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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데는 다 놔두고, 왜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자고 했을까?
ⓒ 최승희

이코노미 증후군(오랜 시간 비좁은 좌석에 앉아 여행하는 비행기 승객들에게 일어나는 질환) 같은 것은 없었다. 시간은 11월 하순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채 해가 뜨기도 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찍부터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준비에 분주하다. 가까운 뮌헨은 제쳐두고 왜 갑자기 암스테르담?

유럽 생활 경험을 갖고 있는 샘 형은, 일단 유럽 여행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직도 근거 없는 권위와 엄숙, 획일이 인정 받는 사회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필히 여행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암스테르담이 무엇이길래 그러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 암스테르담의 야경
ⓒ 최승희

아우토반을 신나게 달린 캠핑카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가 넘어서였다. 물론 해는 진지 오래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인강변의 쾰른을 지나 암스테르담으로 오는 동안 연신 '이거거든!'하며 외쳐대던 해얼이 형. 어서 캠핑장을 찾아 물을 충전하고 오수도 버려야 하는데 일단 시내라도 한 번 둘러보잔다. 결국 보행자와 자전거, 트램(지상 전철), 버스, 승용차가 한데 뒤섞인 암스테르담 도심으로 들어섰다.

해외 풍물기행 프로그램에서 보던 장면 그대로였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그 사이사이를 흐르고 있는 골목, 도심을 거미줄처럼 엮고 있는 운하. 날씨가 찬 탓인지 두툼하게 걸쳐 입은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며 지나가는 모습과 딸내미를 무등 태운 아버지의 뿌듯한 얼굴,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멋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 거리를 은은하게 비춰주는 조명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노 비즈니스?"

그런데 캠핑카가 도심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에서 한 블록 떨어진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기 시작했다. 유난히 좁은 암스테르담의 차도는 자연스레 캠핑카의 속도를 늦추었고, 한국과는 달리 부담 없이 차도를 건너는 행인들과 뒤섞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여기저기서 예고도 없이 차도를 건너는 사람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사이, 더없이 상냥한 얼굴을 한 이가 보조석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

▲ "노 비즈니스?"
ⓒ 최승희

"노 비즈니스?"

노 비즈니스라니? 뭐지? 혹시 자기가 아는 사람과 착각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냥 술집이나 홍보하러 나온 사람일까? 겨울이라 여행자들이 많이 줄었을 테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암스테르담. 한 밤 중에 남정네 넷이 차에 탄 채 도심을 배회(?)하는 것을 보고 캠핑장이라도 소개해 주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유 니드……?"

뭔가가 필요하냐고 물으면서 담배 피는 시늉을 하던 그. 못 알아 들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재차 ‘노 비즈니스?’냐고 물었다. 도대체 뭐지? 네덜란드에서는 길에서도 담배를 파나?

이때,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지긋이 웃는 샘 형. 말 그대로 대마초나 헤시 등 약을 팔기 위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여기 오기 전부터 네덜란드 사회의 약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익히 들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자연스럽게 약을 판다? 우리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 이곳 암스테르담에서는 별다른 부담 없이 벌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암스테르담이 그저 약에 찌든 도시일까?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퇴폐와 향락의 도시일 뿐일까?

꼬마들과 ‘거리의 약사’

▲ 멋지게 차려 입은 할아버지 연사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암스테르담은 성 니콜라스 축제중!
ⓒ 최승희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지버그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암스테르담 구경에 나섰다. 널찍한 한강이나 보던 우리들에게는 정말 특이한 풍경일 수밖에 없는 도시 속 운하를 따라 이리저리 걷다 보니 이내 시내 중심. 유난히 많은 아이와 부모들로 보이는 이들이 몰려 있어 물어보니 성 니콜라스 축제를 즐기러 왔단다.

한 손에는 풍선, 다른 한 손에는 과자 봉지를 든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 앞에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연사. 겨울 날씨가 꽤 쌀쌀한 편이지만 모두가 하나 같이 즐거워 보인다. 동요를 연주하는 밴드와 과자를 나눠주는 광대들이 흥을 한껏 돋구는데, 실 가는 데 바늘 가듯 축제에 퍼레이드가 빠질 수는 없는 법. 동화 속 인물과 만화 주인공들이 살아난 듯 시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꼬마들은 물론 대륙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들까지도 축제에 빠져들게 한다.

▲ 주거지역에 섹스숍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그다지 부담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 최승희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이 어젯밤까지만 해도 '길거리 약사들'로 분주하던 거리라는 것이다. 물론 낮이라고 해서 그들의 비즈니스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어서, 조금만 더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그들을 볼 수 있다. 약사뿐만 아니라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나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까지도. 어색해 보이기만 하는 공존에 비단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는 미아리나 청량리로 대표되는 윤락가가 있다. ‘~가’라고 불릴 정도로 매춘 업소가 밀집되어 있는 그곳은 일반 주거지와는 분리된 특별 구역쯤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은?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들이 1층에 있다면, 2층부터는 일반 가정집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암스테르담에서만 12년째 살고 있는 괴버씨의 말이다.

또 식당이나 식료품점 옆에 별다른 구분 없이 섹스숍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광경이다.

동의하지 않기로 동의하다

네덜란드. 지난 2002년 선거를 9일 앞두고 이민에 반대 뜻을 보이던 우파 정치인 핌 폴탄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긴 했지만, 그 어느 사회보다 관용도가 높다는 나라다.

예컨대 우리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정도인 16세만 되면 상대의 동의 아래 섹스가 가능하고, 게이나 레즈비언끼리도 합법적인 결혼이 보장되는 곳이 네덜란드다. 또 이들은 성적 지향에 기반한 차별을 아예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이처럼 개방적인 네덜란드에서도 격렬했던 60년대 이후 히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암스테르담이니까.

▲ 네덜란드에서는 16세만 되면 상대의 동의 아래 섹스가 가능하고, 게이나 레즈비언끼리도 합법적인 결혼이 보장된다.
ⓒ 최승희

한 쪽에는 좋아라 하고 뛰어다니는 꼬마들이 있고, 한 블록 옆에는 약에 취한 이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도시. 공식적으로는 약을 소지하는 것이 불법이라지만 개인 용도로 적은 양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용인을 해주는 사회.

한국과 네덜란드.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에 두 사회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뜻 보면 무척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큰 충돌 없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이네들의 개방성 혹은 타인에 대한 존중의식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청년들마저도 자신과 다른 그 무엇에 대해서는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 머리 속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 언뜻 보면 무척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큰 충돌 없이 공존하는 암스테르담.
ⓒ 최승희

중독성을 떠나 약을 했다 하면 법적 처벌은 물론 사회적 매장까지 당연시하는 사회. 커밍아웃을 하면 본인은 후련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인간 이하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회. 아직은 너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온 내가, 그런 전제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이네들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드는 생각 하나. 귀는 꼭 막은 채 침 튀기며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도 동시에 존중할 줄 아는 자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누가 누구를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 유일한 사상이나 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사람과 생각들의 상호 경쟁이 사회를 지탱한다는 전제들. 암스테르담에 와서 보니 그 동안 너무 근엄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혼돈과 공존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근거없는 독선과 아집 속에 갇혔던 나, 이렇게 외쳐본다.

그래, 아직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홍석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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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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