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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모래시계> 재방송해요. 시간있으면 보고가세요.”

지인(知人)의 한국음식점 개업을 축하하러 들렀다가 돌아가려고 일어선 참이었다. 그때 음식점 중앙에 위치한 박막(薄膜)형 대형TV의 화면에 흘러나오는 모래시계의 영상에 시선을 멈췄는데 그가 그렇게 붙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모래시계>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시간들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내가 모래시계를 처음 본 것도 도꾜 신쥬큐(新宿)에 있는 한 지인(知人)의 맨션을 방문했을 때였다. 요즘 한국에서 대단히 인기있는 드라마라고 하며 권하는 것이었다. 주말드라마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국생활에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의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비디오를 틀었다.

그리고 이틀동안 정확히 그 자리에서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리라. 허겁대며 직장생활에 묻혀 생활 그 자체에 분주하기 이를 데 없던 내게 잊혀졌던 시대적 역사와 아픔이 마치 석유 묻은 신문지에 불이 붙듯 확하니 되살아났다. 언제 그런 것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내자신도 놀랐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일부를 <모래시계>는 아프도록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물론 등장인물의 성격의 일관성 문제에 아쉬운 점도 있었고, 진지한 역사와 시민의식보다는 폭력과 불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도출해 나가는 대중드라마로서의 한계를 나름대로 느끼긴 했다. 그러나 모래시계가 주는 감동은 압권 적이었다.

60년대생, 80년대 격동의 시대를 거쳐간 30대의 사람들. 소위 말하는“386세대”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게 <모래시계>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국민교육 헌장>을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국민학교라는 용어는 일제가 우리에게 남은 식민주의의 잔재 )에서 달달 외우도록 하였던 시절, 그토록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가 밀폐된 요정에서 중앙정보부장에게 비참하게 사살 당하고 전국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난 전두환 정권.

“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을 위한 국가 조찬 기도회” 아직도 그의 출현을 대문작만하게 보도한 신문의 1면 톱 장면이 생각이 난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뭔가가 수상쩍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일어난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는 북한 간첩과 불순세력에 의한 폭동으로 모든 언론은 보도하고 있었다. 광주의 진실을 알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서부터였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대자보가 수시로 나붙었고, 비밀리에 인쇄된 전단들이 교내에 뿌려졌다. 우리는 학교에 드나들 때마다 철저히 전경들로부터 가방조사를 당해야 했다. 그들은 그러한 진실들이 퍼지는 것을 극력으로 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시민군들의 증언을 통해 설마하는 일들이 그 곳에서 일어났고, 숨겨진 광주의 학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광주의 진실을 밝혀야 하며 그것은 그때 무참히 죽었던 이들에 대한 살아있는 이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 머지않아 한국의 땅을 떠났고 낯선 이국 땅에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 <모래시계>는 잊혀졌던 역사의 아픔과 민족의 고통,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모순구조, 그리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굳건한 의리와 사랑을 일깨워준 것이다.

빨치산인 아버지를 둔덕으로 육관사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자 조직폭력의 일원이 되면서 정치판에 뛰어든 태수, 삶의 억울함과 질고를 해결하기 위해 오로지 사법고시에 매달려 드디어 검사로서 올바른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우석, 그리고 한때 운동권출신의 여대생에서 카지노 업계의 회장으로 화려한 변신을 한 혜린, 찬란하기까지 했던 이들 삶의 이야기가 끝내 돌아올 수 없는 태수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드라마 <모래시계>.

오늘 다시 본 <모래시계>는 마지막 편이었다.

마지막 편을 보면서 나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 잡혔다. 그것은<모래시계>에서 비쳐진 과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비밀장부”로 상징되는 정경유착의 고리이다. 법을 무시하고 뒷거래로 권력에 아부하고 그 떡고물을 챙겨먹는 “카지노”업으로 상징되는 기업꾼들과 정치꾼들의 행태는 지금도 하나도 변한게 없다. 이는 여전히 한국정치와 사회의 전근대성과 후진성을 의미한다.

돈액수도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이다. 그런 돈을 받아 처먹은 한나라당, 민주당, 우리당 할 것없이 모든 의원들은 이번 기회에 “할복”은 못할 망정 정치일선에서 깨끗하게 물러나기를 바란다. 그대들의 둔감한 양심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좀먹는 해악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기회에 불법정치자금을 건네준 모든 기업들은 재벌이고 아니고 관계없이 법에 의한 처리를 해서 불법거래를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수백, 수천억원의 불법자금이 거래되고 법은 있으나마나한 부패공화국이 아니라는 점을 이번 기회에 세계에 선언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 대한 수사에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만다 하는 이야기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수구세력들의 거짓주장이다. 뇌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국가체제, 이중장부 등으로 분식회계를 밥먹듯 하는 기업풍토야말로 오히려 급변해가는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선진국가로 가는 길을 막는 결정적인 장애요인이리라.

또한 기본적으로 법이 존중되어야 하며 철저한 삼권의 분립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사법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권력의 시녀역할을 해온 검찰이 법에 의한 철저한 권한의 행사를 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권력형비리에 대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말고 철저히 수사하고 법에 의한 단죄를 해야 우리는 민족과 역사 앞에 조금은 체면을 차리고 설 수 있을 것이다. 특검제가 도입되어 대통령측근비리도 조사한다하니 하는 김에 모든 비리를 사정없이 파헤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밝혀진 이후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올바른 정당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직 멈추지 않은 모래시계의 시간을 멈추게 하고 이제 올바른 의미에서 국민이 주인되는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여기 <모래시계>에서 보여진 꿈이 현실화된 것이 하나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은 권력에 야합하여 권력의 이해에 따라 거짓보도를 일삼는 기존언론과 구별되어 보통사람이 주인되는 언론의 출현이다. <모래시계>에서 우석을 중앙정보부로부터 나오게 하였던 깨인 시민이 중심이 된 언론매체. 그것이 현실화된 매체가 바로 <오마이뉴스>가 아닐까하는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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