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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보은 취회 110주년에 맞추 열린 1주간의 보따리학교
지난 4월 보은 취회 110주년에 맞추 열린 1주간의 보따리학교 ⓒ [길동무]
우리집에도 학교가 만들어진다. 이름하여 ‘보따리학교’.

요즘은 모나 도나 다 스스로 학교라고 이름 붙이는 바람에 인가 받은 진짜 학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도 마찬가지다. 선생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다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은 모두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요즘은 낯선 사람을 부를 때도 웬만하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예의처럼 되어버렸다. 이거야말로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 연형묵 총리가 20여년 전 남한에 와서 ‘총리선생’, ‘사장선생’, ‘안내원선생’ 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북한을 추종하고 고무찬양 하는 사람들의 음모가 아닌지 조사해 볼 일이다. 옛날 안기부가 있으면 가만 두지 않을 텐데…쩝.

그건 그렇고, 이번 ‘보따리 학교’는 우리 집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전남 곡성의 땅콩평화네 집에서도 열리고 부안 계화도의 정우풀 염정우님네서도 열리고 함평 부루네 집, 이렇게 네 군데서 열린다. 그렇다고 네 군데 농가에서만 학교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따리’가 원래 그렇듯이 ‘보따리학교’도 뭘 싸느냐에 따라, 얼마나 싸느냐에 따라 크기와 내용이 달라진다. 이번 보따리학교는 네 곳 농가에서 11일부터 3일간 진행된 뒤 11월 13일에 지리산 실상사로 간다. 실상사에서 또 3일 동안 학교가 진행되는데 여기서 열리는 ‘지리산 평화결사’에 자원 봉사 겸 참석자 겸 도우미 겸 참가하는 것이다.

11월 14~15일에는 지리산에서 죽은 좌·우를 막론한 모든 영령들의 천도와 해원을 기원하는 '지리산 평화결사'가 열린다. 3년 전 기원제가 열리고부터 시작된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의 1000일 기도가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보따리 학교의 주제는 화해와 평화이다. 귀하고 어려운 주제다.

나는 우리 집 보따리학교에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TV광고나 신문 광고는 준비 안 했어도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우리 집 ‘농주네 보따리학교’의 교과과정을 정성스레 짜서 이 학교를 주관하는 [길동무(refarm.or.kr)]에도 올리고 [내 개인 홈페이지(nongju.net)] 에도 올렸다.

제일은 농사생활이다

놀이를 하다가 넘어진 아이가 울고 다른 아이들이 치료(?) 하고 있다.
놀이를 하다가 넘어진 아이가 울고 다른 아이들이 치료(?) 하고 있다. ⓒ [길동무]
보따리학교는 식·의·주 자립생활을 강조한다. 그래서 '가을 감자 캐기'나 '털고 난 깨대 옮기기', '옥수수 대 자르기' 등을 준비했다. 보리밭이나 밀밭 '풀 뽑기'도 가능하다. '거름 뒤집기'는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닭 모이주기(닭 4마리)'와 '금이(진돗개 이름) 줄 먹이 가마솥에 끓이기'도 있다. 이 가마솥 잿불에서 감자랑 고구마랑 구워 먹을 수도 있다.

옥수수도 구워 먹을 것이 많이 있지만 특히 감자는 여름감자가 두 상자나 남아 있다. 불을 잘 다루는 것은 인류기원을 공부하는 것이고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본다. 감자 굽는답시고 훨훨 타는 장작불 속에 집어넣는 ‘요즘 촌놈’들이 얼마나 많은가.

두 번째는 새벽산책을 멋지게 해 볼 생각이다. 동네 바로 뒤에 아담한 저수지가 있고 산길을 500미터쯤 올라가면 태고종의 작은 절 '성불사'가 있다. 엊그제 올라갔더니 혼자 사시는 스님이 해우소를 짓고 계시길래 잠시 도와드렸다. 보따리 학교 때 찾아뵈면 환대 받을 것만 같다.

새벽의 저수지 물안개는 환상적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주변 자연 느끼기' 안내를 해 줄 수 있다. 위파사나 수련에서 배운 것이나 아봐타 명상프로그램에서 배운 '느끼기'를 학생들에게 소개해 줄 생각이다. 하루하루는 늘 새 날이라는 것을 보따리학교 '새벽'에서 알아챈다면 참 좋겠다. 주변의 모든 사물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잘 알아채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 느끼기 과목(?)을 넣었다.

세 번째는 '야생감 따기'와 '마른 통나무 가져오기'이다. 뒷산에 가면 야생 감나무가 많이 있다. 옛날에는 주인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외지로 나가거나 주인들이 너무 연로하셔서 잡풀속에 방치되어 있다. 보따리 학교가 11월 중순이니 첫 서리를 맞아 홍시로 바뀌고 있을 텐데 산에 올라가서 따 먹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산에 갈 때 내 트럭을 타고 가서 중턱에 세워 두고 개울가에 있는 쓰러진 나무토막들도 주워 와서 아궁이에 군불도 때고 뒤꼍에 쌓아두려고 한다.

지리산은 풀고 넘어야 할 민족사의 숙제

보은보따리학교에서 농민회 간부 한분이 풍물을 하시다가 태평소를 불어주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보은보따리학교에서 농민회 간부 한분이 풍물을 하시다가 태평소를 불어주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 [길동무]
이뿐 아니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려고 하는데 이건 내가 준비하지 않아도 참석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오니까 잘 해결될 것 같다.

이중 뭐니뭐니 해도 놓칠 수 없는 교과과정이 있다. 화해와 상생과 평화, 그리고 ‘지리산’이다.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로 시작되는 김지하 시인의 시를 조선대 학생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안치환이 부른 또 다른 지리산도 있다. 이 노래들을 불러보면 우리 현대사에 지리산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보따리 학교는 등록금도 수업료도 장학생 제도도 없다. 다만 함께 지내는 엿새 동안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 할 정성을 물질로나 재능으로나 지식으로 준비하면 된다.

"농주님, 저도 보따리 학교에 끼워주세요"
예비학생이 보내온 예비 입학원서들

한 예비학생(?)이 보내 온 글이 있다.

1. 농가에 갈 때는 저녁에나 또 비 등이 올 때 자기가 가져온 놀이감. 예 : 윷놀이, 여러가지 등등 놀이감을 가져온다.
2. 우리들끼리 회의를 해 보따리 학교 갈 때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든다. (예 : 12시 이전에 취침, 고운말 쓰기, 심하게 떠들지 말기 등등 이런 것)
3. 한 농가에 가면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예 : 옥수수따기, 밭가꾸기, 불때기 등등 이런 것.)
4. 이로서 전 생각이 않나서 더이상 못쓰겠습니다.
자기가 집에서 젤로 잼있다고 생각한 거 가져오기. 저번에는 정준이 오빠가 고스톱(!)을 가져 왔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입학원서(?)가 쇄도 하고 있다.

1. 궁구미는 날짜가 안맞아서 고민 많이 했는데
고맙게도 참석 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궁구미는 농주님 댁으로 가 볼려고 했는데… 궁구미에게 이 소식 알려주면 좋아 하겠네요. 농주님 궁구미 농주님 댁으로 가도 되나요?

2. 아…안녕하세요?
전 농주님네 댁으로 가고 싶었는데… 다들 가고 싶으신가봐요. 나도 새들이 오빠 볼겸 보따리 학교 할 때 갈려구 했는데… 저 이왕이면 끼워 주심 않될까요? 농주님 끼워줘요 잉~~

3. 저는 이번에 농주님댁에 가고 싶습니다.
전이번이 처음인데 농주님댁에 가고 싶어요 ===강바람

4. 저는 이번 보따리학교때 농주님댁으로 가겠습니다.
보따리학교와 하늘땅학교는 하나밖에 없는 나의 학교 입니다. 미타쿠예 오야신(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디언 인사말)
-=한결이 보따리각설이


보따리 학교의 유일한 입학자격은 [길동무] 회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동무]는 절 집안 말로 유식하게 하자면 도반(道伴)인데 작년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를 했던 사람들이다. 이 세상이 다 학교이고 천지 만물이 다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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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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