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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자신의 분신을 '아바타(avatar)'라고 한다. 아바타는 '화신'이라는 뜻으로 신이 현세를 방문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육체(contemporary body)를 일컫는 힌두 신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소심한 사람이 온라인 상에서는 리더가 되기도 하고, 어린 소년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연애 상담을 하는 등 사이버 세계에서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가상 세계가 아니라 또 다른 내가 인터넷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황상민의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김영사 刊)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사이버 공간을 분석한 책이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비판 모두에 대한 비판을 틀을 마련한 이 책은, 사실 인간 심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꼼꼼하게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풍부한 사례와 참고자료 등을 읽다 보면 우리가 한 쪽면을 과도하게 극대화시키는 편견 속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수년 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여전히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잔인한 게임 등의 예를 들며 사이버 공간이 아이들의 잔혹성을 키운다는 지적에 대해 저자는 사이버란 결국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즉 과거 곤충 채집을 예로 들며, 핀에 꽂힌 채로 제자리에서 빙빙 돌거나, 날개를 파닥이며 천천히 죽어가던 곤충의 모습은 액정화면 속 다마고치의 죽음에 비할 수 없이 생생하고 잔인하다고 말한다.

'익명성의 공간'이라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표현도, 사이버 공간이 '심리 공간'이라는 측면을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물리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 몰라도, 자신의 심리적인 모습은 현실 공간보다 훨씬 명확하게 그리고 더 많이 드러내는 곳이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이버상의 행동에 대한 대처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오해는, 사이버와 현실 공간의 차이이기보다는 인간 심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은 사람을 현실 공간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첫인상을 만드는 과정이 놀라울 만큼 비일관적이고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황상민은 사이버 공간의 매력은 현실 공간에서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할 수 있는 자유의 경험과 유사하며, 자신의 집 안방에서 혼자 비디오를 볼 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가면을 쓴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사이버 공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77세의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인터넷 외설물에 대해 내린 판결을 인용한다.

"미 연방 대법원은 인터넷을 하나의 공원이라고 보았다. 그런 공간이라면 사람들이 함께 섹스를 소재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한 구석에 펜트하우스나 플레이 보이지를 판매하는 가판대가 있다고 해서 공원 자체가 온통 불법 공간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저자는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은 아이들의 소꿉장난과 같은 심리에 의해 일어난다'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예측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역할 놀이이며, 소꿉장난에는 '환상 유지 법칙'이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서로 다 거짓인지 알지만 전혀 거짓이 아닌 듯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며, 각자 어떤 역할을 하게 되고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하는지를 너무나 즉각적으로 잘 알고 있다.

"환상 유지 법칙은 사실 사이버 공간이 아니더라도 현실 공간에서 잘 일어난다. …우리 나라 국회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마치 공범처럼 당연하게 코미디의 주인공이 된다. … 어떤 조직이든 잘 살펴보면, 이런 짜고 치는 고스톱과 유사한 연극을 항상 볼 수 있다. 이 경우, 이것이 연극이거나 허구임을 지적하는 사람은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거나 화나게 만들고 '눈치 없는 사람, 꽉 막힌 사람'이라고 불린다."

저자는 인터넷이 개인의 힘을 보다 빠르게 조직화한다는 점에서 '집단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집단 의사결정이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안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이 오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집단 논의 과정에서는 예상되는 위험을 참가자들이 심리적으로 나누어 가지기 때문에 집단으로 내린 결정들이 평균적으로 훨씬 위험스러운 경우를 택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이 보이는 집단 행동과 이에 따른 배타성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사이버 공간'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각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커뮤니티 사이트, 상거래 사이트, 정치 웹진 등 수많은 사이버 공간을 일률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집단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어야 하며, 또 행동이 고정적인 인성에 의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현실과 사이버 공간 각각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나 이것에 대한 윤리의 문제를 논의할 때 고려해야 하는 사실이다. 왜냐 하면 사이버 공간은 하나의 특수한 상황이며, 이 상황은 개인마다 각기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저자인 황상민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동대학원 심리학과 석사학위,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심리학과 발달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정보화 사회와 인간행동'(1992), '한국인의 협상 마인드'(1995), '사이버공간에서의 청소년의 정체성 형성'(1997), '색채감성으로 구분된 립스틱 색의 선호도'(1998), '세대의 계열과 인생주기를 통한 미래사회 성격의 예측'(1999) 등 5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2000.12.15 초판 발행


사이버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 인터넷세계의 인간심리와 행동

황상민 지음, 김영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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