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권윤영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지금 방 하나 크기의 절반 정도 되는 곳에서 네 식구가 생활했어요. 집안 싱크대에는 먹던 그릇이 가득 쌓여있었고요. 앞이 캄캄했습니다.”

행복을 찾아, 더 나은 삶을 찾아 멀리서 바다를 건너 한국을 찾아온 서국화(40)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월세 15만 원인 단칸방과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그리고 절망뿐이었다. 연변, 그 중에서도 북한옆 도문이라는 곳이 고향인 그녀는 지난 97년 한국에 왔다. 한국인 남자가 조선족인 그녀를 아내로 얻었기 때문이다.

세 명이 자리에 누우면 돌아누울 수도 없고 움직이기조차 힘든 공간이었기에 이곳저곳 여관을 전전해야만 했다. 그녀와 남편 모두 휴일도 없이 365일 일하다시피 해왔다.

그녀의 남편은 막노동으로, 그녀는 식당이나 파출부, 화장품 장사, 화장지 장사 등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식당일을 한 후 집에 들어오면 집안은 어질러져 있었지만 숟가락을 들 힘도 없을 정도였다.

식당에서는 다른 사람과 일을 똑같이 하되 그들이 90만 원 받을 임금을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60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사춘기를 겪을 무렵인 아이들의 반항도 힘든 점이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주면 “이런 거 안 먹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은 채 도시락을 두고 나갔다. 문화적 차이나 생활 습관 역시 그녀를 더 고단한 생활로 이끌었다.

소위 말하는 위장결혼. 그랬다. 그녀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이 있는 중국으로 가고 싶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과도 맞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다 보니 그녀 역시 한국에 정과 마음을 줄 수 없었다. 오로지 돈 벌어서 중국 갈 궁리만 했기에 행복하지 않았노라고 그녀는 당시의 심정을 말했다.

수년 동안 남들보다 몇 배로, 죽을 힘을 다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얻은 것이 방 세 칸 딸린 현재의 집이다. 처음에는 전세로 들어와서 집을 장만했을 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곧 이어 남편에게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를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남편은 그런 그녀를 용서했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좋아졌다. 다섯 살 된 예쁜 막내딸도 두었다.

그동안 한 고생을 말해서 뭐하겠냐던 서씨는 한국에서의 삶이 지금은 만족스럽고 너무나 행복하다고 소박한 웃음을 짓는다. 큰 딸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아들은 학교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장학생으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한 시름 놓았다.

“아이들하고도 지금은 잘 지내요. 제가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침에 나갔다 들어오던 딸이 ‘아직도 일을 하세요’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녹아내렸습니다.”

얼마 전에는 큰 딸이 회사에서 어떤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며 만나도 되겠느냐고 그녀의 허락을 구했다. 연애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주는 그녀의 딸로 인해, 이제는 마음으로 엄마임을 인정한다는 기쁨으로 인해 그녀는 감동을 받았고 너무나 감사해 했다.

지금은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서씨는 “연변에 계신 부모님은 한국을 방문했었어요. 하지만 언니, 오빠는 와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언니, 오빠들을 초청하고 싶어요”라고 소원을 말한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안타까움도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족도 같은 한민족이고 동포인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대우받고 환영받는데 비해 이들은 불법체류다 뭐다 무조건 나쁘게만 취급받는 현실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 남자들이 집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이 신부 감을 찾으러 중국에 와요.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사는 것을 보면 정말 피눈물이 나요. 다 쓰러져 가는 집이나 산골짜기에서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몸부림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네들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 꿈을 갖고 오는데 너무도 안타까워요.”

조선족 아내를 맞는 사람들은 시골 사람이거나 막노동 하는 사람, 자식이 딸린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화적 차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도 많다.

그녀와 친한 이웃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당부한다.

“위장결혼으로 도망가고 사기치고 하는 사람들보다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한국 사람도 살다보면 부부끼리 싸우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교포라는 이유로 문제화 되고 있잖아요. 조선족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해요.”

서씨에게는 새로운 일이 생겼다. 한국으로 시집 온 조선족을 찾아가 격려해주고 힘을 주는 역할로 이것은 어느덧 그녀의 일상이 됐다.

“크게 도움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줍니다. 나도 너무나 힘들었다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죠. 제가 힘들게 행복을 되찾은 것처럼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