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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주어진 일에 성실히 살고 싶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큰 사랑으로 실천하고 싶어요."

건양대 간호학과 이옥자(57) 교수의 삶은 다양하고 바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원천에서 샘솟는다. 간호학과 교수로, 정신보건 전문 간호사로, 수녀로, 사회복귀시설 '섭리가정'의 원장으로 1인 4역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 교수.

그녀는 지난 4월 대전 관저동에 '섭리가정(Divine Providence Home)'이라는 사회복귀시설의 문을 열었다.

"정신간호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병원의 환자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무한정 병원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많은 사람들이 정신 분열병에 걸리면 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소외당하죠. 정말 오갈 데 없는 사람들, 따뜻한 가정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섭리가정은 정신장애 환우를 위한 주거 시설. 다시 말해 만성정신질환자나 위기 중재가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따뜻한 가정에서 가족처럼 돌보면서 지역 사회로의 복귀를 준비하기 위한 중간 단계다. 버스 타기 등 기본적인 자기 관리, 일상 생활의 기술, 직업 재활 훈련 등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구봉산 자락에 마련한 농장에 가서 구슬땀을 흘리기도 한다.

대형 정신병원에서 수년 동안 있던 장기 환자들은 쉽게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하는 현실. 병원에 수용된 채 사회 복귀 능력을 잃어가는 그들을 이 교수는 따뜻한 사랑으로 변화시킨다.

ⓒ 권윤영
식사비, 간호사 인건비 등을 위해 입소비를 받고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입소비 없이도 돌봐주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받지 못한다. 천주섭리수도회에서만 일정 부분 지원과 협조를 해주고 있고 섭리가정을 위한 주거 시설은 그녀의 오빠가 그녀의 뜻을 이해하고 내주었다.

"섭리가정 가족들이 건강하게 회복해서 이 사회에서 각자의 제몫을 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한 대학생이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두어 달 머물다 갔는데 지금은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요. 가족처럼 편안하게 대해 주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 주 한 주 달라지고 있죠."

섭리가정은 현재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 위치에 있다.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이 구청 등지에 민원을 많이 넣어 어려움을 겪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주변에 정신병자가 있어서 불안해서 우리 아이를 엘리베이터에 태울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

이 교수는 부녀회장, 지역 주민들과 2시간에 걸친 대화를 진행한 끝에 그들을 설득시켰고 처음보다 주민들의 시선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민원은 들어오고 있다.

"오히려 마음이 약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에요. 질병 관리, 약물 관리를 하면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죠. 이런 센터들은 산 속에 있으면 안돼요. 교통이 편리하고 시장도 있는 주거 환경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빨리 적응하고 복귀할 수 있지 않겠어요."

고교 시절부터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 교수가 수녀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4년이 흘렀다.

"고등학교 때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정말 그분과 닮은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봉사하는 삶을 살면서 수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한평생을 사는 것도 보람 있을 것 같았고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되고 싶었어요.”

간호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간호 수녀로서 버려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장애인 모두가 가족처럼 느껴진다는 이 교수. 그녀의 가족 역시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의 옹호자, 대변자로 살기로 한 그녀의 결심을 소중하다고 여기고 도와줬다.

ⓒ 권윤영
"올해에는 제가 감사함을 많이 받은 해에요. 오빠가 수십 년 동안 저를 지켜보고 제 뜻을 도와주기 위해 선뜻 집을 내준 것도 그렇고 20년 전 제자가 노트북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그녀가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 양호 교사로 근무할 시기 한 학생의 폐결핵을 발견하고는 2년간 정성껏 돌봐주며 매일 치료를 해 줬고 완치가 됐다. 그 학생이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어머니 같은 선생님이라며 그녀를 찾은 것. 그녀는 양호 교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학생의 마음에 남았다는 것이 보람이라며 자신이 살아야 할 삶임에도 불구하고 20년 전 제자가 자신을 기억해 줬다고 고마워했다.

대형 병원에서 몇 년씩 장기 수용되는 환자가 없어질 수 있도록 섭리가정 같은 사회 복귀 시설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이 교수의 머리 속에는 또 다른 계획이 자리 잡고 있다.

섭리가정에서 가꾸는 채소밭
섭리가정에서 가꾸는 채소밭 ⓒ 권윤영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센터 설립이 그것.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호스피스 센터 설립이 법으로 통과가 안됐고 간호사에게는 합법화되지 않았기에 시일이 걸리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해 보고 싶은 일이다.

"사망 직전 6개월 기간은 적극적인 치료를 할 필요가 없어요. 경치 좋은 곳에서 통증 관리나 완화 요법을 하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말 편안하게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고 가족들의 부담도 덜어 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모든 이의 어머니 이옥자 교수의 새로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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