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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희망의 누드>
책 <희망의 누드> ⓒ 열림원
"이 책에는 제게 많은 영감을 준 사진과 시, 영화와 음악 등이 실려 있습니다. 이것들이 당신에게도 감각의 명민함과 영감을 던져 줄 수 있기를, 그리고 당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서문에서

<희망의 누드>는 시인이자 사진학을 공부하고 있는 작가 신현림이 자신의 삶과 시, 영화와 음악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엮어 편찬한 책이다. 한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그의 글이라고 할 때에, 이 책은 시인 신현림을 대표할 만한 이야기 거리를 품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은 그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요셉 브로드스키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넓고 풍부하다면 그 사람의 삶 또한 다채로운 색깔을 뿜어낼 것이다.

신현림 시인의 경우 사진, 영화, 시, 음악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들이 그녀의 글 속에 녹아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 사진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 독창적이고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버려진 자를 위해 사진을 찍었던 브라질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저자는 사려 깊고 따뜻하면서도 장엄한 작가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제3세계의 발전을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이 경제 논문보다 더 강력한 전달매체임을 발견했다는 사진가.

"그는 7년 동안 중남미를 돌며 가난과 고립 속에서 강하게 살아남은 인디언 농부를 찍고, 80년대엔 기아와 싸우는 아프리카인들을 찍었다. 자신의 이기를 떠나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그의 발걸음은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가. 단순히 즐겁게 해주는 작품보다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진실을 깨닫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에 나는 감동한다."

삶에서 비밀이 주는 작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그녀 나름의 해석을 보인다. 모든 것은 다 드러나고 나면 싫증이 나는 법. 사진도 삶도 사랑도 작은 비밀과 적당한 거리 속에 있을 때에 비로소 매력적이고 육감적으로 다가온다. 크리스티앙 보그트의 사진은 사물이 열려진 채 있는 점에서 비밀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매력적이다.

"영혼은 있음과 없음의 한가운데에 있다. 영혼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을 뿐이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자만이 아름다운 영혼을 알아볼 것이다.영혼은 담배 연기와 같은 것이다. 커피향 같은 것."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자만이 타인의 아름다운 영혼을 알아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정신과 마음의 존재. 이 많은 삶의 모습과 그 내면의 세계를 담아 간직해 놓은 것이 바로 사진이다. 작가는 사진을 '잊은 기억을 일깨우고 살아 있음의 환희를 알려 주는 솜망치'라고 빗대어 표현한다.

미국의 사진가 아이린 코윈의 <전화 기다리는 여자>라는 작품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미술 교수인 그녀 자신의 체험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소외와 외로움을 '전화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우리는 외로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지며, 또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책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폴 드 노이어의 <자연을 다림질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풍자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자연은 자연인데 인간들이 들판을 펴서 다린다.몽타주 기법으로, 아주 재미있는 상상력과 기지가 빛나는 사진이다.창 밖에는 인간이 정제한 자연이 펼쳐져 있다. 인간이 원하는 조건으로 자연을 바꿔놓는 것에 대한 풍자라고 본다."

리처드 미즈라크의 <죽은 동물들> 시리즈 또한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죽이고 없앤 동물들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저자는 리처드의 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흔적이 그야말로 묘지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한다.

상업성과 예술성 모든 면에서 성공한 사진가로 평가받는 사라 문의 작품도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사랑에 대한 따뜻한 꿈을 갖게 해주는 그녀의 작품은 정희성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와 함께 소개된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중에서

고독한 현대인들의 꿈, 시간의 흐름이 주는 공허함, 자연 파괴의 실상, 따뜻한 사랑과 만남 등 사진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들은 다양한 우리들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솔직한 표현 매체인 사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해석을 전개한다.

그녀의 사진과 시, 개인적 체험과 간접적 체험의 혼합물이 바로 이 책 <희망의 누드>이다. 어느 곳엔가 희망이 있다는 걸 믿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인간들. 우리들의 보잘 것 없는 손짓이 때로는 세상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 믿음이 있기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시를 쓰며 우리 삶을 고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은 손짓을 통해 현실을 표현하고 풍자함으로써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희망의 누드

신현림 지음, 열림원(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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