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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청란여중 교정에서의 박지인 교사.
대전 청란여중 교정에서의 박지인 교사. ⓒ 권윤영
우리 인디안 말에는 잡초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풀을 잡초라고 부르지요.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 이유가 없는 풀은 없는 거지요. 모든 풀은 존중 되어야 합니다.

-어느 인디안 추장의 말-


위의 글을 가슴에 품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잡초는 없다’라는 말처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학생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대전 청란여중 박지인(42) 교사의 표정이 참으로 즐거워 보이는 이유다. 그에겐 잡초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소중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난 93년부터 교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3년 동안 입시학원에서 강의를 했죠. 성적을 우선시하는 학원보다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학교 생활이 당연히 더 즐거울 수밖에요.”

2학년 3반 담임을 맡고 있는 그는 ‘효는 생명이다’라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곤 한다. 효를 중시해야만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래선지 그의 반에는 특별함이 존재한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부모님의 사진이 붙여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3반 교실에는 부모님 사진이 붙여진 책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3반 교실에는 부모님 사진이 붙여진 책상을 찾아볼 수 있다. ⓒ 권윤영
부모님 결혼 사진, 때로는 엄마 사진, 아빠 사진, 할머니 사진들이 책상 한 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사진을 보고 부모님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더 알찬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4년 전부터 시작한 박 교사만의 철학이다.

학기 초면 학생들에게 삶의 지향점이 담겨있는 ‘지란지교를 꿈꾸며’와 ‘우리는’이란 시를 나눠주는 그는 머물고 싶은 학급을 만들기 위해 항상 생각한다.

그가 학급운영을 하면서 되새기는 10가지를 정리해 놓은 문서에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자’, ‘교사의 한마디가 학생의 가슴에 평생 멍을 줄 수 있다’, ‘나의 반은 나의 자식으로 생각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안에서도 ‘잡초는 없다’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방황하는 학생,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잡초가 아니라 환경으로 인해 잠시 그런 것일 뿐입니다. 부모의 무관심에서 오는 아이들의 방황을 접할 때가 가장 안타까워요. 가출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도 반가워하지 않죠.”

8년째 학생과를 맡고 있기도 한 박 교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일수록 착하고 정도 많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지금처럼 발신자 서비스가 되지 않던 시절에 가출한 학생이 그에게만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전화국에 가서 부탁을 한 후 학생을 찾아와 졸업까지 시켰을 정도로 그의 학생 사랑은 각별하다.

현직 교사들이 모인 유해환경감시단에서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전시내의 모든 유해업소는 모두 다녀봤을 정도. 하물며 길을 지나가다 돈뺏는 장면을 발견해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여학교에서 생활하면서도 유난히 제자들의 연락을 많이 받는 그는 얼마 전 주례를 서기도 했다.

“여학교에서 생활하다보면 주례 부탁 받을 일이 드물잖아요. 그런데 지난 주에는 이 나이에 주례를 봤어요. 부산에 있던 제자가 마음속에 늘 생각하고 있었다고, 남자 쪽에 양해를 구했다면서 부탁을 하기에 멋적었지만 제자의 행복을 빌어줬습니다.”

체육대회 날, 발야구 경기를 앞두고 학생들과 화이팅을 외쳤다.
체육대회 날, 발야구 경기를 앞두고 학생들과 화이팅을 외쳤다. ⓒ 권윤영
박 교사는 2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다.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그는 수학여행 답사를 다녀오던 중 통증을 느껴 검사를 진행했고 '스승의 날' 아이들과 자장면을 먹으러 가는 길에 병명을 알게 됐다.

수학여행을 함께 가려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안된다며 만류했다. 아침에 반 아이들을 수학여행을 보내놓고는 함께 가주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가슴이 아려왔다.

두 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3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그의 휴직기간은 단 3개월간이었다.

“그냥 학교에 나오고 싶었다”는 박 교사는 체력이 떨어져 담임을 맡지 않게 해준다는 학교측의 배려에도 담임을 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이 무의미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자청했다. 주위에서 몸부터 생각하라는 말에도, 학교에서 일찍 퇴근해도 좋다는 말에도 그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인터뷰 내내 부담스러운 빛을 감추지 못하는 그는 단지 자신을 “아이들 속에서 사는 교사”이라고 표현한다. 학생들 역시 한결같이 “아빠 같아요”, “너무 자상하고 저희들 마음도 잘 이해해주세요”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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