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남편 흉을 좀 보아야겠습니다. 모처럼 휴일에 아침을 늦게 먹게 되면 남편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늦은 아침 먹으면 점심이 맛이 없단 말야."
"점심도 늦게 먹으면 되지."
"그럼 저녁이 맛이 없잖아. 잠자기 전에 바로 먹는 것도 그렇고."
"그럼 저녁은 생략하면 되겠네. 무슨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야 돼? 아휴 고달파라."
"내 사전에 끼니 거르기는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세 끼는 먹어야 한다구."

우리 집 남편은 이렇습니다. 밥도 그냥 밥이 아니라 늘 따끈따끈 새로 지은 밥이어야 합니다. 보온밥통에 해 두었다 주면 되지 않냐구요? 무슨 큰일날 말씀을, 그건 무조건 찬밥이랍니다.

결혼 초에 자취 시절의 내 버릇대로 몇 끼의 밥을 보온 통에 해 두었다가 주었더니, 왜 매일 찬밥이냐고 투정입니다. 따뜻한 밥인데, 이게 왜 찬밥이냐고 했더니 금방 하지 않은 밥은 맛도 없고 따뜻하기만 한 '찬밥'이라고 합니다. 처가에 가서도 보온 통에서 밥을 꺼내 주면,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사위한테 찬밥 준다'고 궁시렁 거리니까 웃자고 하는 소리라도 친정어머니는 맏사위 끼니 챙기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매번 따뜻한 밥에 다음 끼니가 걱정되어 제 시간에 신경 써서 끼니를 챙기시나요? 남편은 노동을 위하여 밥은 제때 제대로 먹어야 한다 주의입니다. 그것도 끼니마다 밥이든, 라면이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로 지은 것이어야 합니다.

남편은 반찬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대합니다. 워낙 솜씨 없는 여자 만난 탓에 일찍 체념한 탓도 있지만 국물과 김치와 방금 지은 따끈따끈한 밥만 있으면 다른 소리는 안 합니다.

아들녀석이 엄마 솜씨는 정말 엉망이라고 반찬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감사한 줄 알고 맛있게 먹으라며 따분할 정도로 토속적이고, 보수적인 끼니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요즘은 우리네 식생활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침은 빵으로 간단히 때우거나 아예 거르는 집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밥이 체질에 맞는다고는 하지만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 입장에서 보면 끼니때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밥에 어울리는 반찬 가지 수는 많지만 끼니마다 식상하지 않을 식단을 제공하려면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뜰한 장보기로 실속 있는 상차림을 내 놓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서양 음식이야 빵에 스프와 잼이나 샐러드 정도면 족한데 말입니다. 그러니 여자 입장에서는 아침 정도는 간편하게 빵으로 때우도록 하는 것이 여간 간편하고 속 편 한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밥을 고수합니다. 국수나 라면 정도는 정히 처치 곤란한 찬밥이 있을 경우에 한합니다. 이쯤 되면 아내에게 바라도 너무 많이 바라는 남편인 셈이지요.

오늘은 또 방학을 맞은 아이들 점심 챙기다가 둘째 녀석과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평소에 길이 잘든 탓(?)에 점심밥을 새로 지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들녀석은 라면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점심을 먹을 식구라야 딸아이, 나, 둘째 이렇게 세 식구뿐인데 갑자기 메뉴를 바꾼 녀석에게 여기가 식당인 줄 아느냐고 '주는대로 먹으라'했더니 눈물까지 보이며 라면을 달라 합니다. 우리 둘째 녀석은 한 번 말 꺼내 놓으면 황소 고집입니다. 고집을 꺾어 보려고 실랑이를 하다가 그예 내가 지고 말았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힘이 빠져서 밥을 먹기가 싫습니다. 고분고분한 딸아이 혼자만 밥을 먹었기 때문에 따끈하게 새로 지어놓은 밥이 꼼짝없이 '찬밥'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엔 퇴근해 돌아오는 남편에게 '찬밥'(?)을 먹일 참입니다. 야채볶음밥으로 리메이크한 밥을 설마 찬밥이라고 싫어하진 않겠지요? 이참에 볶고 섞으면 금방 지은 밥 못지 않게 따뜻해지는 찬밥의 위력을 보여줘야겠습니다. 네 식구가 모여 먹는 따끈따끈한 찬밥이 오늘 저녁의 우리 집 메뉴입니다.

퇴근하는 남편은 '시장이 반찬' 되어 있을 즈음입니다. 일터에서 12시 땡하면 점심을 먹는다고 하네요. 저녁을 맛있게 먹기 위한 작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인 제 실력을 못 믿어도 너무 못 믿는 것 아닐까요? 아무튼 세 끼 끼니 때워주는 노릇은 너무 힘이 듭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