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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정국의 변화가 현실이 되었다. 처음 특검 법안이 한나라당에 의해서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 가장 컸던 우려는 수사대상이 수사권자를 선택하려 하고,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치자금 정국이 희석되어 특검 정국으로 변화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한때나마 국민 앞에 석고 대죄 운운하던 한나라당은 특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자마자 반성의 모습은 간데 없고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살기 등등한 모습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회의원 3분의 2가 의결해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특검법 수용을 외치는 측은 신성한 국회의 뜻과 대통령 측근 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하고 있고, 거부를 지지하는 측은 정치권 비자금 관련 수사의 철저한 이행과 절차에 맞는 법 집행을 논리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특검 정국은 비자금 정국보다 더욱 난해하기까지 하다.

정치는 명분과 논리의 싸움이다. 따라서 수용과 거부, 양쪽 모두 비슷한 크기의 명분이 있는 특검법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뱉기도 아깝고 삼키기도 힘든 계륵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정치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실익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검을 거부했을 경우, 한나라당은 파상적 공세를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말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퍼부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시 국회로 넘어 온 특검법안은 야 3당의 합의로 재의결되어 확정될 것이다. 그 사이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검찰이 수사를 모두 마치고 결론을 공명하게 내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결론은 끝없는 의혹에 휩싸이게 되어 대통령이 힘들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검찰의 독립성도 흐지부지 되고 말 것이다.

그 사이, 특검을 거부했다는 것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함을 의미한다는 의심의 칼날은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을 난도질 할 것이고, 대북송금특검은 수용하면서 자신과 관련된 특검은 거부했다고 개혁성향의 세력들마저 노무현 정권의 지지층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렇게되면 내년 총선은 노 대통령에게 시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 없고, 자신도 깨끗하지는 못하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특검의 결과가 대통령에게 티끌만한 잘못이라도 나올 수 있다는 개연성까지 생각한다면 이 경우 대통령은 지지도 하락과 총선 실패, 거기에 그동안의 정국 불안의 책임까지 모두 떠안아야 하는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물론, 특검을 수용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도덕적 타격은 노 대통령 몫이다. 대통령의 도덕성 확보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만큼 여론의 믿음도 컸기에 특검 결과에 대한 타격은 상상보다 분명 클 것이다. 더군다나 벼르고 있는 한나라당의 독설까지 더한다면 수용하지 않았을 때의 그것과 비슷한 크기로 노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힐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비자금에도 똑같이 칼을 댈 수 있는 실익이 생긴다.

여기서도 검찰은 정치 시녀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길이 있다. 특검을 수용했을 경우, 검찰의 대통령 측근 비리 관련 수사 권한은 유명무실해지만, 그만큼 비자금 관련 수사에 쏟을 수 있는 여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검찰이 한나라당 비자금을 철저히 수사한다면 이 또한 검찰에게는 정치 시녀에서 탈피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죽은 권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이다.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헌법에 버젓이 나와있는 대통령의 거부권마저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억지를 부릴 수 있는, 현재 국회의 최대 다수당이며 50년 가깝도록 부와 권력을 이어 온 현재의 대통령보다 더 크게 살아서 꿈틀대는 권력이다. 그런 한나라당이기에 그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도 검찰은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대통령은 정치적 명분만 보지 말고 실익도 따져보아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특별 생중계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공식적으로 한나라당에 요청해야 한다. 자신도 특검을 수용할 테니, 한나라당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대통령이 특검을 받아들이는 대신 한나라당 스스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위해서 계좌추적이나 중앙당 압수수색을 감내해 낼 것이라고 온 국민 앞에서 약속하게 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중동을 위시한 모든 언론들이 1면에 대서 특필하게 하고, 검찰은 모든 조직을 움직여서라도 공명정대하게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엇을 선택하든 대통령은 이래저래 잃을 것이 많아 보인다. 아니, 대통령은 이미 많은 부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이 잃을 상대가 분명히 있다. 무슨 선택을 하든, 대통령도 어차피 잃을 것이라면 정확하게 규칙을 만들어 상대도 잃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룰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정확하게 계약서를 들이밀어 도장을 찍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상대가 얼마나 많은 것을 부도덕하게 누리며 살아왔는지만 세상에 밝혀진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잃은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걸 노무현 대통령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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