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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군이 살던 이층 집. 황토색 문이 송군의 집 출입구이다.
송군이 살던 이층 집. 황토색 문이 송군의 집 출입구이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송사현(16·이천 S중학교 3학년·가명)군이 어머니 신영원(46·가명)씨와 단둘이 살던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2층 단독주택. 가파른 산밑 언덕배기에 있는 송군의 월세방은 초겨울 바람에 에워싸여 있었다.

지난 3월 보증금 300만원, 월세 18만원을 주고 방 2개 짜리 집으로 이사온 송군은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며 세상과 차단하고 살았다. 세상의 무관심에 시달린 소년은 '벽'을 쌓아놓고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과 고립의 방으로 숨었다.

6일 수사라인이 쳐진 송군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발 여러 켤레가 흐트러져 있었고 집안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겼다. 12평 짜리 월세방은 숨진 신씨가 누워있던 안방과 바로 옆에 부엌이 붙은 곳에 송군이 지냈던 작은 방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어머니의 죽음과 고립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게 편했다"

부엌 휴지통에는 송군이 끓여 먹은 라면봉지와 휴지가 수북히 담겨 있었고 문지방 옆에는 60kg 가량의 정부양곡미 포대가 놓여 있었다. 송군이 홀로 지낸 방안 오른쪽에는 하얀 보가 씌워진 침대가 있고 왼쪽 컴퓨터 옆 옷걸이에는 허름한 옷들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었다.

방바닥에는 감 5개가 비닐봉지에 담긴 채 그대로 있었고, 방 입구에 놓인 원탁 상에는 먹다 남긴 김 4봉지와 김치, 콩자반이 반찬그릇에 담겨 있었지만 전기밥통에 밥은 없었다. 송군은 지난 6개월 동안 어머니의 시신을 옆방에 두고 이 방에서 홀로 생활하며 지냈다.

어머니 신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지난 4일 6시50분께. 송군이 다니는 S중학교 3학년 학생주임인 정희정(여·43·가명) 교사가 겨울추위를 달래주려고 송군의 집 보일러를 고쳐주기 위해 열쇠공과 친구와 함께 집을 찾았다가 안방에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 발견 당시 신씨는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머리카락과 뼈만 남은 채 백골상태였으며 이불에 덮여 있었다고 경찰 관계자는 6일 밝혔다.

송군은 경찰에서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아 손을 만져봤는데 죽은 것 같았다. 어머니를 지켜주려 했고 죽은 어머니의 추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아무에게 말하기도 싫었다"면서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것이 편했다"라고 말했다.

송군이 먹다 남긴 정부양곡미.
송군이 먹다 남긴 정부양곡미. ⓒ 오마이뉴스 조호진
송군이 폐쇄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말부터로 보인다. 어머니의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자 그 달 28일 간병을 한다며 학교에서 조퇴했고 어머니가 숨진 6월부터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송군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생활비 39만원과 아버지 사망에 따른 국민연금 12만원으로 생활 해왔다. 그러나 송군 가족이 종적을 감춰 연락이 두절되면서 8월 27일부터 무단전출로 인해 수급대상에서 제외돼 정부보조 생활비가 끊겼고, 그 때부터는 국민연금 12만원으로 생계를 연명했다.

동사무소와 학교측이 송군을 찾지 못한 것은 송군이 창전동 관내 이사를 한 뒤 거주지 변경 신고를 하지 않은 게 큰 원인 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송군은 10월경 전기와 가스가 끊겨 추워지자 여관에서 자기도 했으나 어머니의 죽음을 주변에 일체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창전동사무소측은 택배로 배달되던 정부양곡미가 송군의 두문불출로 계속 반송되자 지난 6월 송군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휴대폰과 집 전화는 모두 두절됐고 서류에 기재된 주소로 찾아갔으나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행방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주민전산망을 통해 신씨의 언니인 신희숙(가명·서울시 동대문구)씨에게 연락을 했으나 전화번호가 틀려 이마저 연결되지 않았다. 11월 중순 이사간 집을 파악한 뒤 2차례 가정방문을 했으나 우편물이 쌓인 채 인기척이 없었고 이웃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들 무관심" 일부 언론보도 사실과 달라

담임인 오동수(43·가명) 교사도 송군의 장기결석을 걱정하다가 수소문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송군 어머니의 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을 가능성을 두고 이천시 관내 병원을 두루 수소문했지만 이 역시 허탕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달 18일 잠시 외출한 송군을 발견한 학생들이 송군의 행방을 학교에 알려오면서 겨우 거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다음 날인 19일 송군의 집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간 오 교사는 초췌한 얼굴과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풍기는 악취 원인을 묻자 송군은 집안이 지저분해 그런 것이라며 잠긴 안방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행방을 묻자 송군은 어머니가 4개월 전에 돈 벌러 간다고 집을 나간 이후 연락이 없다고 태연하게 거짓말했다는 것.

송군의 머리를 깎이고 목욕을 시킨 오 교사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등교시켰다. 송군 어머니가 아이를 버리고 간 것으로 판단한 동사무소는 기초생활비를 다시 신청했고 학교측은 송군돕기운동을 벌인 뒤 전기장판과 담요·반찬 등을 전달했다.

또한 이천시 관내 W고등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은 뒤에는 입학금과 등록금 마련에 고민했고 3학년 주임인 정희정 교사는 고교진학 이후에도 송군을 돌봐줄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 등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송군이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들은 어려운 여건의 송군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써온 사실이 <오마이뉴스>의 취재과정에서 확인됐다.

송군이 지냈던 작은 방.
송군이 지냈던 작은 방. ⓒ 오마이뉴스 조호진
아버지의 죽음 - 당뇨병 어머니 홧술 - 소년은 죽음의 공간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송군의 집안은 단란한 가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탁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지난 2000년 1월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어려움이 닥쳤다. 송군의 어머니 신씨는 남편이 사망하자 급격하게 무너졌다. 7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오던 신씨는 몸을 돌보기 보다 남편 잃은 절망감에 술을 벗하면서 병마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씨는 지난 2001년 교통사고를 당해 벌금과 치료비로 500만원을 지출한데다 남편이 남긴 빚과 병원비로 돈이 빠져나가면서 3000만원이었던 전세금은 3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신씨는 아들과 단둘이 살면서 공공근로 및 하루벌이 노동을 하며 근근히 살았다. 하지만 지병인 당뇨 때문에 육체노동을 계속할 수 없었고 쓰러져 눕기 전 까지는 다방 주방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군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활발한 성격으로 학교성적은 중간 정도, 친구 관계도 원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버지 사망 이후 병을 앓는 어머니가 술에 의지하면서 생계곤란과 절망감의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어머니와 대화가 별로 없었던 송군은 이때부터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자신을 12평 공간에 가둔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송군에게는 이모와 고모가 있다. 고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연락이 끊긴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신씨 언니는 지난 4월 동생과 마지막 통화를 했다고 동사무소 관계자에게 말했다. 당시 술에 취한 동생(송군 어머니 신씨)이 도움을 요청했고 그 모습에 화가 나 호통을 치자 연락을 끊었고 이사를 간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송군의 이모는 동생(신씨)의 사망소식을 들은 5일 송군을 서울 집으로 데리고 가 하룻밤을 자면서 함께 살 것을 권유했으나 송군은 이모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어머니와 살던 경기도 이천 집에서 계속 살길 고집했다고 이를 지켜본 박정원(여·33·이천시 창전동사무소 사회복지사)씨가 6일 전했다.

송군과 어머니를 외면하고 격리시킨 모든 사람들이 죄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6일 오전 신씨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밝혔다. 신씨의 시신은 '어머니가 죽으면 화장해 달라고 했다'는 송군의 말에 따라 오후 2시께 강원도 원주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이모 가족과 학교 교사, 동사무소 관계자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쓸쓸하게 재가 된 신씨의 유골은 경기도 여주의 한 사찰에 안치됐다.

송군의 집 입구. 어머니 신씨의 시신은 출입구 좌측 안방에 있었다.
송군의 집 입구. 어머니 신씨의 시신은 출입구 좌측 안방에 있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어머니의 시신 곁에서 6개월 동안 지낸 송군의 사연을 전해들은 국민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한 소년이 끔찍한 고통을 겪는 동안 무관심으로 지낸 이 사회에 대한 자책과 탄식이 쏟아진 것이다. 이와 함께 송군을 돕고 싶다는 독지가들의 손길이 뒤늦게나마 줄을 잇고 있다.

이천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The Pet'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6일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야하는지. 지난 1년 아니 지금까지 나는 나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면서 살아왔는지. 그저 그렇게 나만 위해 살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5일 저녁 뉴스를 보며 이게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내 자식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을 빼고는 우리 자식도 이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를 탓하고 반성합시다. 출근길과 퇴근길 한번이라도 주위를 돌아보며 그동안 무성의했던 일들을 접어두고 한번쯤 배려합시다. 연말입니다. 큰 것보다 작은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이 겨울이 따뜻함을 느끼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우리모두 힘을 모읍시다. 송군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또 '시민'이란 이름으로 같은 날 글을 올린 네티즌은 "친척이나 아버지도 없이 홀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송군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라면서 "전기와 난방이 끊긴 어둠과 추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머니가 죽는 순간에도 송군 이외에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니 슬픈 현실"이라며 이는 모두의 책임이라고 자책했다.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는지 한탄스러울 뿐"

또 '김성근'이란 이름으로 5일 글을 올린 네티즌도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6개월을 보냈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습니다."라면서 "이 나라가 어쩌다 남의 일에 무심한 인정으로 변해 버렸는지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웃의 숟가락 수까지 알고 지냈던 훈훈한 인정이 넘쳤는데…"라고 삭막한 세태를 꼬집었다.

송군이 거주해온 경기도 이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두희(36)씨는 6일 "집사람과 함께 송군의 사연을 듣고 어찌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든지 견딜 수가 없었다"면서 "중3학생이 홀로 겪은 고통을 외면한 사회의 책임이 가장 크며 어떻게든 송군을 돕는데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송군 돕기를 호소했다.

창전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윤남선(여·45)씨는 같은 날 "종중 차원에서 학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독지가, 송 군의 정신치료 비용을 대겠다는 등 50명 이상의 전화가 걸려 왔다"면서 "사회가 이 아이를 완전히 버린 게 아니라는 현실이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갑작스런 도움과 관심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이후 상황을 염려했다.

송군을 지켜본 주변 관계자들은 정신적 치료와 안정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친지와의 단절과 사회의 냉담함이 만들어 낸 마음의 병이 매우 큰 문제라는 것이다. 송군은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화장장에서도 '어머니가 좋은 데로 갔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을 뿐 작별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창전동 사회복지사인 박정원씨는 "송군이 주변에 나타난 뒤 일관되게 보여준 모습은 슬픈 기색도 없었으며 감정이 사라진 듯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면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사랑을 받지못한 탓인지 스스로를 폐쇄시키며 사는 나름의 생존방법을 체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몹시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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