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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세 자나 더 늘여 낸 마루의 완성 직전의 모습이다. 양 옆면에 세로로 팔걸이 지지대를 세우는 것으로 작업이 끝났다.
근 세 자나 더 늘여 낸 마루의 완성 직전의 모습이다. 양 옆면에 세로로 팔걸이 지지대를 세우는 것으로 작업이 끝났다. ⓒ 전희식
마루를 완성했다. 근 일주일이 걸려서야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왜 옛말에는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만 하고 '백견이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는 말은 없는지 아쉬운 날들이었다. 머리로 아는 것하고 아는 것을 손으로 해내는 것하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마루 하나 놓으면서 내 공간 지각력과 입체에 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수치 개념이 빈약한지 한숨을 여러 번 쉬었다. 명색이 2년 전에 직접 집을 지은 경력이 있고 지난 7월에는 1박 2일로 목공강좌에 가서 공부를 했던 솜씨인데도 말이다.

백견이불여일행(?)

마루를 새로 놓는 것도 아니고 늘여내는 작업이었는데도 1주일이나 걸린 것은 예상을 한참 빗나간 것이다. 길이나 두께나 넓이가 예측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못을 하나도 사용 않고 해 보리라 야무지게 목표를 세웠지만 못을 박지 않은 채 두자니 삐거덕거렸다. 도저히 불안해서 '싸그리' 못을 박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정도 말린 통나무다. 산에서 묘 이장 작업을 하다 베어 낸 것을 얻었다.
1년 정도 말린 통나무다. 산에서 묘 이장 작업을 하다 베어 낸 것을 얻었다. ⓒ 전희식
비록 단순한 작업이지만 정식으로 설계도를 만들고 나름대로 정교하게 측량하여 기둥과 도리를 깎았다. 막상 조립을 해 보니 위아래, 좌우로 비틀리는 것이었다. 세로 도리가 박힐 위치는 물 수평을 잡아서 정한 것이고 기역자와 줄자, 수평 자를 가지고 치밀하게 재고 자르고 한 것인데 어디서 이런 오차가 생겨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끌로 기둥에 골을 넓히기도 하고 주춧돌을 높이기도 했다.

나무 작업은 흙 작업과 달라서 실수하면 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구멍을 팔 때는 작게 파면 별 문제지만 크게 파버리면 못쓰게 된다. 자를 때도 그렇다. 덜 자르면 괜찮지만 더 잘랐을 때는 그 나무는 버려야 한다.

이런 점을 잘 생각해 가면서 일을 했는데도 버리고 새로 다듬어야 한 나무가 여러 개나 된다. 마룻장을 다 놓고 못질까지 했는데 둥근 기둥 부위에 호를 잘 잡기 위해 마루를 다 뜯어내야 했다. 필요 없이 자르거나 파 낸 곳은 하나하나 때우느라 더 힘들었다.

송판을 말리는 중이다. 재제소에서 켠 겉나무는 집 울타리를 세웠다. 나무를 켜 보니 송판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송판을 말리는 중이다. 재제소에서 켠 겉나무는 집 울타리를 세웠다. 나무를 켜 보니 송판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 전희식
그 사이 마룻장이 마르면서 틈새가 벌어지기도 했다. 마루 난간의 팔걸이 작업을 할 때는 도리목 길이가 짧아서 이어냈는데 이음새를 역삼각형으로 만들면서 세 번이나 나무를 못 쓰게 만들었다.

같이 일을 하면서 아들 새들이에게 왜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를 그 많고 많은 직업들 중에서 하필이면 목수를 시켰을까 물어 보았다. 쇠는 다시 녹이면 되고 흙은 다시 이기면 되지만 나무는 한번 잘못하면 버려야 하는데 이런 특징이 예수가 목수의 아들이 된 것과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예수도 처음 일을 배울 때는 우리 새들이처럼 아버지한테 똑바로 잡으라고 호통을 들었을까? 아버지 요셉도 나처럼 나무토막을 아들 머리통에 집어던지지는 않았을까? 그라인더 질 하면서 마스크는 쓰고 했을까? 일을 끝내면 하얀 밀가루 같은 나무먼지를 뒤집어 쓰고는 샤워를 하면서 막걸리를 한잔 들이켰을까? 이런 잡담들이 아들과 일을 하면서 얻는 큰 기쁨이 되곤 한다.

넓은 마루는 한 여름에 제 몫을 톡톡히 할 것이다

기둥에 중도리가 박힐 곳을 끌로 파고 있다.
기둥에 중도리가 박힐 곳을 끌로 파고 있다. ⓒ 전희식
마루가 완성되자 아내와 새들이는 탄성을 질렀다. 목수로 벌어먹고 살 수 있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고치는데 이틀 이상 걸린 마루라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니까 그렇다.

내가 집을 지을 때는 마루 쓰임새를 너무 가볍게 보았었다. 일 하다가 걸터앉아 냉수나 한 사발 마시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당에 널어놓은 여러 곡식들이니 '호박 말랭이'니 채반지의 잡곡들을 해가 넘어가면 마루에 들여놔야 하고 비라도 쏟아지면 처마 밑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세자 마루는 너무 짧았다. 아직 아래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 집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가서 생태농사를 새로 일군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집을 건드리지 못하고 지낸 것이다.

일이 잘 진척이 안 되자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누가 살게 되든지 내가 힘닿는데 까지는 집을 고쳐 놓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마루를 늘리기로 하고 우선 나무부터 구했다. 묘지 이장작업을 하다가 잘라 낸 전나무를 진안 사는 의동생 배정환이 갖다 줘서 1년 동안 말렸다. 이걸 제재소에 가져가서 도리목과 송판으로 켜 왔는데 지난달 일이다. 근 보름을 다시 말렸다. 의외로 통나무가 1년이 됐는데도 다 안 말라 있어서 송판을 말리면서 안 비틀어지게 켜켜이 쌓아서 뒤집어 가며 신경 써 말렸다.

뼈대를 세울 때는 마침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있어서 함께 거들어 주었다.
뼈대를 세울 때는 마침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있어서 함께 거들어 주었다. ⓒ 전희식
전기톱과 회전톱 그리고 원형톱을 이용하여 마름질을 하고 그라인더로 사포질을 했다. 전기 대패로 초벌 깎기를 한 다음 사포질을 했는데 나무먼지가 콧구멍을 꽉 채웠다. 진득한 송진 냄새가 향기로웠다. 오래 전 도시에 살 때 우연히 마시게 된 드라이진 냄새가 영락없었다. 그때 상대가 마시던 페퍼민트향도 덩달아 나는 것 같았다. 톱이 나무사이에 끼일 때는 송진 때문이었다. 언뜻 나무의 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작업은 '니스' 칠을 하여 마루를 보호하는 것

제일 힘들었던 것이 사개를 맞추는 것이었다. 기둥에 가로세로 도리를 치는 작업을 할 때 사개가 맞지 않으면 마루 틀이 틀어져 버린다. 추를 이용하여 기둥을 수직으로 세운 다음 가로세로 정위치를 잡고 직각으로 사개를 잡아 나갔지만 결과까지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다.

투명한 고무호스에 물을 채워 수평을 잡는 물 수평기도 한 몫 했다. 새들이가 없을 때는 혼자서 이쪽 끝에 물 높이를 재 놓고 저쪽으로 한쪽 끝을 가져가서 높이를 맞추었다.

망치질하면서 못을 잡은 왼 손 두 번째 손가락 뿌리 부근을 여러 번 때렸다. 망치에 맞아서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 올라 있는 곳을 다시 사정없이 망치가 내리쳐졌을 때는 몸이 진저리를 쳤다.

지난 7월에 이틀간 생활목공강좌에 갔을 때 젊은 목수 박종석 선생님은 톱질이 서툰 하얀 손의 수강생들에게 우리의 손이 복권되어야 한다고 했었다.

정말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들이 두 손으로 집도 짓고 길쌈도 하고 밥도 짓고 농사도 하고 돌도 다듬고 나무도 잘랐다. 똥도 만지고 물을 떠 마시기도 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되풀이하다보면 없어지겠지

요즘 사람의 손은 심하게 말하자면 남 손가락질 하는 것하고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짓만 하고 있다.

나는 새들이에게 뭐니뭐니 해도 손이 말을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입과 머리만 나불대는 게 아니라 손이 말하는 세상. 허벅지 속살 같이 보드랍고 얄팍한 손바닥을 가진 사람의 손들이 모두 복권되어 두껍게 군살이 박히는 날 세상도 복원될 것이다. 세 치 혀로 남 등쳐먹는 사람도, 돈으로 남의 땀방울을 가로채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남은 작업은 마루가 완전히 마르고 나면 황톳물을 만들어 먹인 다음에 그 위에 '니스' 칠을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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