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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언제 시작되느냐'로 논란이 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1998년, 99년 때 얘기다. "2000년부터냐, 2001년부터냐". 사실 이런 문제는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다. 따질 필요도 없이 21세기는 2001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력기원 1년부터 1세기가 시작되었으니 서기 100년까지 100년간이 1세기. 101년부터 200년까지 2세기 식으로 셈하여 보면 간단하다.

그런데 그 때 그렇게 왈가왈부했던 것은 100년 단위가 아닌 1000년 단위가 바뀌는 2000년을 그냥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 천년, 영이 세 개나 붙어있는 2000년이 시작되는데, 세기가 안 바뀐다니 너무 밋밋하다. 그러니 21세기를 1년 앞당겨 2000년부터 시작하자,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21세기는 2000년이 원년이다. 아니 모두 그리 양해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1세기가 바로 '문화의 세기'였다. '2004년 우리나라 문화'를 전망해 보자는데 왜 이토록 옛 얘기가 길어지느냐?

문화라는 건 많은 삶들의 스타일이 모여 하나의 유형을 이룬 것이다. 최소한 10년, 아니면 100년쯤 길게 잡아야 어떤 변화가 감지될 터이다. 1년 치 전망을 내는 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의 전망은 구체적인 사건을 들어보자. 피부로 느껴지는 사건을 통해 올해 우리 문화의 큰 흐름 세 가지만 짚어보자.

첫 번째는 지방문화의 등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중앙집중식 문화의 지방분산이다. 노무현정부가 내건 3대 정책 지표중 하나인 지방분권화가 문화파트에서 이뤄지는 현상이다. 문화의 지역분권, 지역분산작업이 실행에 옮겨지는 해이다.

정치적으로는 충청도 어느 곳인가 행정수도 지명이 밝혀짐으로 정치적 지방분산 움직임이 불붙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도 광주에서 '아시아 문화의 메카'를 지향하는 복합문화센터를 기공하므로 지방 쪽으로 무게가 옮겨가는 전환점을 기록할 것이다.

행정수도야 정부가 주요관청을 옮기고 사람을 몰아주면 이뤄지지만 지방을 '문화수도'로 만든다는 것은 인프라만 세운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문화는 삶의 스타일이다. 인위적으로 정해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의 큰 흐름은 많은 시간의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거대한 새 물결(Megatrends)'을 쓴 나이스비트는 '모든 새 물결은 거대도시가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에서 시작된다'고 갈파했다. 광주에서 일고 있는 문화수도 움직임은 문화의 새로운 흐름이 지방에서 중앙으로 불붙어 오르는 발화점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지방이 문화발신의 거점으로 등장한다는 새로운 시점이 된다.

두 번째는 소비자중심 문화의 활성화다.

산업분야에선 주문자 생산 등 소비자 중심으로 돌아 선지 오래다. 미디어 시장에도 멀티미디어의 등장으로 쌍방향 문화, 피드백 문화가 이미 자리잡았다. 독자이자 소비자이던 시민들이 생산자인 기자가 되어 기사를 쓴다. '시민기자'를 2만 명이나 활용하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를 실증한다.

정치에도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즉각즉각 자신의 목소리와 주장을 내세운다. 정치인이란 중계인을 통해서 어떤 정책의 결정이나 변경에 참여하는 추세가 정반대로 바뀐다. 시민이 직접 나선다. 어떤 정책에 대해 바로바로 '좋다나쁘다'를 표현하고 또 집계로 반영한다. 정치의 수용자이자 소비자인 유권자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교육계에도 마찬가지다. 수용자인 학생들의 선택으로 대학이나 과의 운명이 결정되는 사태들이 올해 여러군데에서 가시화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포괄적인 소비자 중심의 추세다.

그러면 정작 문화계의 소비자 중심 추세는 어떤가. 소비자인 관객이 참여하여 작품을 만드는 퍼포먼스가 현대미술의 한 경향이 된지 오래다. 그렇지만 올해는 본격적으로 수용자 중심의 예술활동이 꽃을 피울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오는 9월10일 개막되는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최초로 관객이 참여하여 만드는 비엔날레를 시도한다. 이제까지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전시한다는 비엔날레는 예술총감독을 선정하여 그 총감독이 구상하고 있는 주제와 컨셉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작가들을 전 세계에서 모아 그 구상을 작품과 전시로 펼치는 게 상례이다. 그러나 이번 제5회 비엔날레는 완전히 그 과정을 거꾸로 뒤집었다.

먼저 관객들을 대표할 수 있는 '참여관객(Viewer Participant)'을 선정한다. 그 다음 워크샵을 통해 관객들의 취향을 충분히 듣고 그들과 맞는 작가와 맞춰준다. 마지막으로 작가와 관객이 서로 공동참여로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거친다. 소비자 수용자가 작품을 만드는 생산자에 우선되어있다. 관객에 맞춰 작품이 제작된다. 이 시도는 대규모 복합문화 전시장에 소비자 중심 문화가 자리잡는 모델케이스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체성문화의 각광이다.

소위 전통성과 정체성을 갖춘 문화라야 살아남는다. 가장 돋보이는 게 영화다. 지난 2003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50%를 기록했다.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나라는 미국(95%) 인도(97%)를 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일본도 점유율이 30%대다.

왜 한국영화가 인기인가. 동남아에서 한류(韓流)드라머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배우의 연기가 뛰어나기 때문인가. 그런 면도 다소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드라머의 근저에 유교사상, 가족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년, 수천년 이어온 우리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문화가 가장 경쟁력이 뛰어나다. 올해는 바로 이런 정체성문화가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이제 문화의 세기가 시작된 지 4-5년째, 문화가 정치, 경제, 사회보다 우위의 대접을 받는다는 바꿀 수 없는 대세는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문화가 없는 정치, 경제, 사회는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힘을 발휘 못한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올해의 전망이자, 21세기의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정경뉴스'에 '새해전망'으로 쓴 글입니다. 
문화세기를 맞아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있는 네티즌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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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밥값을 하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 <길이 글인가2>를 발간했습니다. 후반부 인생에게 존재의 의미와 자존감을 높여주는 생에 활기를 주는 칼럼입니다. <글이 길인가 ;2014년>에 이은 두 번째 칼럼집입니다. 기자생활 30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eBook 만들기와 주역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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