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정환
편집자들은 '키우고 보는' 편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조선> 노동조합 소식지 44호(2002년 7월 30일자)는 "일선 편집자들의 의도가 '위에서의 한마디'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완전히 뒤집히는 상황"이라고 적시했고, 2001년 3월 22일자 <미디어오늘>도 "철저히 취재한 뒤 편집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아무리 당사자가 다칠 것을 우려해도 우선 데스크는 키우고 본다"는 일선 기자의 고뇌를 전달했다.

과거(?)는 아직도 유효한 모양이다. '최초의 스포츠지 직선 편집국장'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던 <스포츠조선> 조석남 편집국장은 지난 7월 노동조합 소식지와의 인터뷰에서 1면 편집과 관련한 질문에 "지금은 다양한 메뉴와 제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은 바 있다.

이와 같은 선정성 경쟁은 <스포츠투데이> 창간(1999)으로 불붙기 시작해서 <굿데이>탄생(2001) 이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과열되고 있다.

이쯤에서 굿데이신문(주) 대표이사 이상우 회장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다.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일간스포츠> 사장, <스포츠투데이>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스포츠지 창간의 귀재'로 불리는 이 회장은 동시에 '가벼운 스포츠신문만이 살아남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01년 6월 14일자 <미디어오늘>은 스포츠신문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 회장이 창간에 개입하면서 격화된 스포츠신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문사들이 더욱 흥미 위주나 선정적인 지면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스포츠신문의 선정성 문제에서 이 회장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

후발주자 <굿데이>의 생존 전략은 '더욱 화끈'하다.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스포츠신문바로잡기운동본부가 발표한 9월 스포츠신문 모니터 결과에서 <굿데이>는 연예오락기사의 선정성 및 인권침해 사례(100건), 연재만화의 폭력성·선정성·여성비하 사례(107건)에서 기존 신문들을 제치고 각각 1위를 차지했다.

"하루에 20~30꼭지 생산하는 기사 자판기"
조중동 다음으로 열독률이 높은 신문은?


스포츠지의 과당 경쟁은 이른바 '초쇄 경쟁' 또한 강화시켰다. <미디어오늘>은 "1985년만 해도 오후 4시였던 초판 인쇄가 1999년 <스포츠투데이>가 창간한 뒤에는 오전 11시 30분으로 완전히 굳혀졌다"면서 "사실상 조석간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점심 시간부터 지하철 가판대에서 '내일자 신문'을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피 말리는 초쇄 경쟁은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요구한다. 우리나라 스포츠지 기자 숫자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스포츠조선> 노동조합 소식지 '병신 같은 자식, 우리는 하루에 혼자 3-4면을 막아도 멀쩡한데'라는 월드컵 회고담을 들어보자.

당시 모 스포츠신문은 "한국이 스페인에 패해 월드컵 4강이 좌절된 순간 황선홍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는 기사를 내보내 논란을 빚었다
당시 모 스포츠신문은 "한국이 스페인에 패해 월드컵 4강이 좌절된 순간 황선홍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는 기사를 내보내 논란을 빚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전담한 축구부 기자는 4명. 이들은 하루에 20-30꼭지의 기사를 생산했다. 믿지 못하겠다면 데스크 프로그램에서 직접 확인해 보라.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 기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기사 자판기'에 가까웠다. 월드컵 개막을 며칠 앞둔 어느날 '일본의 한 스포츠신문 기자는 매일 3-4꼭지를 쓰다가 과로사로 숨졌다'는 외신을 받아들었다. 축구부 기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빙신 같은 짜식, 우리는 하루에 혼자서 3-4면을 막아도 멀쩡한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빛은 나지 않는다. 부실 기사가 안 나올 수 없다. 최근 기사 조작 물의로 사직한 <스포츠조선> 기자 파문은 작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에 패하고 스페인에도 패했다는 오보와 비교하면 그래도 좀 괜찮은 편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스포츠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7월 23일자 <미디어오늘>은 한국리서치 신문 열독률 조사 결과에서 "5개 스포츠지 중에 4개지가 전체순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고, <일간스포츠>(4위) <스포츠조선>(5위) <스포츠서울>(6위)은 조중동을 제외한 중앙일간지와 경제지를 모두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스포츠투데이>는 10위, <굿데이>는 13위.

'어제 읽은 신문이 무엇이냐, 지난 1주일동안 어떤 신문을 가장 많이 접했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지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포츠지 논조에 따라 감독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고, 방송국 연예정보프로그램 PD들이 스포츠신문을 꼬박꼬박 챙겨 보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과거에 - 과거라고 믿고 싶다 - 영화·가요 담당자가 영향력 없는 매체 기자에게 'PR비'를 챙겨줬을까?

<굿데이> 화끈하게 사과하자

김병현 파문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스포츠지의 경우 다량 기사를 양산하는 후진 시스템이지만 영향력은 빵빵하다. 알맹이는 부실하지만, 어깨에 힘을 줄 만 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빵빵한 영향력으로 김병현에게 반말을 하고 카메라도 들이 대고 '선수 죽이기(?)'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골리앗이라고 불리는 스포츠지를 물리칠 만한 '다윗 신문'이 없다는 점 또한 작용한다.

꼭 2년전 <굿데이>. 창간 초기 <굿데이>는 보통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을 한 면에 걸쳐 소개하는 '굿피플'을 연재했다
꼭 2년전 <굿데이>. 창간 초기 <굿데이>는 보통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을 한 면에 걸쳐 소개하는 '굿피플'을 연재했다 ⓒ 굿데이PDF
어쨌든 <굿데이>도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김병현이 회사로 찾아와 카메라를 집어 던진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김병현도 14일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결과만 신경쓰지 마시고 과정도 살펴 주셨으면 좋겠다"고.

독자도 안다. 모 포털 사이트에서 김병현 폭력 논란을 보고 가장 안타까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네티즌 9209명중 ▲예의를 잃어버린 사진기자 2932명(31.84%) ▲사건을 크게 키운 해당 신문사 2730명(29.64%)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언론사들 1894명(20.57%)등 총 7556명(82%)이 언론사의 문제를 지적했다. 모두 김병현의 폭행 사실 여부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답변들이다.

CCTV에 연연하지 말자. 문제 촉발자는 <굿데이>요, 따라서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당사자도 <굿데이>다. 통렬한 자기 반성도 있어야 한다. 잘못된 취재 관행과 황색 저널리즘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에 대해 석고대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연후에 '김병현이 우리 신문사 기자 때렸어'라고 외쳐라. 그래야 이치에도 맞고 귀 기울일 마음도 생기지 않겠나.

<굿데이> 이상우 회장은 창간 인사말을 통해 "우리는 다섯 번째 스포츠신문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 매체 제1호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더욱 좋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여타 스포츠지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굿데이> 화끈하게 사과하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