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두율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탈당과 독일국적 포기 의사를 밝힌 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송두율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탈당과 독일국적 포기 의사를 밝힌 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림)의 심정으로 내가 할 일은 다했다. 긴 호흡으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59·뭔스터대) 교수는 21일 아홉 번째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으로 출두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 대한 검찰의 답변은 '사전 구속영장 청구'였다. 이날 오전 검찰은 송 교수에 대해 국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날 밤 서초경찰서에 인치되어 있다.

결국 지난 9월 22일 입국해서 한 달여 동안 국정원과 검찰을 오가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받은 송 교수에 대한 결정은 국정원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그 공이 넘어가게 됐다.

송 교수는 지난 17일 8차 소환을 마친 이후 '국민여러분과 사법당국에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노동당 입당과 금품수수에 대해 국민과 사법당국에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는 등의 반성의 내용을 담은 문건을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박만 서울지검 1차장검사는 20일 "(모든 것을 털어놓듯) 홀랑 벗기 전에는 안되며, 그런 반성은 나도 하겠다"면서 아직은 송 교수의 태도가 '반성'의 뜻이 미약함을 강조했다. 또 곧 사법처리 방향을 정해 1차 결론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던 송 교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되짚어 봤다.

송 교수, '불덩이' 안고 귀국

송 교수의 입국 전인 지난 9월 18일 국정원은 친북활동 등 과거 실정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수사의 뜻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교수는 9월 22일 오전 11시20분 베를린발 루프트한자 LH712편으로 부인 정경희씨(61)와 두 아들 준(28), 린(27)과 함께 37년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 전 독일에서 그는 국정원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을 뜻을 밝혀, 국정원의 체포영장은 집행되지 않았다.

9월 22일 오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 아들 준, 린씨가 함께 인천공항으로 통해 37년만에 귀국했다.
9월 22일 오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 아들 준, 린씨가 함께 인천공항으로 통해 37년만에 귀국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송 교수의 입국은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추진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송 교수 입국을 앞두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본격적으로 관여하면서 지난 9월 19일 이후 추진위는 송 교수 입국과 관련된 일에서 빠졌다.

추진위 관계자는 "지난 9월 18일 송 교수에게 (국정원의 조사 등) '조건없이 들어오게 못 만들어서 미안하며, 앞으로 조건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었다"며 "국정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이번에는 들어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송 교수에게 전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는 송 교수의 입국을 강행했으며, 추진위는 입국관련 일에서 손을 떼고 송 교수는 입국했다. 결국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입국한 송 교수는 그 다음날부터 국정원 조사가 시작됐으며, 추진위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정원의 네차례 출퇴근 조사..."내가 왜 '김철수'냐, '송두율'인데..."

송두율 교수는 9월 26일 새벽 0시 25분경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수유리에 마련된 숙소로 돌아갔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송 교수는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조사 잘 끝났으니 결과를 기다린다"고 말하고 차에 올라탄 채 눈을 감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송두율 교수는 9월 26일 새벽 0시 25분경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수유리에 마련된 숙소로 돌아갔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송 교수는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조사 잘 끝났으니 결과를 기다린다"고 말하고 차에 올라탄 채 눈을 감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첫 조사는 입국 다음날인 9월 23일부터 시작됐다. 송 교수가 수사에 협조할 의사를 밝혀 출퇴근 조사로 진행됐으며, 24일과 25일, 27일까지 네 차례 국정원 조사가 진행됐다.

국정원은 송 교수를 상대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 인물인지 여부와 송 교수가 과거 독일 유학생 오길남에게 입북을 권유했는지 여부, 90년대 북한을 여러차례 방문해 학술대회에 참여한 부분에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국정원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에 "송두율은 북 노동당 김철수", "송두율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라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송 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송 교수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적 없다"면서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임명돼서 활동한 게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변호사는 또 지난 9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송 교수는 자신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며, 북측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서 남측의 민주화 운동에 누가 된다면 미안하고 국민에게 사과드리며, 남쪽의 실정법을 지키고 살겠다는 일종의 '소명서'를 국정원에 제출했다고 알렸다.

특히 김 변호사는 송 교수의 '김철수' 여부에 대해 "94년 처음으로 '김철수'란 이름 썼으며, 그때가 (김일성) 장례식 때인 것 같다"면서 "그전에 세미나 있었는데 (북한에) 안들어가려 했다가 확인해보니 '김철수'라 되어 있어 그때 '내가 왜 김철수냐. 송두율인데…'라고 항의했더니 (김일성) 장례식 때 '송두율'이라 씌어있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송 교수 검찰로 송치... 국정원, '기소' 의견과 함께 단서조항 '공소보류도 가능'

나흘동안의 국정원 조사를 마친 송두율 교수 사건은 10월 1일 검찰로 송치됐다. 이날은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송 교수에 대해 ▲반국가단체 조성등(가입) ▲특수탈출 ▲회합통신 ▲금품수수 등의 혐의를 두고 수사한 국정원은 검찰로 송 교수 사건을 송치하면서 기소 의견과 함께 '공소보류도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붙이는 의견서를 보냈다. 다음은 국정원 의견서 일부.

"기소함이 상당하지만, 다만 송 교수가 반성의사를 표명했으며 북한 노동당을 탈당 의사와 대한민국 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인 신분으로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이후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고, 70년대 당시 국내 정세·정치에 반발 심리로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것 등 독일연방공화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좀더 진지한 반성태도를 보이고, 대한민국 포용정책에 적극 호응한다면 '공소보류'도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국정원은 송 교수를 지난 9월 23∼27일간 소환해 ▲노동당 입당 및 정치국 후보위원 사실 여부 ▲오길남 밀입북 권유 문제 ▲기타 친북행위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송씨가 그간 18회에 걸쳐 입국해 "독일 유학생 포섭 및 조국평화통일사업을 위한 지식인 중심의 조직 결성" 등의 지시와 함께 매회 1000∼2000 달러를 받았으며, 91년 5월 김일성 면담 후 95년까지는 재독 공작원을 통해 연구비 등 명목으로 매년 미화 2∼3만 달러를 수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정감사에서 보고했다.

검찰 조사에 앞서 송두율 교수가 10월 2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형태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 앞서 송두율 교수가 10월 2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형태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정원 조사 자료 토대로 '출국정지' 연장 후 검찰의 상세한 조사 돌입

검찰은 송 교수 소환조사를 앞두고 지난 2일 "조사할 양도 많고,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서 1개월로 했지만 수사가 종료되면 언제든 해제하면 된다"면서 '출국정지' 1개월 연장신청을 했다. 다음날(3일) 서울지검 공안1부(오세헌 부장검사)는 송 교수를 상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송 교수의 수사는 서울지검 공안1부의 정점식 부부장검사가 진행하며, 국정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송 교수 수사자료는 보통 5000여쪽에 달하는 간첩사건 기록보다는 적은 총 2035쪽의 5권 분량의 자료를 토대로 수사가 진행된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조사 첫날부터 12시간여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펼쳤으며, 이어 여덟 차례 조사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서울지검 공안1부는 송 교수와 관련해 참고인으로 오길남씨와 황장엽씨 등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 두 명을 추가로 조사했다.

한편 송 교수에 대한 9번의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찰과 법원,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렸다. 국감 동안 매번 '송두율 교수 사건'을 놓고 피감기관 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간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또 국회의원들은 송광수 검찰총장과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송 교수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 "화합과 포용으로 이 사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 말미에 송두율 교수문제를 언급하며,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를 전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 말미에 송두율 교수문제를 언급하며,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를 전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송 교수가 검찰의 6차 소환 조사가 진행되는 날인 13일 오전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 말미에 예고 없던 즉석발언을 통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해 언급을 했다.

노 대통령은 "송두율 교수에 대한 정권 차원의 기획입국은 없었다"며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어느 한 쪽의 극단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여론을 지배하는 데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며 "처벌을 하더라도 이 양면에 대한 성찰이 함께 적용돼 처벌돼야 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고, 보다 폭넓은 화해와 포용이 이뤄지는 한국의 미래가 내다보일 수 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서영제 서울지검장은 14일 오전 송광수 검찰총장에게 주례보고를 통해 1시간 가량 송 교수에 대한 그 동안 수사결과와 사법처리에 대한 입장 등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서 검사장은 수사결과 송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명백하고 전향의사도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감안, 구속영장 청구 또는 최소한 불구속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송 교수도 이날 제2차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당 탈당, 독일국적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특히 "귀국을 전후하여 본의 아니게 저로 말미암아 생긴 혼동에 관해 어떤 해명이나 사과보다도 다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균형감 있는 경계인으로 살기 위해 노동당에서 탈당하고자 하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준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며 살겠다"며 이에 따른 어떠한 처벌과 고통도 감내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과정을 봤을 때, 송 교수 사건을 둘러싸고 또다시 등장한 '색깔론'과 노 대통령까지 '화해·포용론'을 거들고 나서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사전영장'을 청구하면서 신병을 확보하고 수사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입장을 취했다.

"긴 호흡으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밝힌 송 교수에게 또다시 '긴호흡'으로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남겨졌다.

검찰의 '사전영장'이라는 1차 결론과 이를 놓고 법원이 22일 오후 2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을 받아들일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