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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전태일이 일기에 남긴 이 말의 뜻이 궁금했던 대학 초년생 시절이 있었다. 왜 그에게는 굳이 대학생 친구가 필요했던 것일까? 같이 현실을 공부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친구로서 대학생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럴 수 없었기에 그는 결국 자신의 뜻을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1970년 11월의 일이었다.

2003년 초겨울을 쌀쌀한 날씨처럼 우리의 산업현장도 차갑게 얼어 붙었다. 최악이라는 불경기와 실업난 속에서 다시 화염병의 노란 불꽃이 타오르고 노동자들은 또 다른 전태일이 되어 목숨을 내놓고 있다. ‘과격시위 엄정대처’를 요구하는 재계와 정당의 한 목소리에 정부와 검찰도 보조를 맞춰가는 모양새가 낯설지 않다.

70년대와 80년대의 노동운동이 바탕한 정서는 가혹한 노동착취에 대한 분노, 그것이었다. 지금의 격한 시위 양상 이면에, 거리에선 노동자의 가슴에는 ‘불안’의 정서가 웅크리고 있다. 경기불황과 실업난에 따른 실직의 불안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출구가 없는 불안과 이를 반영해 갈등을 해결해 낼 수 없는 우리의 정치적 의사소통 구조가 격한 시위의 원인이다.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표되지 못하는 자는 정치사회적 미아와 다름이 없다. 그런 미아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정당이다. 과연 우리 정당과 의회는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 내야하는 사회통합의 창구로서의 기능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최근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기업과 자본의 의사는 음과 양으로 의회에서 대표된다. 그러나 노동의 목소리는 그렇지 못하다는데에 격한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정당이 자신의 역할을 잊은 채 ‘엄단’을 요구한다는 것은 수준 이하에 가까운 행태다.

그러나 달리보면 이는 한국 노동운동의 실패이기도 하다. 조합원들이 목숨을 던지고, 거리에서 다시 화염병을 들어야만 목소리를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구시대적 상황을 재연한 책임을 노조도 면하기 힘들다. 과연 언제까지 조합원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는, 힘든 노동운동을 계속할 것인가?

전태일의 분신 이후 많은 대학생들이 죽은 전태일의 친구가 되기 위해 나섰다. 때로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던 몇몇은 더 이상 전태일의 친구가 아니었다. 전태일의 목소리가 대학생 친구들의 입에 의해 대변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당의 구조다. 대의제에 반영되지 못하는 목소리가 거리에서 분출될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동은 기업, 정부, 정당, 그리고 언론에 의해 포위된 고립무원의 신세다. 일부 언론은 작금의 과격시위를 가리켜 과대성장 집단의 횡포라고 흰소리를 늘어 놓지만 과소대표 집단이 과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 국가의 작동원리다. 격한 시위와 구속, 처벌 그리고 다시 격한 시위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갈등해소를 위한 창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밀고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년 총선에서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당당한 원내 정당을 만들기 위해 결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고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파업과 시위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며 고비용 저효율의 우리 대의정치 구조를 개혁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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