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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개방문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개도국들과 전세계 NGO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이번 칸쿤회의에서 선언문 채택에 실패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오는 12월 15일 특별각료회의를 다시 열어 관세, 정부보조금, 개도국 지위 등의 문제를 확정지으려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내년 쌀협상도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한국농업은 앞으로 남은 석달에 사활이 걸린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11차례에 걸쳐 '농수산물 수입개방에 관한 11가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주 1회 특별기획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는 그 네번째로 농업개방을 기정사실화하고 농업구조조정만 부각하는 한국언론의 농업보도 태도를 진단해 보았다. 칸쿤협상을 전후한 주요 일간지의 보도태도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신문모니터링팀에서 분석했다...편집자 주)


▲ 한국언론은 협상결렬로 막을 내린 칸쿤협상을 '타결'로 전제, 보도하면서 개방을 기정사실화했다.

명제 3. 언론은 농업문제를 감상적으로 접근한다

지난 9월 칸쿤협상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 "막을 수 없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우리 언론은 어떤가? 막을 수 있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도한 것은 아닌가?

우리농업의 상황이 오늘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배경에는 공업중시 정책과 함께 농업정책 당국자들의 무기력한 대응, 그리고 농민들의 자구노력 부족과 함께 한국언론의 반(反)농업적 보도태도를 들 수 있다.

지난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WTO 제5차 각료회의는 우리 언론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 한번 여지없이 드러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신문모니터링팀에 따르면, 지난 칸쿤협상을 전후로 한 주요 일간지의 보도태도는 한마디로 "WTO 체제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불가피한 상황론'을 강조"하는데 그쳤다.

WTO각료회의 선언문 채택 전부터 '농업개방 기정사실화'

현지 시각으로 13일 각료회의가 선언문 초안을 내놓자 15일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각료선언문 채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기사를 내보냈다. <농산물 대폭개방 불가피>(중앙 조선 1면), <농산물 큰폭 개방 불가피>(한겨레 1면) <전면 시장개방 불가피…추곡수매제 없어질듯>(동아 1면 작은제목) 등 1면 기사들의 제목들만 봐도 이러한 경향이 쉽게 드러난다.

한겨레는 사설 <칸쿤 회의의 경종>에서 "칸쿤회의는 농산물 관세를 대폭 인하할 것을 명시한 선언문을 채택하고 폐막했다"고 오보를 내기도 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개도국 재인정' 여부가 이번 각료회의에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님에도 3면 기사 <한국 '개도국 재인정' 물건너간 듯>을 통해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인정이 '물건너간 듯한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또 조선일보는 관련기사 <"우리 주장 초안에 반영 안돼">를 통해 황두연 협상대표가 "개도국 지위 유지에 여전히 집착을 보인다"며 개도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쓸모 없는 양 치부했다.

WTO 체제의 확대 강화가 쉽게 거스르기 힘든 세계적 추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각료선언문 초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WTO에 반대하는 NGO들의 격렬한 투쟁과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선진국-개도국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선언문 초안을 근거로 농업개방의 불가피성부터 들고 나온 것은 '너무 일찍 포기하는' 태도일 수 있다.

선언문 채택 결렬돼도 '농업개방' 대세론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각료선언문 채택이 결렬된 이후 이를 보도하는 신문들의 태도다. 대부분 신문은 '각료선언문 채택 결렬이 도하개발의제(DDA) 농업협상의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농업개방의 불가피성과 그에 호응하는 농정, 즉 경쟁력 강화와 농업분야의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동아, 중앙 등이 이와 같은 보도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조선일보는 16일 < WTO '칸쿤 선언문' 채택 실패-12월 이전 재협상…美 EU 농산물개방 사실상 합의>(2면 기사) <농업개방 현실 인정하고 살 길 찾아야>(사설), <농업개방 태풍 어쩔건가>(시론)를 통해 농업개방의 불가피성, WTO 체제의 인정, 시장지향적 농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농업 시장을 대폭 개방한다는 각료선언문 초안 내용이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우리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국 농업이 살 길도 찾을 수 있다…정부가 '개도국 지위' 같은 헛된 구호로 농민들을 속이는 한 한국 농업의 미래는 없다"며 농업개방에 대한 최소한의 자구 노력을 비웃었다.

15일 사설에서 "다자 양자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 확보에 협상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중앙일보는 16일 사설 <칸쿤 결렬, 개방압력 더 거세질 수도>에서도 개도국 지위 확보에 비관적인 견해를 보이며 '획기적인 구조 조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 4면 해설기사에서는 "내년에 시작될 쌀 시장 개방협상을 감안하면 이번에 협상이 타결되는 편이 한국으로선 더 유리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16일 사설 <칸쿤협상 결렬 이후가 더 어렵다>를 통해 협상 결렬로 쌀 협상이 더욱 어려워졌으며, 농업의 획기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무역의존도가 70%에 이르는 우리에게 WTO가 주도하는 자유무역질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부는 WTO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나 '한국은 반(反)WTO국가'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확산되게 내버려둬서도 안된다"며 WTO체제의 대한 '국민적 순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농림부 기자실, 경제부처들과 통합

농림부 기자실이 재경부, 산자부, 공정거래위 등 경제부처들과의 통합브리핑시스템이 추진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안그래도 경제부처 출입기자들이 농림부도 마크하게 되면서 생기는 논조의 편향문제는 더욱 노골화될 수 있다.

농림부의 한 공보담당자는 "우리는 결사반대했지만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며 "뉴스가 많은 경제쪽에 농업기사가 밀릴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나쁘든 좋든 농업기사를 자주 볼 수만 있어도 좋겠다"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개방협상은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이, 농업정책은 경제부처 출입기자들이, 농민시위는 사회부 사건기자들이 맡게 되면서, 농업기사는 '국적 없는' 여론을 형성해 가고 있다. / 박형숙 기자
농업개방 대세론과 함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은 적극적인 농업개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9월 25일 <쉽게 풀어쓰는 생생경제-왜 FTA에 나라마다 매달릴까요>에서 조선은 "하지만 FTA가 반드시 농민들에게 불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가 일본과 FTA를 맺게 되면, 일본에 농산물을 수출하는 농민들은 관세를 물지 않고 수출할 수 있어 그만큼 유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틴틴경제-'쌀시장 개방' 어떻게 해야 되나요>에서 "우리나라처럼 다른 나라에 물건을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는 세계 각국이 시장 개방을 더 많이 할수록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농촌이 황폐해지면 휴양이나 관광을 즐길 곳이 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농업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드러냈다.

영세농가 퇴출이 '농업 구조조정'?

이들 신문이 주장하는 '농업 구조조정'은 영세농가 퇴출을 통한 대규모 농업화다. 조선은 17일 <농업개방 앞으로 2년…이렇게 준비하자>에서 "회생이 어려운 농가는 부채를 탕감해주되 농업에서 완전히 퇴출시키고, 회생 가능한 농가에는 더욱 좋은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농업 구조조정을 주장했다.

특히 이 기사에서 조선은 '해외 통상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WTO협상으로 농업 시장의 대폭 개방이 불가피하나 잃는 것보다 얻을 게 훨씬 더 많다"며 "과감한 농업 구조조정을 통해 잘라낼 것은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도 17일 <기로에 선 한국농업/구조조정 미루면 가격경쟁력 회복 불능>에서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평균 경작 면적을 6ha로 늘려 대규모 농가 중심으로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구조조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동아일보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정환 원장이 쓴 글에서는 "경작규모 3ha 이상인 대농은 전체의 6%지만 총경지의 26%를 차지한다"고 한다. 일부 신문들이 주장하는 경작 면적 중심의 이른바 구조조정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일부 신문이 대농을 양산하는 방향만이 농업구조조정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들 신문은 이번 회의에서 각료선언문이 채택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싱가포르 이슈'를 둘러싼 선진국-개도국의 이견을 중심에 두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싱가포르 이슈'는 표면적 이유이며 이면에 '농업 보조금' 문제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경우도 협상 결렬의 원인이 '농업보조금' 문제에 있었다는 분석을 실어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한편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과거보다 커진 개도국들의 영향력과 반세계화 NGO들의 영향력이 선언문 채택 결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신문들은 WTO 체제가 대세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9월 26일 <지상이메일클럽-세계 농민은 '하나'가 아니다>에서 "각국 농민들은 예외 없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WTO 농업협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며 "결국 우리 농민이 기댈 언덕은 한없이 좁고, 한국 정부가 펼 수 있는 정책은 지극히 제한돼 있다"며 칸쿤에서 진행됐던 전 세계 NGO들의 투쟁마저 폄하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농업개방의 압력은 여전하지만 이번 협상 결렬로 얻은 시간적 여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다른 신문들과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 마련에 있어서는 경향이나 한겨레 모두 다른 신문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민언련은 지난달 '한국언론 섣불리 포기하자 말자'란 제하의 성명서를 내고 "WTO 체제에 맞서 우리 농업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난제임에 틀림없지만 국제사회의 흐름을 앞세워 '개방 불가피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책임있는 언론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부 수구언론들이 친자본적인 시각에서 강조하는 '개방 대세론'이나,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나쁘지만 저항할 수도 없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비관적인 불가피론'도 경계해야 할 태도"라고 지적했다.

한 농업경제 전문가는 WTO협상보다 '앞서가는' 언론보도를 지적하며 "이는 신문사의 논조도 문제가 되지만 농업기사를 '한가한' 이슈로 폄하하는 기자들과 데스트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그 결과 농업문제가 국민의 건강권과 식량안보 등의 보편적 가치가 아닌 특정산업의 집단적 이해로 인식되는 결과가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국농업 10년 취재한 배테랑 기자가 본 언론문제
[인터뷰]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팀장

한국언론의 반농업적 보도태도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신문-방송-통신을 통틀어 거대 언론사에도 농업전문기자 한 명이 제대로 없으며, 농업기사는 늘 천대받아 왔다. 그간 농업이나 농민 관련 기사는 대개 농민시위 등 사건사고 기사로 채워져 온 것이 보통이다.

농업전문신문인 <한국농어민신문>의 이상길 농정팀장을 만나 국내 언론의 농업보도 태도 및 문제점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 우루과이라운드 때와 차이가 있나.
"우루과이라운드 때보다 보도내용은 더 악화되었다. 협상결과를 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개방만큼은 막아내겠다며 사과를 했고 총리(이회창)도 사과를 했다. 그 때는 그래도 협상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개방대세론에 치우쳐 있다."

- 칸쿤협상에서 이경해 회장의 죽음으로 협상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도 했는데.
"촉발한 측면이 있다. 방송은 이경해 회장의 죽음으로 보도태도가 좀 달라졌다. 기획다큐멘터리나 미디어비평 등을 통해 농민의 목소리와 사회적 자성을 담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하지만 본질에 대한 분석이라기 보다 동정론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다보니 농업예산이나 농정혁신과 같은 실질적인 변화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신문은 죽음 자체에 대한 보도는 많았지만 이를 농업의 본질적인 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았다. 단기적, 현상나열식 보도가 문제다. 가령 한·칠레 FTA협상이 중요한 것은 앞으로 줄줄이 남은 양자간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망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 개방국면의 한국농업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일방적인 시장개방이다. 개방협상 이면에는 곡물메이저가 있다. 그런데 정부는 농산물을 희생하고 수출 공업화를 대가로 얻겠다는 논리로만 대응하고 있다. 무역 원활화 측면에서만 보도되고 있는데 그 이면을 보여주는 보도가 없다."

- 농업관련해서는 오보가 많다. 지난 칸쿤협상이 대표적이었는데.
"우리나라 시간으로 15일,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결정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 일간지들은 마감시간에 기사를 맞추기 위해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타결'을 전제로 사설까지 썼다. 그리고 쌀시장 개방이 임박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건 대형오보다. 마감시간 맞춘다고 한마디로 소설을 쓴 건데, 그렇다고 정정보도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WTO협상 관련 기사를 주로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이 마크하다 보니 한쪽 입장만 받아쓰는 경우가 많아 입장이 편향된다."

- 농업기사가 반농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론사 구조의 문제로 보인다.
"기사는 인맥에서 나온다. 농림부 출입기자들 중에는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출신이 많다. 신문사내 농업관련이 인맥이 없고, 또 관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자들은 농림부 출입임을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 안 한다. 그냥 사회부라고 밝힌다. 언론사 내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대기업 전문기자는 있지만 농업전문기자는 없다. 농업은 따로 섹션도 없다. 식료나 유통쪽에서 다룬다. 그리고 기사를 공들여 쓴다해도 밸류(기사가치)에서 밀리니까 데스크에서 자른다. 더 잘 써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누구 입장이든 균형있게 반영해 달라."

- 농업기사는 농민시위 기사로 대체되는 것 같다.
"농업관련 기사를 보면 마치 농민시위가 전부인 것처럼 그린다. 농민들의 시위가 과격해지는 것은 그럴 때만 기자들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속도로 점거까지 나오는 거다. 하지만 그런 기사는 사회부 사건기사로 처리되고 교통방송으로 다뤄진다. 그 결과 농민에 대한 이미지는 정치이해집단,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내몰린다. 악순환이다." /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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