 본 홍련암
의상대에서 내려다 본 홍련암 ⓒ 김정봉
낙산사는 낙산비치호텔 옆으로 들어가는 방법과 7번 국도와 바로 이어지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일주문-홍예문을 통해 들어가는 정문으로 가길 추천한다. 비치호텔 쪽으로 가게되면 일단 주차장이 번잡하여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며 절에 들어서더라도 신축을 한 보타전이 눈에 거슬리게 된다.

홍예문은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를 참배하고 나서 낙산사에 들렀을 때 만든 것으로 강원도 26개의 고을이 힘을 모아 26개의 화강석을 무지개(홍예 虹霓) 모양으로 조성하였다.

홍예문
홍예문 ⓒ 김정봉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금산 칠백의총을 방문한다고 하여 관계자들이 30km에 이르는 흙 길을 보수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고 하는데 결국은 헬리콥터를 타고 방문했다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홍예문 만들 때도 그런 부산을 떨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래도 건진 것은 있다. 그동안 흙 길이었던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조가 방문하여 낙산사는 크게 중창하였고 삼층석탑은 7층으로 올리고 동종도 만들었다고 하니 홍예문을 만들 때 부산을 떤 결과 낙산사도 건진 것은 있다.

사천왕문을 거쳐 낙산사 경내에 들면 사방이 담으로 쳐져 아늑함을 주고 정갈하게 조성된 정원이 포근하게 한다. 해수관음상에 이끌려 동종 옆으로 나있는 쪽문을 나가면 해송으로 둘러 쌓인 오솔길을 만나고 별꽃무늬 담의 뒷면을 볼 수 있다. 앞면과 다르게 돌과 기와를 교대로 쌓은 모양이 견고하고 소박해 보인다.

오솔길을 빠져 나오면 해수관음상이 버티고 서있다. 1977년 완성된 높이 16m의 해수관음상은 그 높이가 단일 불상으로 동양최대를 자랑하고 있는데 '신라의 정치적 의도'가 살아난 기분이다. 낙산사의 힘을 보여 주며 대중을 압도하는 분위기. 그 밑에서는 누구나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모두 카메라에 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서 예전의 관동팔경도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해수관음상/그 밑에 서면 누구나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데 불심 때문만은 아니다
해수관음상/그 밑에 서면 누구나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데 불심 때문만은 아니다 ⓒ 김정봉
진전사가 설악의 중심에서 비켜선 까닭은?

지금은 삼층석탑만 덩그렇게 서있는 진전사터. 낙산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속초비행장 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름 꽤나 알려진 실로암 막국수 집이 보이고 거기에서 좀더 전진하면 진전사지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진전사터 아랫마을인 둔전리에 닿는다.

진전사지 삼층석탑/까맣게 보이는 것이 이채롭다
진전사지 삼층석탑/까맣게 보이는 것이 이채롭다 ⓒ 김정봉
둔전리는 진전리였던 것이 둔전리로 변한 것이고 예로부터 탑골이라는 이름이 전해 내려왔다고 하니 이 마을은 진전사와 관련이 깊은 마을이다.

진전사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진전사를 연 분이 도의선사이고 그 분이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해가 821년임을 감안하면 이 시기와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도의선사가 누구인가? 그는 선종의 효시인 가지산문을 연 분이다. 그가 신라에 소개한 선종은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동쪽으로 와서 중국에 소개한 것으로 당대에는 이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에 달마대사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선사가 있었다.

그는 경전이나 해석하고 염불을 외는 것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고 다녔고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진보사상을 가져 신라 땅에서는 배척을 당해 깊은 산골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숨어든 곳이 경주에서는 머나먼 설악이었다. 설악산의 중심지엔 이미 신흥사가 자리잡고 있어 다른 곳을 물색하던 중 이 곳을 찾았을 게다. 이단으로 내몰린 도의선사는 절터를 잡는데도 한쪽으로 비켜 잡았으니 비켜 사는 인생은 끝까지 비켜 사는 모양이다.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이런 배경을 안고 이 곳에 서있다. 멀리서 보면 까맣게 보여 투박해 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까만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태생이 까만 것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련미가 넘쳐 난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과 함께 9세기경에 새롭게 일어난 개성적인 지방호족문화의 작품이면서도 도피안사 삼층석탑이 개성이 넘쳐나고 단순미가 있다면 이 삼층석탑은 1층 기단과 2층 기단에 각각 비천상과 팔부중상을, 1층 몸돌에는 여래를 한 분씩 돋을 새김으로 장식하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낙산사의 설화와 도의선사의 사상을 알고 의상대 일출과 까만 석탑을 보고 나면 설악은 매력적이고 동경의 대상이며 속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된다.

진전사지 삼층석탑
진전사지 삼층석탑 ⓒ 김정봉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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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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