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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하는 모습
커트하는 모습

석수동 해관보육원은 106명 아이들의 터전이다. "쓱쓱싹싹 윙~윙~윙" 가위와 바리캉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보육원 미용실, 이미경(36세.호계동.미가미용실원장), 이경화(34세.미용사)씨의 손놀림이 덩달아 바쁘다.

"형과 함께 7살부터 여기서 살았어요. 저도 앞으로 사업가가 되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뻣정 머리의 중학생 차례가 되었다.

"학생은 옆머리 자르지 말라고 했지요."
"네, 위에 숱만 약간 쳐주세요"
얼굴만 봐도 서로의 취향을 알고 눈빛으로도 그저 반갑다.

옆 의자에서는 머리 손질이 시원한지, 꾸벅꾸벅 조는 아기의 모습이 정겹다. "다 됐어요. 다음 차례 앉으세요." 후딱 잘랐는데 몰라보게 말끔해졌다.

보모와 대기 중인 아이들
보모와 대기 중인 아이들

미용실을 꽉 채웠던 대여섯 명의 건장한 청소년 팀이 끝나갈 무렵, 꼬마(3세)들이 보모들과 함께 몰려 왔다. 테이블에 있던 과자와 귤이 금새 바닥이 나고 오물오물 거리는 입이 귀엽다.

"다음은 영철이 먼저 할까?" 싫다고 도리질이다. 이 원장은 아이들 이름까지 뚜르르 꿰고 있었다. 금새 경대 서랍이 의자 위에 얹어지고 한 꼬마가 앉았다.

"어이구 착해라. 울지도 않고..." 한 아이 커트에 5분 정도 걸리지만, 아기들의 머리는 솜털처럼 부드럽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기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 칭찬하며 순간 순간을 잘 포착하여 아이 얼굴형 따라 능숙하게 자르는 것은 전문 헤어디자이너의 몫이다.

꺼부정했던 머리들이 잘려나간 후 모습은 하나 같이 인형처럼 예쁘고 말쑥하다. 청소년들은 카메라를 피하지만, 꼬마들은 카메라 앞에 서로 얼굴을 내민다.

3살, 같은 또래지만, 영철이는 어른처럼 의젓하다. 진규는 누런 코를 훌쩍거린다. "흥해라. 흥해"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랬듯이, 얼른 누런 코를 닦아주었다. 하나같이 예쁘고 귀여운 천사들이다.

함께 온 9명의 꼬마들이 단정하게 탈바꿈되었을 때도 승재는 막무가내로 머리 자르기를 거부했다. 보모가 따라 붙어 계속 입에 쵸콜릿을 넣어줘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떼를 썼다.

커트하는 모습
커트하는 모습

이쯤 되면 아무리 숙달된 미용사라도 마음이 급해진다. 승재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곱절은 힘든 아이다. 정신을 홀딱 빼놓듯 세살 꼬마들이 끝나갈 무렵, 좀 원숙해 보이는 네살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얼굴이 둥근 아이는 단발로 자르면 뭉툭한 느낌이 들지만, 레저가위로 손질하면 얄상하고 자연스러워요." 허리춤에서 가위. 빗 등 종류별 도구를 자유자재로 골라서 쓰는 모습이 마술사처럼 날렵하다.

한 보모는 "전에 왔던 분들의 커트는 바가지 씌운 것 같기도 하고, 여잔지 남잔지 구분이 가지 않았어요."라며 지금 이 원장의 기술을 칭찬한다.

이 원장은 미용경력 17년의 베테랑으로 커트 솜씨는 벌써 보육원내 여고생들까지 차례를 기다리게 될 정도가 되었다. 이 원장은 자신의 기술을 인정하고 차례를 기다려 주는 마음들이 그저 고맙기만 할뿐이다.

귀인동에 사는 이 원장은 "딸(5세)이 어릴 때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이지요. 일륜 장학회를 후원하게 되며 김선옥 회장의 안내로, 금년 3월부터 매주 셋째 일요일이면 해관보육원을 찾는데 이 일에 보람을 느껴요"라고 말한다.

이경화 미용사(좌)와 이미경 원장(우)
이경화 미용사(좌)와 이미경 원장(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오전에는 교회에 나가고, 오후 1시부터는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의 뜻 있는 미용사 2∼3명과 함께 하루 50여명 정도 커트를 거뜬히 해내고 있다. 말이 자원봉사지 잠시, 허리 한번 펼 틈 없이 몰려드는 아이들로 바쁜 시간의 연속은 중노동에 가까워 보였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을 받다보면 오후 7시까지도 끝이 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보모들이 제한해야 될 때는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일하다 보면 손목이나 다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매일 하는 일이다 보니 힘든 것은 몰라요. 미용실에서는 늘 긴장 하지만, 여기서는 마음이 편안하고 재미있어요."

함께 동행한 이경화 미용사 또한, 남매를 둔 주부다.

"아이들이 이젠 다녀오라며 적극 후원하는 걸요."

모두가 봉사를 천직으로 알고 즐기는 듯 신명난 표정이다.

"기쁨의집, 아직 멀었나요. 다음은 온유의집, 인데요."

보모들이 꼬마들의 외투를 입혀 나가면 또, 들어오고 북새통이다. 이 원장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미용사였던 어머니는 섬세하고 손재주 많은 딸의 끼를 발견하고 미용을 권유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를 잘 했어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니까요."활짝 웃는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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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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