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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인수위 시절 초기에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4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고려했을 만큼 유신정권 이후 역대 다른 어느 정권보다도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 청와대조직체계에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을 두어 과학기술인들의 오랜 염원을 나름대로 해소해 준 것도 현 정권의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탈이공계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공계 위기심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난 21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조찬모임에서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은 최근 매스컴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보도가 과장되어 있으며 실제로는 알려진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이공계 위기를 과학 기술계 스스로 해결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최근 이공계 기피의 심화가 매스컴의 다소 선정적인 보도 태도에 어느 정도 기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주무부처 장관의 입장에서 이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억제해보려고 하는 의도에서 그런 발언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 장관이 주장하듯 매스컴 보도가 아주 많이 과장된 것이고, 따라서 이공계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최소한 내가 갖고 있는 자료들은 박 장관이 인식하는 것보다는 매스컴에 보도된 것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다고 가리키고 있다.

지난 12일 경실련과 과학기술인연합에서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서울대 이장무 교수는 1999년 입시 전후로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는 과학고 출신 학생의 수가 400여명 선에서 100명 선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통계자료를 인용해 보여주었다. 최근 이 숫자는 50여명 선으로까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서울대 공대로 가던 그 많은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올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내놓은 대입수능성적 백분율 자료에 따르면, 1998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공대와 의대,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수능 백분율이 각각 0.16%, 0.16%, 0.17%였다. 그러던 것이 2001년 입시에서는 0.64%, 0.04%, 0.07%로 바뀌어버렸다.

이런 변화는 1998년 입시까지 이른바 자연계 우수 인력들이 공대나 의대, 한의대를 비교적 골고루 진학하던 것이 2001년에는 의대, 한의대로 심하게 집중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사설 입시 학원의 대입진학 사정표 순위에서 전국 대부분의 의대/한의대가 총망라된 후 서울 공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인터넷에서 과외시장을 살펴보라. 과학고 출신으로 중고등학교 때 전국 단위의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상위 입상했던 이른바 과학 영재들이 의대·한의대에 진학하여 과외시장에서 자신들의 과학·수학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일단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다가 ‘반수생’ 생활을 하며 수능을 다시 봐서 의대·한의대에 진학한 경우도 눈에 띈다.

도대체 무엇이 과장되고 무엇이 왜곡되었단 말인가? 박 장관은 매스컴들의 적나라한 보도가과기부의 그간 이공계 공동화 해결을 위한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기부가 그동안 내놓은 대책들을 살펴보라. 고작해야 이공계 대학 장학금을 늘려주고, 우수 이공계 인력을 외국에 유학보내주고, 병역특례혜택을 늘려주고, 이공계 원로에게 훈장을 주고 과학기술기념관을 지어주겠다는 정도다.

하지만, 현재의 탈이공계 열풍은 이런 정도의 대증책으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마치 환자의 환부가 곪아서 병균이 뼈 속까지 스며들어간 상황에서 살갗에 머큐로크롬을 바르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 환부를 가리려 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런 깊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려면 환부를 도려내고, 뼈를 깎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결국 박 장관의 이번 발언은 과기부가 능력이 없어 환자 치료를 못하니 환자 스스로가 죽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는 책임 회피에 다름 아니다. 사실 현재 과기부는 이공계 위기상황을 총체적으로 접근하여 근본적일 대책을 내놓을 힘이 없다.

현재 정부부처의 구조상 과기부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결국 이공계 위기상황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정부는 정권출범 초기에 ‘과학기술중심사회구축’을 4대 국정지표로 정하고 그 태스크포스(TF)를 정책실 산하에 두려고 했었지만 논란 끝에 무산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과학기술중심사회는커녕 과학기술 공동화사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현재 정책실 산하에 사회통합기획단이라는 것이 있어 빈부격차완화와 차별시정TF, 노동개혁TF, 농어촌 대책TF가 설치되어있다. 대통령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기에 ‘이공계 공동화 대책TF’를 추가로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우리의 이공계 우수인력들이 적재적소에서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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