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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라는 무대에는 5년마다 같은 공연이 되풀이 된다. 배우와 무대는 조금씩 다르지만 줄거리에는 큰 변화가 없는 동일한 작품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연극이 언제나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부으면서도 늘 흥행에는 실패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연극의 주역은 대기업 총수와 정당 정치인이며 주연인지 조연인지가 늘 애매한 대선후보와 현직 대통령, 그리고 검찰도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 이 연극은 '소격효과(alienation effect)'를 추구한다는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브레히트 서사극의 충실한 적자(嫡子)이기도 하다.

소격효과 혹은 소외효과란 관객에게 일상적인 것을, 무대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낯설게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관객이 무대와 일정 거리를 두고 이를 연구·비판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브레히트의 서사기법을 말한다.

기업-정치의 대선자금 커넥션은 한국정치무대에서 더 이상 스캔들의 소재가 아닌 ‘일상’ 차원의 소재다. 반복되는 지루한 연극에 이제는 국민들도 무감해져 버린 이 일상의 커넥션을 '낯설게 보기'를 통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 이것이 이 연극의 궁극적 지향이며 숨겨진 목적이다.

이 연극이 늘 흥행에 실패하는 이유는 끝내 그 잠재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관객이 공감할 만한 결말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되풀이 되는 힘빠진 결말에 관객들은 낯설게 보기와 비판은 고사하고 실망을 넘어 냉소에 가까운 반응마저 보여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극은 전국 무대에서 상연되고 있다. 매년 조금씩 바뀌는 줄거리 탓에 올해는 주연이 바뀌었는데, ‘검찰’의 꿋꿋한 지조연기가 관객의 이례적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다.

중요한 역할임도 불구하고 늘 기대에 못미치는 연기 탓에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검찰에 대한 관객의 호평은, 어쩌면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올해 흥행을 성사시키는 일등공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그 이유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한편 올해도 역시 최악의 연기상은 일찌감치 결정되는 분위기다. 늘상 부족한 연기력으로 악평을 받아온 정치인은 올해, 상상을 뛰어넘는 기회주의적 연기로 관객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안때리면 다 불께’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이들은 소위 ‘고해성사’론을 거론했다. 즉 사면해준다면 고백하겠다면서 국민과의 협상을 시도하는 간 큰 유혹 연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의혹제기 단계에서는 '사실 무근'이라며 잡아떼다가 검찰 수사가 진척되어 처벌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제서야, 알아서 다 불겠으니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는 이제 비판의 대상을 넘어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고해성사’마저 세속화하고 모욕하는 대담한 유혹연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 ‘고해성사’ 정치인들은 앞서 비슷한 주제로 상연되어 결국 비정한 자살극으로 막을 내린 ‘대북송금 커넥션’에 출연했을 때는 철저한 검찰 수사를 주장하며 피의자들을 몰아붙이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김근태의 일인극 ‘고백’에 대해서는 진정 성스런 고해성사를 한 동료 연기자를 철저한 외면과 냉소로 소외시키는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본인들이 당사자가 되어서는 180도 바뀐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관객들이 악평을 할 수밖에 없는 한 이유라고 하겠다. 발뺌하던 좀도둑이라 해도 경찰서에 잡혀와 증거까지 확보된 마당에 ‘내가 다 불면 용서해줄 거지?’라고 묻는다면 어이없고 후안무치한 행동이라 비난받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물며 한나라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다는 이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대선 자금을 불법적으로 받아 놓고서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고백 후 사면’ 운운하는 것은 형평을 잃은 기회주의적 처사이며 정치적 꼼수에 불과하다.

올해도 연극은 흥행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흥행 성적의 관건은, 더 이상 스캔들이 아닌 일상사가 되어 버린 이 커넥션에서 어떻게 진정한 스캔들의 서사를 밝혀내 관객에게 리얼리티를 제공하느냐에 있다.

특히 정치인은 피해가겠다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부끄러워하고 진척되는 검찰수사에 따르는 의연한 자세를 이번만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진정 ‘고해성사’를 하겠다면 적법한 처벌도 감수하고 모든 것을 고백하겠다는 정말 ‘성스러운’ 자세로 하기 바란다.

김근태의 ‘고백’이 동료 정치인들로부터는 비웃음을 샀지만 관객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은 이제 시원한 결말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대결, 그리고 수준 높은 스토리를 보고 싶다. 그리고 5년 뒤에 똑같은 스토리로 재상연되는 연극은 이제 정말 질색이다. 아참, 이 연극의 제목은 ‘대선자금상열지사 - 스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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