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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논란이 되어온 집시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고 29일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학교 주변에서 치르는 집회·시위와 주요 도로 행진이 금지되며 외교사절 숙소주변에서 치르는 집회·시위도 제한된다.

주요 개정 내용에서 보듯이 이번 개정안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현행법보다 더 제한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렇듯 제한 위주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오르게 된 이유는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시위가 격렬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원내 정당들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사전 조율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이 별도의 수정동의안을 상정할 계획이긴 하지만 주요 내용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제한 위주의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 상정 과정을 놓고 볼 때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격렬한 시위가 빈번하게 된 데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정부의 미온한 대응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각 정당들 역시 이에 의견을 같이 하고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강경한 대응이 과연 격한 시위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격렬한 시위가 일어난 원인은 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통로가 봉쇄되어 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은 자유로운 의사 표출의 통로를 막아 오히려 기존의 불만과 저항 의식을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시위가 격렬했던 사회 쟁점들을 생각해 보자. 과연 강력한 집시법을 적용했다면 부안 사태와 노동자들의 시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인가. 사태가 심각해진 원인은 오히려 정당·언론·정부 누구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창구 역할을 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안에서 시위가 격렬해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양대 정당의 정치인들이 부안을 찾는 무책임함을 보여 주었다. 언론 역시 노동자와 주민들의 폭력 시위만을 부각하는 보도 태도로 일관해 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집회와 시위의 현장은 끓어 넘치려고 하는 주전자와도 같다. 폭발할 듯 달아오른 주전자에 김이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면 그 주전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집시법 개정안은 격렬한 시위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인 기성 정치권이 저지르는 또 한번의 직무유기다. 이제라도 개정안을 철회하고 사회 공감대 형성을 위한 토론과정을 거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또 불편한 제도다. 시위대의 도로 행진으로 인한 정체와 확성기 소리가 주는 불편함 때문에 개정안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 자신을 옭아매게 될 포승줄을 스스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 불편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연대의식이 민주주의의 정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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