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농산물 개방문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개도국들과 전세계 NGO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이번 칸쿤회의에서 선언문 채택에 실패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오는 12월 15일 특별각료회의를 다시 열어 관세, 정부보조금, 개도국 지위 등의 문제를 확정지으려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내년 쌀협상도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한국농업은 앞으로 남은 석달에 사활이 걸린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으로 앞으로 11차례에 걸쳐 '농수산물 수입개방에 관한 11가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주 1회 기사를 소개할 예정이다. 이 기사는 그 두번째로 'OECD 가입국'인 한국의 한 농민부부의 삶을 통해 개도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농업의 현주소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 전북 순창의 농민 이선형씨 부부는 추곡수매를 앞두고 벌써 연말 부채상환 때문에 심난하다. 들녁에 선 이씨 부부의 힘겨워하는 모습에서 한국농촌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 김도수


[명제 2] 농업개방 협상에서 한국의 '개도국'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농수산물 수출국은 OECD 가입국인 한국이 농업개방 협상에서 '개도국'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의 농민들은 개도국 인정만이 한국농업의 살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떤가.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 금판마을 초입.

이 마을 이장이자 순창군 농민회 회장인 이선형(44)씨 부부의 축사에는 한 마리의 소도 없이 텅 비어 있다. 닭 몇 마리와 열댓 마리의 개가 대신 차지한 축사 한쪽에 '한·칠레자유무역협정 결사반대'라고 적힌 깃발이 걸려 있다.

이씨 부부가 살고 있는 집과 딸린 축사는 가압류된 상태다. 축산업을 하던 농민회 후배가 수억대의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하면서 연대보증을 섰던 그는 1억 원의 부채를 떠안았고 다른 농민회원 5명도 피해를 봤다.

이씨와 부인 박찬숙(45)씨는 지난 83년 농촌에 정착했다.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 부부는 검거와 투옥 등의 고초를 겪던 중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일념으로 농촌에 뛰어들었고 아예 농민으로 자리잡았다.

남편 이씨는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고 이경해씨 운구차를 맡았다가 운구차가 청와대로 방향을 바꾸면서 이를 막던 경찰과 충돌, 앞니 4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동네에 돌아온 그는 가을걷이에 바빠 몸을 돌볼 틈도 없었다.

주민들과 함께 콤바인을 고치던 그는 점심시간이 돼 잠깐 틈을 냈다. 해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반주로 막걸리 한잔을 마신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적자농사의 현실을 이렇게 털어놨다.

"후배 농민 3명과 함께 150마지기의(절반은 소작) 논농사를 7년째 공동으로 짓고 있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비료대, 농약값, 농기계 수리비 등 영농비를 제외하면 가구 당 연소득이 1500∼1600만원 정도로 농지에 대한 이자, 농기계 감가상각비, 인건비 등을 빼면 오히려 적자이다."

매년 적자 농사이기 때문에 생활비와 자녀학비는 영농자금을 대출 받아 충당하고 쌀 수매대금을 받으면 대출 상환금을 갚는다고 했다. 적자농사 → 영농자금대출 → 쌀 수매대금 대출금 상환 → 농가부채 누적의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이씨 부부의 부채 총액은 후배의 빚을 포함한 1억9000만원. 더이상 대출이 불가능해 논 6마지기를 팔아 부채의 일부를 갚았다. 하지만 빚 독촉이 심해 또다시 논의 절반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이씨는 맨주먹으로 마련한 논의 절반을 파는 것은 삶의 절반을 떼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농가부채와 연대보증 문제로 끝내 파탄 난 농민들의 대다수는 자살과 야반도주 중 한 가지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축산업을 하다 부도를 내고 고향을 뜬 후배는 소식이 끊겼다. 농촌을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막막한 농촌 현실에 몸부림 칠 기운조차 잃어가고 있다.

이씨 부부가 연대보증과 연쇄부도로 함께 무너지면서도 농촌을 뜨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농민들과 똑 같은 농심(農心) 때문이었다.

"20년 동안 고락을 같이 해온 자식 같은 농사를 버리고 떠날 자신이 없어 버티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농사보다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0년 농사에 얻은 게 있다면 아들과(20. 한양대 1학년) 부채 1억9000만원뿐이다."


관련
기사
[특별기획 ①] 식량 자급율 5%, 개방반대는 국익이다

"희망을 갖자고 말하는 것은 차라리 욕을 하는 것"

▲ 여성농민회를 조직하며 희망을 품었던 박찬숙씨.
ⓒ 김도수
동네 사람 중에 이혼 당한 40대가 죽어나갔다. 망해 가는 농촌현실에 못 견뎌 술로 세월을 보냈던 60대도 죽어나갔다. 그리고 농가부채에 견디지 못한 이웃들은 야반도주했다.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일념으로 농촌에 뛰어든 이들 부부는 죽어나가고 망해나가는 이웃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면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고 분노했고 절망했다.

이씨 부부는 농가부채와 연쇄부도의 주범이 농정실패라고 꼽았다. 정부당국은 현실에 맞지 않는 대규모 영농사업을 권장하면서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정부만을 믿고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빚쟁이로 만들더니 이제는 농업포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은 돈놀이인 신용사업에만 매달릴 뿐 농업 경쟁력을 위한 유통사업은 겉치레에 그치고, 또한 당국은 농업정책과 예산지원을 소홀히 하면서 농촌몰락을 한 몫 거들며 농민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원망했다.

"10년 전만 해도 희망을 갖자고 이야기했는데 현재 총체적 위기에 봉착한 농촌 현실 앞에서 농민들에게 희망을 갖자고 주장하는 것은 차라리 욕하는 것이다. 농민들에게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농민 스스로 정치세력화 하는 길이다."

벼 수확을 앞둔 그는 연말 부채 상환문제로 심난한 표정이다. WTO와 FTA의 농업시장 개방압력에 시달리는 와중에 비와 태풍까지 들이닥쳐 올해 농사를 망쳤으니 하늘마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는 "FTA(한·칠레협정)와 WTO(세계무역기구)에 망할 농사에 애쓰지 말라고 장마비가 쏟아 붓는 것 같았다"면서 "헛손질이 뻔한 줄 알면서도 도랑을 파내며 흙탕 범벅이 돼 돌아오던 남편이 측은했다"고 말했다.

그는 농민의 절규를 이기주의로 몰아부치는 국민들의 냉대 어린 시선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중앙분리대를 넘어 상행선을 점거하며 무작정 걸으면서 차들에게 길을 막아 죄송하다고 빌고 또 빌었다. 길을 막는 것은 농민들이 아니고 민족의 생명줄인 농업을 팔아 넘기려는 정부가 막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차디찬 비난의 눈초리로 쏘아 부칠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울먹거리며 또 말했다.

"동네 농민이 한강대교 난간 위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기습 고공시위를 벌였다.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는 전국여성농민회원 500여명이 집회를 하고 지도부들은 삭발을 했다. 닭장차 위에 올라가 현수막을 펼쳐들고 아들 같은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는데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계급적 분노가 가슴으로 이해됐다"

▲ 농민의 파탄을 함께 하면서 계급적 분노를 가슴으로 이해했다는 이선형씨.
ⓒ 김도수
학생운동 전력과 농촌생활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양쪽 집안 모두로부터 외면 당한 이씨 부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허름한 외딴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아내는 아들을 낳고도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몸이 상했다. 이는 농촌에서는 흔한 일이다.

맨손으로 농촌살림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모은 250만원으로 지난 84년 암송아지 두 마리를 사서 키웠다. 그런데 2년 후에 절반 값인 126만원에 팔았다. 전두환정권이 일으킨 소 값 파동 때문이었다.

"소먹이를 장만하다 작두에 손가락을 끊어먹고 품을 팔아 받은 일당으로 사료비를 충당한 대가를 완벽하게 사기 당했다. 그때 책에서 읽은 계급적 분노가 가슴으로 이해됐고 노동의 대가를 도둑질한 정치·사회구조에 대한 적개심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하지만 농민들은 팔자소관으로 치부하며 체념했다. 계급적 분노가 개인의 체념으로 사그라지는 원인이 농민조직의 부재라는 것을 알고 이씨 부부는 농민회 조직에 나서면서 지난 87년 순창군 농민회를 조직했다. 아내 박씨는 여성농민회를 조직했다.

▲ 통계청이 올초에 발표한 '2002년 농업 및 어업 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농가인구는 평균 2.8명이고, 농민수는 350만명대(총인구의 7%)로 크게 떨어졌다.

▲ 200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가 경영주의 연령대는 60세 이상이 전체의 약 57%를 차지해 농촌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년인구는 점차 줄고 있다.

10년이 지난 97년, IMF로 온 나라가 경제파탄위기에 처했지만 농촌은 담담했다. 1960년대 이후 시작된 수출정책에 의한 구조조정과 파산의 칼바람이 이미 밀어닥쳤기 때문이었다. 축산과 원예작물, 그리고 과수 등의 농사는 사료비와 종자대도 건지지 못해 갈아엎으며 파산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IMF 귀농자의 70% 가량이 다시 농촌을 떠났다.

7년이 지난 2003년, 살농정책(殺農政策)에 분노한 농민들이 시위와 집회에 나섰지만 언론은 농민들의 절규를 집단 난동과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했다. 대신 농민의 죽음보다 오염된 먹이를 먹은 두루미의 죽음을 더 애처롭게 다루었다.

그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국영기업의 80%를 미국자본에 잠식당한 멕시코는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가 됐다"면서 농업희생을 전제로 한 시장개방의 문제를 영국의 예를 들며 이렇게 반박했다.

"영국은 초기 산업화과정에서 밀 경작 농민을 쫓아내 도시 노동자로 만들었다. 그 땅에 양을 키워 양털을 가공한 모직제품을 수출해 이윤을 창출했다. 결국 밀 수입국이 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식량부족 사태를 겪으며, 식량의 전략적 가치를 뼈저리게 깨닫고 막대한 농업예산을 투자해 다시 밀 수출국이 됐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이 미국의 거센 압력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농업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농사는 단순한 경제가치가 아니라 식량안보 차원의 전략적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농민단체들이 정부와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호소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라고 했다. 그는 순창군 전 농민회장인 동네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농민의 삶을 서글퍼 했다.

"서울에서 부동산과 증권투자로 돈을 번 친구가 명절 때 내려와 농지규모와 연간 농업소득규모를 듣고는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불문곡직하고 그 땅을 팔아 자신에게 맡기면 일 안하고도 지금의 소득보다 두 배 이상을 보장해주겠다고 하면서 병신처럼 살지 말라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지금껏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영악한 계산법을 아예 모르거나 또는 계산하기를 포기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수가 없다. 그러기에 참깨가, 귤이, 돼지가 10년 전과 15년 전의 가격으로 고정 불변해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은 경제력은 개도국 수준을 넘어 OECD에 가입할 정도로 이미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공업의 성장에 가려 피폐해진 한국농업은 개도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농민 이선형씨 부부의 삶은 한국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바로미터라고 하겠다.

국민 85% "가격 비싸도 우리 농산물 구입하겠다"
농민비율 7%대로 뚝... 65세 이상 고령화 · 부부 2인농가 가속화

[표]영농형태별 농가부채 현황
(단위:천원)
구분 논벼 과수 채소
2002 2003 2002 2003
2002 2003
농가소득 20,225
9,680
29,736
11,410
23,497
12,220
농가부채 15,362
24,480
28,923
43,260
23,975
32,380
구분 화훼
축산
기타
2002 2003 2002 2003 2002 2003
농가소득 26,037
15,780
31,513
11,410
24,934
17,850
농가부채 40,281
85,050
30,294
57,390
23,305
72,230
2003년농가소득합계 11,180
2003년농가부채합계 34,170
ⓒ 오마이뉴스 김경화 자료: 한국갤럽조사

통계청이 올초 발표한 '2002년 농업 및 어업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농가인구는 10년 사이 총인구 대비 13%에서 7%대로 떨어져 총 350여만명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영농포기, 농민의 도시전출 및 겸업농가의 타산업으로의 전업 등으로 농가인구의 감소폭이 날로 늘고 있다.

전업농가와 겸업농가가 전년 대비 각각 2.5%, 10.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업농가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농업의 규모화와 전문화가 보다 뚜렷해졌다. 또한 가구원수별 농가는 2인 가구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농가의 평균 가구원수는 2.8명으로 5년새 0.3명이 줄어들었다.

농가인구의 연령계층별 구조는 10년새 유년인구의 비중은 절반으로 줄고 노령인구 비중은 배로 증가, 유년인구 4명당 1명이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5세 미만의 유년층 인구와 15∼64세 인구는 전년에 비해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층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밖에도 연간 농축산물 판매규모가 1천만원이 채 안되는 농가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가의 PC 보유율은 30%에 육박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농업과 관련해 PC를 활용하는 가구는 14.8%에 불과했다.

특히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농가당 부채규모는 조사기관별로 수치가 다른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에 처음으로 농가부채가 줄었다고 발표했으나, 농가부채대책위에서 부채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한국갤럽을 통해 부채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농가당 부채규모는 3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천만원 이상의 고액 농가부채가 늘고 있다는 점, 농가부채 이자가 매우 높다는 점, 그리고 화훼, 특작, 채소, 축산 농가의 부채가 전작 농가부채보다 높다는 점, 이후 농업을 책임져 나갈 젊은 영농인의 부채가 많다는 점 등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한편 이번 농림수산위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여론조사(주인우, 이우재, 정장선 의원 공동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인 국민의 92%가 "농수축산물 구입할 때 국산과 수입산을 확인한다"고 답했고, 수입산과 가격차이가 나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85% 가량이 "품질이 우수하면 구입하겠다"고 응답했다.

한국농업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이같은 태도는 한국농업의 회생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 박형숙 기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