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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퍼! 안 퍼!>의 공동 저자인 주부들은 인터넷 스페이스에서는 서로 아이디로 부른다. 앞에서부터 '라일락' 정현순, '연지' 김영진, '사과꽃' 김해영, '아가' 우성남, '지지봉' 조은주, '햇살' 홍미용 주부
<밥 퍼! 안 퍼!>의 공동 저자인 주부들은 인터넷 스페이스에서는 서로 아이디로 부른다. 앞에서부터 '라일락' 정현순, '연지' 김영진, '사과꽃' 김해영, '아가' 우성남, '지지봉' 조은주, '햇살' 홍미용 주부 ⓒ 우먼타임스 김희수
서른네 살, 처녀 같은 아줌마에서부터 외손주를 얻은 51세 '할머니' 아줌마까지 7인의 용감한 주부들이 부엌에서 나와 책 한 권을 함께 썼다.

<밥 퍼! 안 퍼!>. 아줌마로서의 일상적 삶과 가족,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시시콜콜한 묘사에서부터 세상 바라보기까지 그들은 때론 격하게, 때론 따스하게 자신과 가족과 이웃, 세상에 대해 적고 있다.

지난 16일 인터뷰를 위해 <우먼타임스>를 방문한 아줌마는 모두 6명. 개인 사정으로 김미경씨가 불참했다. 아, 씩씩하고 명랑한 아줌마들이여. 그나마 근무 중인 남의 사무실이라 자제했다는 게 그들의 얘기지만 약 2분당 한 번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나뭇잎 굴러가는 것을 보며 까닭 없이 웃어대는 소녀들의 웃음 같은.

그들의 웃음에는 생기가 흘렀다. 그럴 수밖에.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여 년 간 '솥뚜껑 운전'만 하던 그들 아니던가. 정체성과 자신감마저 잃어가던 평범한 주부들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인터넷 포털 <줌마네>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내공'을 쌓고 책을 내기에 이르렀으니 요즘 느끼는 살맛이란 꿀맛과 다를 바 없을 터다.

<줌마네>서 만나 의기투합

"글쓰기 배우러 가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주제를 알라고 하더라"는 최연장자 김해영(52)씨는 "배운 것도 없고 30년 가깝게 전업주부로 살다보니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책 나오고 나니 자신감이 새록새록 든다"고 말한다. '설마'하던 남편이 '찍'소리도 못한단다. 방송국 출연하고 신문사 갈 일정 있으면 남편이 알아서 아침, 저녁식사를 챙겨먹는 변화도 생겼다. 남편은 아는 사람들을 통해 40권 넘게 책을 파는 영업활동도 한다.

일찍 외손주를 본 정현순(51)씨는 큰 돈은 아니지만 방송출연료, 원고료로 자신이 직접 돈을 번 것이 대견하다. "돈 모았다가 친정어머니와 친지들을 모시고 '한 턱' 쐈다"는 정씨는 "어머니께서 평생 드신 음식 중에 가장 맛있다고 하셔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말한다.

초판분 '따끈따끈한' 책을 받아들고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누가 들어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했다는 이 소녀 같은 '할머니'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직접 번 원고료로 친정 엄마에게 '한 턱'

책을 준비하는 동안 팀장 역할을 맡았던 조은주(37)씨는 초등학생, 유치원생인 아이들 육아문제 때문에 남편의 반대가 있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책이 나오고 나니 좋아하는 기색은 숨기지 않는데, 그래도 집밖을 나설 때마다 싫어한다.

"친정 부모님께서 나갈 일 있으면 애 봐주신다고 전화하라고 하신다"는 그의 말에 나머지 주부들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게 현실이지, 하는 표정이다.

평소 무관심한 남편 덕(?)에 알아서 모든 일을 하는 젊은 주부 홍미용(34)씨는 "책 나오고 나니까 남편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잘 때마다 '엄마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손위 시누이로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떻게 시집 어른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시집 얘기를 쓰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온가족에게 '작가' 대접 받아 흐뭇

시아버지가 50권을 사서 친구들에게 돌리고, 남편은 책값으로 10만원을 주더라는 우성남(36)씨는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시아주버니 얘기를 책에 썼는데, 이를 본 남편이 감동을 받곤 좋아하더라고 소개한다.

장래 희망이 작가인 딸은 물론 온 가족에게 작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김영진(46)씨는 "작업을 하며 모두 서로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소개한다.

책도 책이지만 가정에만 머물다가 사회로 나오는 데에 따른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는 게 그들의 얘기. 젊은 주부들은 인생 선배들이 삶을 통해 얻은 힘을 배우고, 나이든 주부들은 젊은 후배들에게 젊은 감각을 익히며 작업한 과정이 또 다른 학습의 장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책'보다는 '자아'를 찾는 작업이었다는 용감한 주부들은 앞으로도 함께 혹은 따로 일상에서 배운 아줌마의 힘으로 글을 쓰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힌다.

밥 퍼! 안 퍼! - 밥해대는 여자들의 외롭고 웃긴 부엌 이야기

김미경 외 지음, 뿌리와이파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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