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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민주당을 찾은 고건 총리는 "부안문제는 과거 밀실에서 지정하던 것을 공모로 하고 신청을 받았던 것"으로 "오히려 찬성쪽 의견이 부안 주민들의 물리력 때문에 묻히고 있다"면서 "상황만 안정되면 부안군민과 전북도민 전체 주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할 생각도 갖고 있다"는 말을 했다.

한 마디로 이는 현실을 완전히 호도하는 것이며, 정부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부안문제의 핵심은 부안주민들이 갖게 된 소외와 배신감이다. 고 총리의 말은 위도 핵폐기장 유치 선정이 정당했다는 주장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밀실 지정보다 더 질이 나쁜 음모에 의한 일방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김종규 군수가 있는 내소사까지 한 걸음에 달려가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오늘(9일) 소란을 피운 찬성쪽 의견이란 것도 관제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고 총리가 도민투표를 갑자기 제기한 속내는 뻔하다. 도민투표를 하면 찬성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다른 지역 주민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안주민들이 분개하는 까닭을 다른 지역 도민들은 잘 모른다. 극단적으로 부안주민들이야 자존심이 상했건 말건, 위험지대에 살건 말건, 핵폐기장이 들어섬으로써 생계에 타격을 받건 말건, 다른 곳에서 군침을 흘리는 양성자 가속기까지 들어온다는데 전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앞설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부안주민들 가슴에 두 번 세 번 못을 박는 작태를 멈춰야 한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혹은 않고) 이렇게 꼼수나 피우고 말장난이나 하는 위인이라면 총리의 자격이 없다. 물러나는 게 좋다.

민주당도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고 총리의 주장에 대해 추미애 의원은 “부안문제는 부안 군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인데 이를 두고 이의 제기하는 것을 물리력 행사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것이다.

이런 인식으로는 정부를 설득하지 못한다. 생존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자존심이다. 군수와 정부가 부안주민들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짓밟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생업의 지장을 감수하며 이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핵심적인 하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미련을 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거든 먼저 유치 결정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주민들을 설득하여 스스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투표를 해도 그때 가서 해야 옳다. 참여정부다운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더 문제다. 고 총리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덕담만 주고받았다고 한다. 고작 김원기 공동의장이 “현명한 대책을 정부가 모색해 주기를 바란다”는 짧은 당부를 했다고 한다.

지금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현명한 대책은 열린우리당이 이미 제시하고 정부를 설득했어야 한다. 참으로 무책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부 하는 일에 두둔만 해서는 안 된다. 그건 독재정권 시절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결론이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부안주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것만이 해결책이다. 그리고 산자부 장관을 문책하는 한편으로 무리한 결정을 한 관료들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 바뀌고 소신 있는 장관이 임명되어도 관료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 이런 사안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고 문책을 함으로써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은 임기 내내 관료들에게 끌려 다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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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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