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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대신 손으로 물감놀이 하는 아이들.
붓 대신 손으로 물감놀이 하는 아이들. ⓒ 유성호
밥상으로 쓰고 있는 나무 교자상 위에 스케치북을 펼치고 소반에 12가지 색 물감을 짜서 놀이 준비를 마쳤다. 두 아들 녀석들에게 붓을 하나씩 쥐어주고 조금씩 섞어 색깔 배합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도록 당부했다.

큰 녀석은 그럭저럭 여러 색깔을 만들어 가면서 그림을 그려보지만 솜씨는 '빵점'이다. 무려 한 달이나 미술학원에 유학(?) 보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작은 녀석은 붓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인지 어느새 붓을 팽개치고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댄다.

물감 범벅이 된 작은 아이.
물감 범벅이 된 작은 아이. ⓒ 유성호
처음엔 검지에 물감을 묻혀 스케치북에 찍던 것이 엄지손가락에서 전 손가락으로 늘어나더니 잠시 후에는 아예 손바닥 전면을 이용한다. 이를 지켜보던 큰 녀석은 쭈뼛거리며 '나도 손가락으로 한번 해볼까'하며 짐짓 점잖을 떨면서 검지로 물감을 찍는다.

잠시 후 작은 녀석이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찍어대는 것이 부러웠던 큰 녀석도 끝내 형으로서의 체면도 버리고 손바닥 물감놀이에 동참한다. '이미 버린 몸'이 된 큰 녀석은 초반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발빠르게 발바닥을 이용해 엄마를 기겁하게 했다.

물감놀이의 백미 '손도장'.
물감놀이의 백미 '손도장'. ⓒ 유성호
거실 청소담당인 엄마에게 물감 발자국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녀석도 형에게 질세라 발바닥으로 찍어대기 시작했다. 녀석은 가려운 얼굴을 긁느라 볼에 물감 칠이 한 가득이다. 녀석의 손은 이미 물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도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팔레트 대용 소반 위의 물감색은 어느새 12가지 색이 어우러져 진한 쑥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왕에 나선 물감놀이니 작품 하나씩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녀석들의 손도장을 하나씩 찍었다. 작은 녀석은 살포시 스케치북 위에 손도장을 찍었다. 큰 녀석은 어설픈 터프가이 흉내를 내면서 스케치북을 내리치듯 찍었다. 두 녀석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이들이 거실에 찍은 귀여운 발자국들.
아이들이 거실에 찍은 귀여운 발자국들. ⓒ 유성호
놀이 시작 단 30분만에 녀석들은 흥미를 잃었는지 손을 씻겠다고 자리를 뜬다. 엄마가 출동해 바닥을 닦는다. 녀석들 손에 묻은 물감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목욕 타월에 비누를 발라 씻겨 주었다. 발바닥도 함께. 큰 녀석이 조아리고 앉아 "아빠, 물감놀이 너무 재밌어요"하고 웃는다.

녀석들의 손도장은 액자에 넣어 오래도록 걸어두고 이야기할 작정이다. 엄마, 아빠도 찍을 걸 그랬나보다.

덧붙이는 글 | 물감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노라니 '놀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일부터는 폐품을 이용하던지 해서 사소한 놀이라도 같이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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