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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집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집 <나무>
<개미>이후, 꾸준하게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던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집 <나무>를 읽었다. 마치 그는 새로운 실험을 하려는 과학자처럼 다양한 시도들을 소설 속에서 구현해낸다. 이 소설을 통해 베르베르의 소설적 특징을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특이한 상황 설정’이다. 때때로 베르베르는 다소 황당무계할 수도 있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설정한다.

말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가전제품이 나오는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 그렇고, 시간 여행 전문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루이 14세 시대로 바캉스를 떠나는 <바캉스>가 그렇다. 투명한 피부를 가지게 된 남자가 등장하는 <투명 피부>와 독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왼손의 반항을 다룬 <조종(操縱)>도 예외는 아니다. 살인범을 잡도록 도와주는 나무가 등장하는 <말없는 친구>와 육신을 버리고 영양액 속의 뇌로 살아가는 남자의 일생을 다룬 <완전한 은둔자>는 더욱 기 막힌 상황 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적 배경의 설정이 완전히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 베르베르는 이러한 설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과학적 지식들을 동원한다. 그리하여 설정은 공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 현상의 세계로 정착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설정은 현실을 반영하는 훌륭한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아무 의심이나 호기심을 가지지 않고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던 사회나 시대, 현상에 대한 물음이 그 설정들 속에 담겨져 있다.

따라서 그의 상상력과 과학적 지식은 그의 소설을 구성하는 커다란 두개의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다.

과학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직조물, <나무>

<나무>를 통해 발견한, 두 번째 베르베르의 소설적 특징은 ‘간결한 문장’에서 발견된다. 그는 상상력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장황한 설명이나 너무 복잡한 과학적 지식은 오히려 상상력의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작가는 간결한 문장을 주로 사용하여 상황을 설명한다. 그의 소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작가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에도 날개를 달아준다.

베르베르는 소설의 주인은 작가인 동시에 독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점까지만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작가의 임무를 수행한다. 베르베르는 너무 세심한 인도자가 되면 재미가 반감되고 피곤한 여행이 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안내자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다양한 플롯 구성과 훌륭한 반전’이다. 드라마의 형태로 말하자면 베르베르의 소설은 비교적 많은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스피드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완급을 조절할 줄 안다.

<나무>에서 베르베르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소설의 전개방식이나 소설의 시점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텔레비전 채널의 방송 내용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지구인을 애완 인간으로 기르고 있는 외계인의 시점으로 풀어가는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반전이 돋보이는 <수의 신비>와 <황혼의 반란>이 그 예로 적절할 것이다.

다양한 시도와 변주로 구성된 플롯과 완급을 조절하는 이야기 전개 능력이야말로 무엇보다 뛰어난 요소일 것이다.

상상력의 세계로 떠나고 싶다면 ‘나무’를 봐라

영감과 아이디어로 가득찬 상상력의 세계로 떠나고 싶다면, 베르베르의 <나무>가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이 단편 소설집은 마치 현상을 있는 그대로만 인지하고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을 품지 않았던 독자를 자극하고, 신선한 상상력의 산소를 공급해 줄 것이다.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의 표출,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열린책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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