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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열린 타법추 2회 공연에서 밴드 피아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28일 열린 타법추 2회 공연에서 밴드 피아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불꽃/0150
"만화가 김수정씨의 '아기공룡 둘리' 탄생 배경을 아시나요? 예전엔 만화가 청소년에 유해하다고 낙인 찍혀 있었어요. 검열에서 어린이는 어른에게 반말해서는 안됐죠. 미풍양속을 흐린다고. 국군은 무조건 이겨야 했어요. 북에 도움 준다고.

모자를 비뚤게 써도 안됐죠. 껄렁해 보인다고. 그래서 동물로 주인공을 만든 거랍니다. 동물은 이래도 저래도 되니까요. 그렇게 검열을 하는 사이 일본은 만화를 마음대로 그리게 해서 지금은 세계 최대 만화 강국이 됐습니다.

문신도 마찬가지예요. 세계적으로 문신은 예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아직까지 문신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범죄자 취급하고 있어요."


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말이다.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문신예술가 김건원씨 구명운동과 '문신' 법제화를 위해 만들어진 타투법제화위원회(아래 타법추, http://cafe.daum.net/artistgun ) 추진위원이기도 한 박 화백은 29일 서울 홍대 앞 사운드홀릭에서 열린 '문화의 다양성과 인권을 위한 Soul on your skin' 두 번째 공연을 통해 위와 같이 말했다.

지난 28일과 29일 양일에 걸쳐 진행된 이번 공연은 '문신은 몸에 영혼을 새기는 예술'이란 슬로건 아래 총 600여명의 관객이 '문신의 자유화'를 위해 신명나는 파티를 벌였다. 한편 공연에 참가한 신해철, 강산에, 최소리밴드 등 가수들의 출연료는 전액 타법추 활동에 사용될 계획이다.

첫날 공연 사회를 맡은 신해철씨.
첫날 공연 사회를 맡은 신해철씨. ⓒ 불꽃/0150
"문신의 자유를 허하라!"

아직도 우리나라에서의 문신은 조직폭력배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문신인구가 약 50만명에 이르게 된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아직까지 의사들만이 시술할 수 있다. 의사 아닌 다른 사람이 시술하면 의료법을 위반하게 된다. 그러나 문신을 한 사람 중 의사에게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같은 법에 충실한다면, 축구스타 안정환 선수도, 가수 윤도현씨도 불법행위에 동조한 셈이다. 실제 김건원씨에게 문신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교수, 전문직 종사자, 학생 등 일반인들이라고 한다. 문신의 자유가 허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최소한의 자격증과 위생 교육을 받은 전문가를 양성해 음지에 숨어있는 문신을 양지로 끌어올리자는 것이 타법추의 생각이다.

이런 가운데 타법추가 마련한 것은 문화적인 코드를 접목시킨 대중예술 공연. 이들은 지난 9월 '제1회 Soul on your skin'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첫날 공연의 사회는 그룹 '넥스트'의 신해철씨가 맡았다. 특히 신씨는 앨범작업과 공연준비로 바쁜 와중에 자리를 함께 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날 출연진은 록그룹 불독맨션, 뉴리안, 힙합가수 MC 스나이퍼, '서태지씨의 1호 제작 밴드' 피아 등 4팀. 각 팀들은 저마다의 음악적 모습으로 공연장을 가득 메운 팬들에게 음악을 선사했다.

"우리가 외치는 것은 합법화도 아니고 법제화입니다. 문신 시술자에게 적용할 법이 없어 '의료법' 위반으로 구속했어요. 기득권자들은 맘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법 적용을 하고 있어요. 혹시 내일 저를 청바지 규제법 위반으로 구속한다고 할지 어떻게 알아요. 무서워서 어디 살겠나요?"

신해철씨 특유의 입담으로 공연장 분위기는 한층 뜨겁게 달궈졌다. 가수 뉴리안씨는 "어릴 때 하도 못되게 굴어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에서 유치하지만 선하게 살자는 뜻으로 천사 문신을 새겼다. 이따금씩 이를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곤 한다"고 말한 뒤, "끝까지 타법추 활동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날 공연은 노홍철씨의 사회로 최소리 밴드, 위치스, 강산에씨가 참여했다. 위치스와 최소리 밴드는 1회 공연에도 참여한 바 있다.

특히 이날 박재동 화백의 둘리가 만들어진 배경 설명이 끝난 뒤 무대 앞으로 나온 문신예술가 김건원(27. 여)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둘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몰랐다. 지금 내 심정은 이전 만화가 분들의 것과 비슷할 것"이라며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날 공연의 메인 출연자 강산에씨.
둘째 날 공연의 메인 출연자 강산에씨. ⓒ 불꽃/0150
의미도 재미도 한자리에서,"우리는 놀면서 저항한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저항은 웃으면서 재밌게 해야한다'고 했다. 우리들의 저항 방법은 이전처럼 성질 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즐기면서 하면 된다. 공연 참가자들은 그저 와서 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신해철씨의 말이다. 이번 공연은 기획자, 공연참가자, 관객 등 모두 만족할 만했다. '소수문화의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저항도 놀면서 한다'라는 분위기는 자연스레 마련됐다. 특히, 공연 중간 타법추 위원들의 발언으로 조금씩 시간이 지연됐음에도 관객들은 환호를 보내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공연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언급하며 '저항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신씨는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재미가 없어지고, 공연만 강조되면 의미가 죽는데 이번 공연은 그 중간정도로 적당히 버무려졌다"고 공연에 대해 평한 뒤, "오늘 관객들은 거의 100% 의미에 대해 공감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흐뭇해했다.

둘째 날 공연에서 건재함을 보인 강산에씨도 이번 공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10여년 간 내가 참가해 본 많은 공연에서 의도한 명분이 잘 살려진 공연이라 아주 인상적이었다. 명분을 살리기 위해 공연이 망각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측면에서 오늘 행사는 만족한다. 작은 클럽이지만 여러 가지 배려를 해준 것 같다"

최소리 밴드의 리더이자 드러머인 최소리씨 역시 "관객들이 지난 1회 공연에 비해 취지를 더 잘 알고 온 것 같다"며 "예술가의 저항은 예술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 이를 관객들도 충분히 즐기면서 문신법제화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8일 우연히 공연장 앞을 지나다 들렀다는 김준범(22, 대학생)씨는 "문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새롭게 받아들이게 됐다"며 "이번 행사는 단순히 문신의 법제화가 아닌 억압받는 소수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참가자들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김건원씨의 어머니 신소정(50)씨는 "방송에서 문신하면 조폭이라는 공식을 만들 정도로 어두운 면만 부각시켰다"고 지적한 뒤, "다양한 시각으로 문신의 예술적인 면을 함께 보도했다면 지금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원이에게서 오히려 배웠어요"
[인터뷰]문신예술가 김건원씨 부모님

▲ 건원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가족. 왼쪽부터 동생 상윤씨, 아버지 김형수씨, 어머니 신소정씨 그리고 건원씨.
ⓒ강이종행

1회 공연 때부터 공연장 뒤 구석에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 남녀가 눈에 띄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건원씨의 부모인 김형수(56)씨와 신소정(50)씨. 기자는 공연이 끝난 밤 11시부터 1시간 가량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는 '건원씨 부모님의 아픔'에 대해 들으려 했지만 오히려 이들은 "딸애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워간다. 고맙다"고 말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옳은 것에 대해 뜻을 굽히지 않았던 아이였어요. 그러나 문신을 한다고 했을 때 이미 그 역사부터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문신에 대해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자기 논리를 갖고 있었지요. 도와주지 않는다는 전제로 허락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언제 범법자가 될지 두려울 수밖에 없었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문신은 불법 행위였으니까요."

이버지 김형수씨의 말이다. 결국 지난 6월 일이 터지자 "앞이 캄캄했다"는 김씨. 하지만 이후 경찰서에서 검찰에게 당당하게 조사를 받는 건원씨를 보며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이든 검사든 건원이가 업자가 아니라 예술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건원이가 구속된 뒤, 재판 들어가기 전에 검사 손에서 무혐의를 받아 풀려나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죠."

어머니 신소정씨는 "앞으로는 문신예술가로서 건원이를 밀어줄 작정"이라며 "이번 싸움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 문화가 존중받게 되는 사회로 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생각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 강이종행

문신 법제화, 어디까지 왔나

문신법제화는 가능한 것일까? 문신문제가 사회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김건원씨가 지난 6월 13일 '병역기피자에게 문신'(문신을 하면 현역병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해 병역기피의 목적으로 문신을 하는 경우)을 새겨줬다는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문신 시술 당시, 김씨 자신은 '병역 기피용 문신'이라는 점을 몰랐다는 점이 인정돼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나, 검찰에서 '문신시술은 불법 의료행위다'라며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 혐의로 김씨를 다시 기소했다. 김씨가 불법 의료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를 인정, 징역 1년 벌금 300만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이에 항소했고 '보건범죄단속특별법과 의료법이 의료 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짓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현재까지 김건원씨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오는 12월 4일 수원지법에서 공판이 있을 예정이다.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문건영(30) 변호사는 "법제화보다 자유화가 먼저다. 문신을 '의료법' 적용에서 빼라는 소리다"며 "문신 자체를 처벌하지 말고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해죄 등 일반법으로 처벌하는 식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인(47) 민변 부회장은 "현재 진행중인 헌법소원은 직업선택, 평등권, 인간의 존엄가치, 예술의 자유침해 등의 문제로 분명히 받아들여 질 것"이라고 법제화 가능성에 대해 확신했다. / 강이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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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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