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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문대학을 다니며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에게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요즘 저희 학교에는, 편입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학벌에 걸려 웬만한 기업에는 원서조차 내기 힘든 현실 때문에 편입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제는 편입생 모집 정원도 조금씩 줄이겠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올해 전문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바쁘다. 졸업 작품 발표회와 취업 준비로 분주한 이들도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예비 졸업자들은 곧바로 학교나 집에서 가까운 편입학원을 찾아가 늦은 시간까지 편입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문제들을 풀어보고 정리한다.

대략 저녁 7시부터 수업을 시작하는 저녁반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 30분,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이들은, 주변 건물의 네온사인을 벗삼아, 이따금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버스가 앞을 지나갈 때면 그 안에 타고 있는 아이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전문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갖게 되는 가장 큰 꿈은 "2년동안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실력을 쌓아 놓으면 사회에서 설 곳이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이다.

수학능력시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 재수와 전문대학 진학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들에게 입시철마다 반복되는 "4년제 대학 취업난 불구, 전문대학 취업률 상승"이라는 보도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전문대학으로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해서 전문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대학 생활 특유의 활발함과, 입시의 해방감에 잠시 방황하기도 하지만, 이내 자신들에게 닥칠 현실을 직시하고 공부에 전념한다.

이들은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학교를 찾아와 후베들에게 취업에 관한 뒷 이야기들을 해 준다거나, 군대나 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나 있다가 학교에 돌아왔을 때, 어느 새 고학번이 되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이 있기를 거의 바라지 않는다. 올해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이듬해에 "졸업생"이 되는 현실에서, 자신의 앞길을 설계하기에도 바쁘다.

시간이 흐르고, 축제, MT, 체육대회, 워크숍, 리포트 등 처음엔 어색했던 용어들이 서서히 귀에 익어 가고, 학교 생활에 막 적응이 되어 갈 때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졸업" 이다.

주변에서는 "벌써 졸업이니?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라는 말들이 쏟아진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곳 저곳 취업 원서를 내 보지만,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기 일쑤이고, 실력이 좋아 면접까지 통과했다고 해도 "아무개씨 어디 학교 나왔지요? 그곳이 어디에 있는 학교예요?" 라는 말과 함께 낙오자가 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그동안 말로만 듣던 학력 차별을 몸으로 느낀 이들이 찾는 마지막 희망이 바로 편입을 통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다. 수험생들에게는 합법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다.

이렇게 해서 편입 시험을 준비하지만 현실은 힘들기만 하다. 우선 학교 공부와 더불어 엄청난 사교육비가 부담스럽다. 예체능계를 제외한 편입준비생들의 한 달 학원 수강비는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을 웃돈다. 이마저도 2개월치를 한번에 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예체능계의 수험생이 부담해야 하는 1개월 학원비는 50만원에 이른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에 버금가는 사교육비가 든다.

그렇지만, 기초부터 실전까지 단계별로 준비된 문제집이 넘쳐나는 수능 문제집과는 달리 편입생들은 문제집을 통해 수험 정보를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편입생을 위한 문제집은 최근 몇 년간의 기출 문제를 모아놓은 것들이 전부,

문제는 최근 발표된 편입학 제도 개선안이 기존에 4년제 대학에서 학교를 다니다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 뿐 아니라, 전문대를 졸업하고 편입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배움의 기회까지 막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부는 지방대학에서 수도권으로 편입하는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편입을 통해 지방에서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수를 줄여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2005년부터 편입학 정원을 현재의 절반까지로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 학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전문대생들과 그 졸업생들은 배움마저 포기해야 하는가?

지방대학만을 생각한다면, 지방대의 경영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는 것이 편입인 만큼, 편입학 정원을 줄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아닌 편입을 선택한 이들에게도, "앞으로는 학벌이 아닌 실력으로 모든 것을 대접받는 사회가 올 것이니 학벌이 낮은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실제적으로 사회가 그렇게 된다면 굳이 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빵빵한 직장"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만큼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과 직결된다. 또 같은 집단 안에서라도 승진이나 대우 등에 의한 차별은 근본적으로 학벌에 따른 구분으로 출발한다. 이런 상황들로 생각해 볼 때, 이번 편입학 정원 축소 결정은 전문대학생들에게는 짙은 먹구름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편입학 열기를 "이상 과열"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로 볼 때에야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보이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편입 희망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좁아진 편입의 문을 열어 보려는 수험생들의 노력이 더욱 치열해질 것은 당연하다. 편입학 정원이 좁아져도 배움을 위한 경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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