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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이 열린 5일 오후 5시 대학로. 수능 반대 페스티벌이 열렸다.
ⓒ 김진석
"12시간만 더 참았으면 됐는데. 그 힘들었던 고3에서 해방될 수 있었는데... 12년 동안 참아왔던 걸 1시간 만에 날려버려 너무 안타까웠어요..."

2004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진 5일 수능보던 여고생이 자살한 가운데 '수능반대 페스티벌'이 대학로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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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전교조, 학벌없는사회 등의 관련 단체들 주최로 열린 이 행사는 지난 3일 '입시 자살 학생 추모제'에 이어 수능 폐해에 따른 국가적 책임을 규탄하며 일반 시민들과 대안모색 의지를 표명했다.

고등학교 1, 2학년 50여 명이 참여한 페스티벌은 "자살한 학생은 곧 사회적 타살"임을 외치는 신일고 밴드부 '콜드레인'의 경쾌한 음악으로 막을 열었다. 이어 수능반대퍼포먼스 영상물 상영, 전교조 노래패 공연, 힙합 춤, 자살극, 자유 발언 등이 페스티벌을 장식했다.

노래, 극, 춤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지만, 페스티벌의 백미는 내년 수능을 앞둔 학생, 선생님, 대학생 등이 털어놓는 진솔한 자유 발언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은정(17)양은 "단순주입, 암기 위주의 공부로 인해 자연스레 교실이 무너지고 선생님마저 무시하게 된다"며 "대학을 의무 교육화시켜 졸업고사로 능력을 평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추모 발언을 듣던 한 여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발언을 듣고 있다.
ⓒ 김진석
같은 학년인 봉인권(17)군은 "언제까지 같은 친구끼리 서로 짓밟고 경쟁해야 하는가?"라며 "수능은 한국 사회에 얼마나 잘 길들여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그는 "경쟁을 강요하며 객관식 답 하나 몇개 더 맞히는 교육 보다 진정 인간으로서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토로했다.

배문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철호(42) 선생님은 "안녕히 태연하게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며 "수능은 학생들에게 점수로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의 꿈과 희망과는 전혀 무관한 수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수능으로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세상을 종지부 찍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한 해에 200여명의 학생이 성적비관과 스트레스로 자살을 한다고 한다. 오늘도 수능 1교시를 마치고 비관한 한 여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월에 이어 지금까지 벌써 4명의 수험생이 자살을 선택했다.

본 행사인 페스티벌이 끝난 후에는 NEIS반대와 오늘 수능 도중 자살한 여고생 추모제가 열렸다. '비둘기의 꿈' 이라는 노래로 잠시 묵념을 한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추모 발언을 하였다.

▲ 추모 퍼포먼스의 한 장면.(사진은 지난 3일 학생의 날에서 열린 퍼포먼스)
ⓒ 김진석
전교조의 김정욱(35) 선생님은 "오늘 오전 소위 '문제아' 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소년원 이수'라는 특별법이 통과됐다는 걸 들었다"며 "정작 아이들의 인권을 지켜줘야 하는 정부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그는 "학생이 자살을 하기 위해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라며 눈물을 보이고 끝내는 말을 잊지 못했다.

발언하는 이와 지켜보는 이 모두의 눈시울이 젖어들며 소리없는 울음이 잦아들었다. 이들은 기형적인 한국 교육의 희생양이 된 젊은 영혼들을 기리며 성명서를 끝으로 촛불 추모제를 마무리 했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에는 학벌주의 철폐와 입시주의 교육 개선을 촉구하는 집단 퍼포먼스가 열렸다.

'정치인 - 교육예산 확충않고 학연, 지연 얽매여서 싸움하기에만 바쁜', ' 서울대총장 정운찬 - 대한민국을 서울대 공화국으로 서열화의 정정! 망발을 일삼는', ' 기업가 - 기업의 이윤에 봉사하는 대학과 인력을 만들려하는 로비스트들', '교육부 - 19세기식 입시 주지 교과 위주 교육과정 엉망진창 교육정책 총책임자' 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던 소수의 권력자들이 학생들에 의해 무너진다는 게 퍼포먼스의 내용.

이를 통해 그들은 수능이 재생산하고 있는 경쟁이데올로기와 학력의 수직적 서열화를 상징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를 비판했다.

▲ 수능 당일 시험을 보던 한 여학생이 18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
ⓒ 김진석
3층의 계단이 있다. 1층엔 많은 학생들이 오밀조밀 모여있고 2층엔 선택받은 소수의 대학생들이, 3층엔 4명의 권력자가 있다. 선택받아 2층으로 올라가려는 학생들의 치열한 몸짓이 시작되자 게중 몇몇의 학생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몇몇의 학생들이 토익과 텝스 교재에 열중하고 있는 2층 학생들에게 소속된다. 계속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이 생겨나지만 서로 열띤 경쟁에 치여 관심 조차 얻지 못한다.

그 후 학생들의 정당한 실력 행사가 이어지자 '대학은 평준화하고 학벌 차별 금지법 제도로', '입시제도 정상화로 공교육을 정상화하자', '수능을 폐지하고 졸업 자격 고사 도입하라', '대학 서열화 폐지하고 대학교육 정상화 하라'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펼쳐지며 퍼포먼스는 막을 내렸다.

행사를 마련한 이들 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한국 교육 현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다.

<성명서> 죽음의 행렬 부르는 입시 지옥을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가?

1.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수능 성적을 비관한 학생이 스스로 꽃다운 목숨을 버렸다. 오늘 오전 전북 남원에서 수능시험을 보던 한 여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학벌주의 풍토와 그로 인한 살인적 입시경쟁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수능 철만 되면 연례 행사처럼 일어나던 일이 올해 또 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2. 우리의 꽃다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살인적 입시경쟁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가? 이는 결국 학생들의 고통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이며, 죽음의 행렬을 부르는 살인적 입시 지옥을 이대로 방치하고서는 우리 청소년의 미래는 절망뿐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3.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살인적 입시 경쟁의 폐해를 지적해 왔으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대학평준화를 통한 서열화 해소' 와 '학벌주의 풍토 해소' 를 주장해 왔다. 지엽말단적 미봉책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기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입시경쟁의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 문제의 근본을 외면하고서는 백약이 무효임이 확인된 이상, 이제 입시경쟁의 근본원인인 '대학서열화' 현상과 '학벌주의' 풍토 문제를 정면으로 적시해야 할 때이다.

4. 우리는 이번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학생의 절망스런 죽음에 대해 참담한 자괴감을 금할 수 없으며 이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살인적 입시 경쟁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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