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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 사고 당시 피해차량은 사진과 같이 좌회전 신호를 받고 진행중이었고, 좌회전을 하자마자 교차로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해온 가해차량과 충돌해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 사고 당시 피해차량은 사진과 같이 좌회전 신호를 받고 진행중이었고, 좌회전을 하자마자 교차로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해온 가해차량과 충돌해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 이소희
2003년 11월 28일 새벽 0시10분경 경기도 오산시 원동 천일사거리에서 미 제10전투비행단 소속 미군 제리 스콧 중사가 만취 상태로 차량을 운전하다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 좌회전 신호를 받고 선두에서 세번째로 진행하던 비스토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비스토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던 세 명은 그대로 밖으로 튕겨져 나가 기모씨가 사망하고, 운전자를 포함한 동승자 4명은 골반뼈 골절, 흉부 타박상 등의 중상을 입었다. 그에 비해 제리 스콧 중사는 충돌 당시 머리가 앞 유리에 부딪히면서 이마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는데 그쳤다.

사고 직후 인근 운암파출소에서 출동했을 때 미군 운전자는 동승한 미군 2명과 함께 차를 두고 이미 도주한 뒤였다. 현장 출동한 경찰에 의하면 '스키드 마크'는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당시 차량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채 질주하여 차량 충돌 후에도 한참을 진행했다는 목격자 진술에 따라, 노면이 약간 젖어있던 데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 스키드 마크가 크게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리 스콧 중사가 운전한 가해차량. 차량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지고 우측 타이어가 펑크 나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리 스콧 중사가 운전한 가해차량. 차량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지고 우측 타이어가 펑크 나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통일뉴스 이철화

음주 사실은 인정하나 신호 위반은 부인

이후 경찰은 두고 간 차량에서 미군 신분증과 철모 등을 확보하여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미군측에 수사 협조를 의뢰하였고, 오전 7시경 미군측으로부터 새벽 6시경 용의자를 소속부대에서 검거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경찰은 곧바로 미군 용의자의 출두를 요구하였고, 오후 2시 30분경 미군 운전자의 신병을 인도받아 오후 6시경까지 1차 소환조사를 벌였다. 조사 과정에서 가해 미군은 운전사실과 음주사실은 인정하였으나 신호위반 사실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미군측에서 작성한 진술서에 의하면 신호위반 사실에 대해 "빨간 불에서 노란 불로 바뀌었을 때 진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음주에 관해서는 미군측에서 용의자 검거 후 새벽 6시 50분경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6%로 나왔다고 하는데, 담당 경찰서에서는 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채혈까지의 경과시간을 감안하면 0.105%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말하고 있다.

국내법상 혈중 알코올 농도 0.1% 이상은 만취 상태로 면허 취소 및 형사입건 사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당시 음주 측정은 미군측에서 단독으로 진행하여 혈액이 뒤바뀔 수 있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에서 미군의 소환조사시 따로 채혈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이에 경찰은 일단 미군측으로부터 용의자의 혈액 샘플을 넘겨받아 12월 1일 국과수에 정확한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만일 조사 결과 미군측의 측정 결과와 크게 차이가 나는 등 의심이 나는 경우에는 동일인의 혈액임을 확인하기 위해 따로 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채혈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군이 두고 간 차안에서 확보한 미군 용의자의 신분증, 철모 등의 증거품
미군이 두고 간 차안에서 확보한 미군 용의자의 신분증, 철모 등의 증거품 ⓒ 통일뉴스 이철화

미군측 '제2의 여중생 사건'될까 조바심

미군측은 이번 사고가 제2의 여중생 사건으로 확대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군측은 사고 당일 미8군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주한미군이 관련된 차량사고로 한국인 기모씨가 목숨을 잃은데 대해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사망을 야기한 차량사고 현장을 떠난 혐의로 올켄 병장에게 군형법 134조를 적용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 가해 미군은 평택에 있는 미 육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어서 사고 다음날인 29일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주한 미군의 모든 장병을 대표해서 뜻하지 않은 비극에 진심으로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편, 소속부대 버프킨(Buffkin) 연대장, 팬더개스트(Pendergast) 대대장, 훼더리치(Federici) 법무참모가 피해자 유족 및 가족들을 만나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고 기씨 유족에 200만원, 운전자 이씨에게 차량 손괴비까지 감안해 80만원, 나머지 동승자 4명에게 각 50만원씩을 전달하고 이후 보험사에서 보험처리를 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후 확인된 바에 의하면 미군 차량은 애초에 AIG보험사에 가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10월 22일 해약해 지금은 무보험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행히 피해 차량이 삼성화재 무보험차 피해에 관한 특약에 가입되어 있어 일단 삼성화재측에서 보험 처리 후 미측에 구상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미군 피의자 구속 여부 관심

검찰과 경찰은 현재까지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기소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2001년 SOFA 개정 이후 기소시 신병 인도를 받을 수 있는 12개 중대범죄에 속하여,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기소와 동시에 미군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첫번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 피의자는 통상적으로 모든 재판절차가 종결된 뒤에야 신병을 넘겨받아 구속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정부의 구금인도 요청에 대해 호의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조항도 있긴 하나 이는 그야말로 '호의적으로 고려한다'는 것뿐이어서 별다른 강제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개정 여론이 높아지자 2001년 SOFA 개정을 통해 살인, 강간을 비롯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 사망사고, 뺑소니 사망사고 등 12개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기소와 동시에 구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12개 중대범죄에 속하는 경우라도 한국정부의 구금 인도 요청이 있고, 이에 대해 미측이 '그같은 구금의 상당한 이유와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하여 구금을 인도한다(합의의사록 제22조 제5항 (다))고 나와있어 실제 미군 피의자를 기소와 동시에 구속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작년 여중생 사건 때 한국정부의 재판권 포기 요청에 대하여 미군측이 끝내 거부한 사례를 보면, 미군측이 한국정부의 구금 인도 요청이 있더라도 쉽게 신병을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 보더라도 개정 이후에도 여전한 SOFA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만연한 미군 교통사고에 대한 대책 절실

따라서 일단 정확한 수사를 통해 진상 규명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 그를 토대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미군측에 조기에 구금 인도를 요청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음주운전에 신호위반, 사망사고, 뺑소니, 그리고 무보험까지 죄질이 극히 나쁜 경우로, 내국인이었다면 당장 구속수사에 실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근래 들어 미군 교통사고가 전체 미군범죄의 70-80%에 해당하고, 특히 음주 사고 발생비율이 매우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엄정한 법적 처벌이 절실하다. 더불어, 미군을 상대로 음주 운전에 대한 단속과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도 함께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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