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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교동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성으로 서울에서 황해로 진출하는 중요 기항지로써 상고시대에는 달지신(達之新), 고구려시대에는 고목근현(古木根縣), 신라 경덕왕 때는 교동현이라 불렀다.

이조 인조 때에는 삼도 수군통어사를 두어 경기, 황해 충청의 해군본부로 삼았고, 1896년 고종 때는 교동군으로 개칭하였다가 1937년 교동면으로 개편하여 오늘에 이른다,

교동은 총면적 4600여 헥타 중 경작면적이 3000여 헥타에 이른다. 미곡이 주 생산이어서 많은 일손이 필요하였기에 자연스럽게 품앗이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옛부터 내려오는 농악(풍물, 굿)으로 두레를 만들고, 두레를 통하여 이웃을 돕고 서로를 위로하고 아끼며 하나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특히 구수한 풍물가락에 맞추어 들일을 할 때 누군가 부르는 들노래 소리에 하나 되어 소리를 주고받노라면 언제 힘들었느냐는 듯이 서산에 해 기우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게 된다.

또한 교동의 들노래는 모찌기, 모내기, 애벌모풀이, 두벌모풀이 기싸움, 벼베기, 벼묶기, 벼 메어내기, 벼 가리기 등 다양하다.

ⓒ 느릿느릿 박철
1950년도만 해도 이 들녘 저 들녘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가 흥이 겨웠는데 1960년도부터 농촌의 기계화가 시작되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가 했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 안타까워 하던 중 이창호 할아버지가 간직하고 있는 옛노래들이 빛을 보게 됐다. 인천교육대학 교수이며 인천시 문화재 위원인 김순제 교수의 고증을 받아 평소 들노래를 아끼던 교동의 한영선씨의 연출지도 하에 제 44회 한국민속예술제축제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교동은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넓은 3000여 헥타의 들이 있어 벼농사에 관한 소리가 씨앗뿌릴 때부터 추수할 때까지의 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대부분의 소리는 혼자 부르지만 교동의 들노래 소리는 북소리에 맞추어 메기는 소리(선소리)와 받는 소리(뒷소리)로 나뉘어져 한 사람이 먼저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 모두가 함께 소리를 받은 것이 특징이다. 모든 분위기는 선소리꾼이 이끌고 가지만 동작 하나 하나의 신호는 북으로 지시를 내린다.

ⓒ 느릿느릿 박철
총연출을 맡은 한영선씨가 큰 소리로 대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자, 여러분! 오늘은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합시다. 오늘 여러분 연습하는 장면을 인터넷 신문에 올린다고 하니, 진짜처럼 합시다. 알았어요? 이왕 하는 것 신발 다 벗으세요.”

“그럼 누가 가짜로 했시꺄? 앗다, 신발 벗으면 발 고린내가 심할 텐데.”

“제발 잔말 좀 그만하세요. 그리고 오늘 연습에 빠진 사람 있어요.”

“자, 지금부터 입장하세요.”

기수를 선두로 쇠잠이패(꽹과리, 징, 북, 장구, 호적)가 등장하고 이어서 주인과 양반나그네가 어깃어깃하며 들어오고, 일꾼들과 아낙네들이 들어온다.

“아니, 입장할 때 춤을 제대로 춰야지. 그게 뭐예요. 자 보세요.”

연출자가 시범을 보인다.

“팔도 좀 둥둥 걷고 동작을 크게 하란 말이에요. 너무 예쁘게 하지 말고 팔이 끊어지라 하란 말이에요. 매번 얘기해도 안 들어 먹으니, 어디 해 먹겠나? 그리고 자기 위치를 잘 좀 서요. 인사하는 것도 정중하게 잘 하고….”

ⓒ 느릿느릿 박철
전후좌우 인사가 끝나자 모찌기가 시작되었다. 일터에 당도하여 쇠틀을 맺으면 주인이 덕담을 한다.

“어험, 여보게들! 매일 모내느라 얼마나 힘이 드신가? 올해는 날 일기를 잘 해서 풍년농사는 따논 당상일세. 힘들어도 열심히 해주시게나.”

선소리꾼이 “쪘네 쪘구나 나도 한 침을 쪘네”하면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받아 합창을 한다.

“쪘네 소리에 일이 절로 됩니다 얼더렁 철더렁 모 한 침을 시쳤네 시쳤네 시쳤네 나도 한 침을 시쳤네 삶았네 볶았네 모 한 침을 쪘구나 쪘네 소리에 엉덩이춤이 절로 나네 쑥밭치 들에도 한 침이요 개새미 들에도 한 침일에 쪘네 소리에 모판 하나가 다 없어쪘네.”

선소리꾼인 이창호(80) 할아버지 소리가 구수하게 잘 넘어간다.

모를 다 쪘으면 선소리와 뒷소리를 받으며 모낼 준비를 한다. 모내기가 준비된 것을 확인한 후 선소리꾼이
“자, 일꾼네들 모를 냅시다.”
“네.”

ⓒ 느릿느릿 박철
“꽂았네 꽂았네 나도 한 붓을 꽂았네.”

“여러 일꾼네들 일심으로 꽂아주오. 연안 백천의 마늘모를 꽂아주오. 황주 봉산의 메밀모를 꽂아주오. 강령 벌에도 하나요 재령벌에도 하나일세. 강원도 철원벌에도 하나요 호남의 김제 벌에도 모내기가 한참일세. 하나소리에 힘드는 줄 모르누나. 하나소리에 막걸리 가동이가 떴구료. 하나 소리에 길가는 나그네 길 못 가네. 하나 소리에 교동땅이 들먹이네.”

모를 꽂는 농부들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다. 모를 다 꽂으면 선소리와 뒷소리를 받으면서 꼿호내를 집어들고 모풀이 준비를 하며 대형을 갖춘다.

다음은 애벌 모풀이다. 선소리꾼이 힘차게 일꾼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일꾼네들!”
“네.”

“풋베 자랑은 딸 자랑이라고 했지만 지금 같아선 올해도 문제없이 풍년이네. 자, 그럼 모풀이 합시다.”
“네.”

“논다 놀아 방아 에루 논다” 하고 소리를 메기면 일꾼들이 소리를 받으며 ‘논’에 꼿호내로 흙을 끌어당기고 ‘다’에 엎은 흙덩이가 모에 찌질리지 않도록 왼손으로 흙덩이를 받아 김을 덮으며 눌러 미끄러진다.

ⓒ 느릿느릿 박철
“이 방아는 뉘 댁의 방아냐. 이 방아는 이씨 가정의 명복 방아로다. 산골 방아는 디딜방아요. 시골 방아는 연자방아다. 도시 방아는 통통 방안데 밤새토록 찧어도 헛 방아만 찧었구나. 하루 저녁에도 몇천석씩 쪄내는 방안데 시집 못간 노처녀는 도도 방아(안달 방아)만 찧는구나. 시어머니 있을 때는 마다했는데 보리 방아 찧어대니 시어머니 생각이 절로 나네. 시아버지 방아는 솜 방아요. 아들 방아는 철떡꿍 방아요.”

애벌 모풀이가 끝나면 선소리와 뒷소리를 받으면서 두벌 모풀이 준비를 한다.

선소리꾼이 나서서 두벌 모풀이(두벌 김매기)를 독려한다.

“자, 일꾼님네들, 요즘 날씨 같아서는 하루에 한 섬씩은 더 들겠네. 이제 그만 쉬고 두벌 모풀이 합시다.”
“네.”

ⓒ 느릿느릿 박철
선소리꾼이 “아요아용 에헤요 아용 얼싸 둥기야”하면 일꾼들이 뒷소리를 받으며 흙을 끌어 당기는데 뒷소리 한번 하는데 여덟 번을 끌어당긴다.

“아용 소리에 흥이 절로 나누나. 모풀이 하는데는 아용 소리가 날개라 보리밥을 먹는데는 고추장이 제격일세. 조밥을 먹는데는 된장 둑수리가 날개라 잎밥을 먹는데는 토막 반찬이 제격일세. 인절미에 제격은 조총이 날개라 무시루떡에는 동치미 국물이 날개라. 덩기 소리에 호미자루 다 빠지네. 먼저 양반들 듣기나 좋게 가까운데 사람은 보기나 좋게요. 아용 소리에 담배 참수가 되었구료.”

선소리꾼이 일꾼들과 쇠잡이들이 양쪽 논 끝으로 나뉘어 질 때까지 풍년가를 부른다. 이어서 쇠잡이들이 쇠가락을 치기 시작하면 일꾼들은 쇠가락에 맞추어 신명나게 춤을 춘다.

이제 기싸움이 시작된다. 들에서 일을 하다 맞추진 양쪽 두레패가 상대방 두레패에게 기를 휘둘러 기싸움을 건다. 양쪽 농기를 필두로 와하며 달려가다 장정들이 앞으로 나가 서로 밀치기를 하며 논두렁 아래로 떨어뜨리면 상대방 기를 넘어 뜨려 깃털(깃봉)을 뺏으면 싸움을 끝난다.

ⓒ 느릿느릿 박철
기싸움에 진 두레가 이긴 편에게 내온 곁참을 대접하면 이긴 편 두레는 뺏어온 깃털을 돌려주며 진 편 대표에게 막걸리를 대접하며 같이 와서 먹을 것을 권한다. 음식을 나눈 후 양쪽 두레가 한데 어울려 신명나는 한판을 치고 놀아 힘들고 고달픔을 달래며 이웃간에 신명나는 굿판을 벌린다.

기싸움이 끝나면 이어서 선소리꾼이
“일꾼님네들, 여름내 흘린 땀방울이 넓은 들에 황금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자 이제 벼 베러 갑시다.”
“네.”

“베어라 베어라 논머리(애래우)로 베어라”

베어라 베어라는 10장단인데 2장단으로 벼를 베어 3번을 베고 7째 장단에 왼발을 옆으로 내어 놓으며 베전을 놓고 8에 몸을 일으키고 9에 왼발을 제자리에 놓으며 10에 바른 발을 한번 굴러주어 다음 동작에 대비한다.

“동남풍에 쓰러진 볏대를 거두(세워서) 잡아서 베어라 삼둥(어깨, 허리, 엉덩이)의 허리를 나분히 깔고 논머리로 올려 베어라 베어라 소리에 일 저절로 된다네. 주인네 아주머니 거동좀 보소 벼만 잘 베어 준다면 상 일꾼으로 선정된다네. 상일꾼으로 선정된 사람은 사윗감으로 올라서네.”

ⓒ 느릿느릿 박철
선소리와 뒷소리를 받으면서 벼 묶는 대형을 취한다. 선소리꾼이
“일꾼님네들, 벼 묶읍시다.”
“네.”

“묶고 나니 또 생겼네.”

일꾼들은 뒷소리를 받으며 간제미를 틀어 벼를 묶고 선소리를 할 때 벼 묶을 뒤로 던져 다음 동작을 준비한다.

“묶고나니 또 생겼네.”
“한아름 덥석 안았구나. 제쳐놓고 배 맞았네. 엎어놓고 배 맞혔네. 연애연속 뭇이로다. 간재미만 틀면 한 뭇일세. 한뭇 한뭇 열이로다.”

선소리와 뒷소리를 받으며 벼 메어 낼 준비를 한다. 선소리꾼이 신이 나서

“일꾼님네들 벼를 메어 냅시다.”
“네.”

“올라 올라 올라 간다.”

일꾼들은 올라 ‘올라’에 베뭇을 어깨에 메고 ‘올라간다’에 또 한뭇을 멘다. 이것을 계속 반복한다.

“한뭇 두뭇 세뭇 올라간다 네뭇 다뭇 엿뭇이 올라간다 일곱 여덟 아홉뭇도 올라간다 하일꾼은 열뭇이요 상일꾼은 열두 뭇씩 메어낸다.”

한쪽에서는 벼를 가리며 섬을 한다.

ⓒ 느릿느릿 박철
벼를 다 묶어 메어내 가리고 나면 올 풍년을 감사하고 내년의 풍년을 기약하며 두레와 두레가 만나 한판 굿판을 한다.

붉게 물든 노을빛을 받으며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하고 피곤한 몸이지만 두레패의 길군악에 맞춰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정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들일 하면서 소리하면 힘도 안들어"
선소리꾼 이창호 할아버지와

▲ 이창호 할아버지

-할아버지, 소리는 언제부터 배우셨어요?
“12살 때, 황태복씨 한테 배웠어. 나보다 8살 더 많았지. 그러니까 그 양반이 20살이었지.”

-특별히 소리를 배우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동기는 무슨. 아버지는 내가 7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12살 때 돌아가셨어. 12살 때부터 일을 배웠지. 그러니까 소리는 자연스럽게 배운 거야. 내가 목청이 좋았거든. 그러니 저절로 배우게 되었어.”

-보통 두레패가 몇 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했나요?
“보통 17명이 한 패가 되는 거야. 그때는 다 품앗이를 했어. 들에서 일하면서 소리를 하면 힘이 들지 않아. 막걸리 참이라도 나오면 저절로 신명이 난단 말야. 그 재미로 하는 거야.”

-두레를 조직해서 운영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경비는 어떻게 조달하셨나요?
“정월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을 하고 놀아주는 거야. 덕담도 해주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쌀 한 말을 내 놓는 거야. 그러면 그게 밑천이 되는 거지. 그것 갖고 7월 김매고 난 다음 대풀이라고 돼지도 잡고 그때는 한 판 크게 노는 거야. 그럼 신나지.”

-올해 할아버지 연세가 80세이신데 앞으로도 계속 하실 생각이세요?
“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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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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