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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Kill Bill)> O.S.T.
<킬 빌(Kill Bill)> O.S.T. ⓒ 배성록
쿠엔틴 타란티노의 2003년 신작 '킬 빌'은 한마디로 '저질' 영화다. 이 영화는 영미 평단이 거들떠도 보지 않던 동서양의 온갖 저질 영화의 이런저런 요소들을 잘도 훔쳐다가, 흡사 ‘스트리트 파이터’ 수준의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 피범벅으로 적당히 버무려낸 ‘차용’ 덩어리이다. 이런 걸 좋게 표현하면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던가, ‘혼성모방’이라 하던가? 포스트모던은 포스트모던이되, 그 가운데서도 키치적인 요소가 극대화된 영화가 바로 '킬 빌'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비디오 가게 점원 시절 열광하던 사무라이 영화, 쇼 브러더스 무협 영화(영화 첫 장면에 이 로고가 등장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과 이소룡 영화, 저팬 아니메를 사정없이 인용하고 오마쥬를 바친다. 자신이 얼마나 B급 영화사에 통달했는지를 자랑하고 싶어 몸살이 난 인간처럼 보일 지경이다. 심지어 영화의 기본 골격조차도 후카사쿠 긴지의 '배틀 로얄'과 프랑수아 트뤼포의 '신부는 검은 옷을 입었다'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던가.

사무라이 영화나 정철 영화라는 차용 대상을 증명하듯, 영화 화면에는 쉴새없이 선혈이 낭자하고 떨어져나간 팔다리와 머리, 피분수가 춤을 춘다. 주지하듯이, 한국이란 사회는 극도로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잔혹함으로 가득한 곳. 그 때문에 한국의 심의기관은 폭력 영화를 싫어한다. 자신들의 내재된 폭력성이 들통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킬 빌'은 영화 내내 가득한 피바다 가운데 단 14초만을 잘라내고도 상영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피바다와 피분수는 어떻게 되느냐고? 그야 폭력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모양이지. 덕분에 흘러나온 내장과 잘려나간 목이 보이지 않는 한국판 '킬 빌'은, 원본보다 더더욱 선정적이고 잔혹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 아니, 실상은 잔혹하지도 않다. 이건 그냥 저질 영화, 키득키득 웃으면서 '저건 누구 영화에서 베꼈군'하고 찾아내기만 하면 그만인 영화인 것이다.

영등위의 맹활약에 조우하듯, 음반 심의위원들께서도 큰 일을 내셨다. '킬 빌'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한국반 발매가 금지된 것이다. 이유는 하나, 음반 수록곡 가운데 일본어 가사로 된 엔카가 한 곡 실려 있다는 게 이유란다. 이런 연유로, '킬 빌'은 한국 사회의 폭압적 면모를 세계 만방에 과시하는 컨텍스트로 기능할 듯하다.

이건 '거짓말'이나 어떤 다른 음험한 영화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니,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경배를! 세상에 대체 어떤 영화가 본편과 사운드 트랙 모두 심의의 철퇴를 맞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는 '킬 빌'의 사운드 트랙이 유입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듯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쿠엔틴 타란티노는 음악 선곡에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정철 액션 영화를 찾아내듯, 타란티노는 남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음원을 기막히게 골라내는 재주를 지녔다. 그것도 영화의 장면 국면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음악 효과만으로도 관객을 나자빠지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킬 빌'은 이전 그의 영화들보다 음악 선곡 면에서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모자라지는 않다. 영화는 저질이라 치더라도, 음악들이 시쳇말로 죽인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아마도 영화를 본 이라면, 애꾸눈 엘 드라이버(대릴 한나 역)가 브라이드(우마 서먼 역)의 병실로 걸어가며 불어대는 인상적인 휘파람 소리나, 브라이드가 제거 대상과 마주치는 순간 강렬한 눈빛 클로즈업과 함께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브라스 음악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할 것이다. 전자는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의 “Twisted Nerve”이고, 후자는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짤막한 간주곡(interlude)인 “Ironside”이다.

타란티노는 이렇게 영화에 사용된 소리들을 강렬하게 활용할 줄 알고, 음악만으로도 관객의 주의를 환기할 줄 안다. 오프닝에서 구슬프게 들려오는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의 “Bang Bang (My Baby Shot Me Down)”이나, 5.6.7.8's의 “Woo Hoo”와 같은 곡을 떠올려 보라.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저절로 연상될 것이다. 심지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 음악들은 장면과, 각각의 정황과 결합해서 관객의 뇌리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실로 음악의 힘을 제대로 이용하는 감독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 실린 노래들은 영화와 별개로서도 충분히 제 기능을 한다. 장피르(Zamfir)의 구슬픈 팬플룻 연주가 담긴 “The Lonely Shepherd”, 음반 발매 불가의 구실을 제공한 엔카 “The Flower of Carnage” 등은 곡 자체로서도 매력적이다. 산타 에스메랄다(Santa Esmeralda)가 커버한 애니멀스(The Animals)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찰리 페더스(Charlie Feathers)의 구닥다리 냄새 물씬한 로큰롤 “That Certain Female”, 아이작 헤이스(Isaac Hayes)의 범죄 스릴러용 테마 “Run Fay Fun” 등은 또 어떤가. 야쿠자 영화에서 피를 솟구치게 만들법한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도 이에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온갖 장르와 스타일이 뒤범벅된 사운드 트랙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조차도 ‘대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궁금하게 만들만 하다. 사운드 트랙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강렬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본 이들에게 미치는 강렬한 인상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느 곡 하나도 영화의 맥락, 그리고 각 장면에 차용한 이미지와의 연관성을 놓고 볼 때 떼어놓을 부분이 없다. 영화와 완벽한 유기체를 이루는 음악들이며, 별개의 음반으로서도 놀랄만한 흡인력과 구성력을 과시하는 사운드 트랙이다.

이런 노래들이 대체 어느 음반에서 뽑아왔는지도 모를, 스노비즘의 극으로 치닫는 음악이라는 점이 더더욱 놀랍다. 그래, 물론 '킬 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저질’ 영화다. 하지만 이 저질과 키치의 극단을 달리는 영화는, 내내 키득거리면서 영화사에 대한 지식 과시를 펼치다가도 끝내 엄지 손가락을 쳐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단언컨대, 그 힘의 절반은 이 놀라운 사운드 트랙에 공을 돌려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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