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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광위원들이 지난 2일  KBS 국정감사 도중 송두율 교수 등을 다룬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귀향 돌아온 망명객`을 시청하고 있다.
국회 문광위원들이 지난 2일 KBS 국정감사 도중 송두율 교수 등을 다룬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귀향 돌아온 망명객`을 시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송두율 교수건을 계기로 빚어진 이념갈등 양상 정도로 보이고 있지만 결국은 개혁성향의 '정연주 사장 퇴진'을 겨냥한 보수진영의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추론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송두율 교수 미화 방송'과 '정 사장 간첩단 연루 의혹' 제기를 통해 당 차원의 공세를 다각도로 전개하자 이것이 사전에 조율된 '기획 국감'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KBS에 대한 한나라당의 맹공에 대해 그동안 KBS에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조중동 역시 한나라당의 이념공세를 대대적으로 받아쓰면서 '색깔론'을 증폭시키고 있어 보수진영이 모처름의 '호재'를 만나 총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조중동의 연합공세에 대해 KBS를 비롯해 언론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를 '공영방송 말살음모'로 규정짓고 묵과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펴고 있다.

특히 KBS 내부에서는 노동조합을 위시해 기자협회, PD협회 등이 잇따라 비상모임을 열어 전사적 차원의 대응과 더불어 한나라당과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한마디로 여의도 일대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형국이다. KBS노조의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정략적인 비난에 그냥 당할 수 없다'는 말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KBS의 이같은 입장은 경영진보다 일선 제작진과 사원들에게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KBS 내부는 상당히 일사분란하게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KBS 기자협회(회장 손관수)는 6일 오후 6시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한나라당 행태 비판 성명 발표 △대책기구 구성 등 회사차원 대응 마련 △프로그램을 통한 맞대응 △명예훼손성 보도 법적 대응 검토 등을 사측에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KBS PD협회(회장 이강택)도 오는 8일 오후 PD총회를 개최해 전체 PD의 총의를 모을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 편향시비 대상이 됐던 '한국 사회를 말한다', '미디어포커스' '인물현대사' 등 프로그램 제작 당사자인 PD들의 대응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경영진에도 7일부터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KBS는 우선 <동아일보> 6일자 'KBS 청소년 오락프로 김일성시계 미화 물의'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왜곡보도를 했다고 판단,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 사장 간첩단 연루 의혹 등 일련 보도에 대해서는 아직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노당 등 범개혁진영도 오는 8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KBS 색깔공세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여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가세한다. 이로써 지난 2일 KBS 국정감사를 계기로 불붙은 '한나라당-KBS' 대립이 '한나라당-범개혁진영'간 전면전으로 번질 전망이다.

한나라-조중동 목표 '정연주 제거'?

KBS 내부와 범개혁진영은 이번 한나라당-조중동의 KBS 공세는 다분히 정략적인 목표를 갖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근거로 무리한 색깔논쟁을 지속하는데는 총선을 대비한 'KBS 길들이기' 의도가 숨어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송교수-KBS 미화-정연주식 '개혁' 코드-간첩단 연루-사상불순-자격시비-정사장 퇴진'과 '송두율-정연주-이종수(KBS 이사장)'를 연계한 수순이 전형적인 색깔론을 방증하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KBS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나라당의 단순한 공세로 보지 않는 분위기이다. 지난 대선을 계기로 촉발된 한나라당과 KBS의 대립이 정 사장 취임을 정점으로 본격화되면서 줄곧 적대적 인식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KBS는 한나라당이 국정감사에서 KBS를 타깃으로 공세를 펼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후문이다. 국감 시작 한 달여 전부터 한나라당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됐다는 게 내부의 증언이다.

KBS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 패배의 원인을 방송을 장악하지 못한데서 찾는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 역시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정연주를 포섭하든지, 할 수 없다면 날리자'라는 얘기가 나돌았다는 정보가 계속 들어왔다"며 "국감 이전에 만난 한나라당 관계자도 '정 사장 퇴진으로 방향을 잡했다'고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KBS 표적 논란은 국감 자료요청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문화관광위 소속 중 KBS와 관련해 가장 많은 자료를 요청했던 이 의원은 KBS 간부들과 함께 9명의 개혁추진단 직원에 대한 구체적인 인적사항까지 요구, 정 사장의 정실인사를 가늠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구설을 낳았다.

이윤성 의원은 지난 4일 KBS에 9월 27일자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관련한 13개 항목에 달하는 세부적인 자료를 추가로 요청했다. 여기에는 '한국사회를 말한다' '경계도시' 등 제작진 전원의 고교이후 학력과 최근 5년간 경력까지 포함돼 있다.

이중 9개 항목이 이종수 KBS 이사장에 대한 질문이다. 주요 내용은 송교수와의 최초 접촉 경위 및 관계를 비롯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 활동내역, 취재진 명단 등이다. 지난 8월말 이종수 이사장의 독일 방문에 대해서는 KBS 지원여부는 물론 방문자격, 일정, 접촉인사, 동행자 명단, KBS 지원근거, 지원금액, 지원항목 등을 명시할 것을 요구해 사법부 수사 수준을 방불케 한다.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은 특정 프로그램의 세부 내역과 제작진에 대한 인적사항까지 요구했다. '미디어 포커스'의 경우 각 회별 기획의도, 특정 신문 비판 횟수, 제작진과 자문위원의 인적사항 등까지 요청했고 '인물현대사' 역시 자문위원에 대한 인적사항이 요구됐다.

KBS에서는 한나라당이 자사 출신 전·현직 의원을 저격수로 대거 포진시킨 점을 주시했다. KBS의 한 PD는 "여론으로부터 지역구보다 자유로운 전국구 이원창 의원이 정 사장 간첩단 연루 의혹을 맡고, KBS 앵커 출신인 이윤성 의원이 이종수 이사장의 송 교수 귀국 '기획참여'를 집중적으로 폭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두 의원을 주연격으로 놓고 KBS 보도본부장을 지낸 김병호 의원과 조선일보에 칼럼을 게재한 KBS 간판 앵커 출신 박성범씨 등을 조연급으로 배치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같은 역할 분담은 의원 개별 판단으로 진행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또 2일 국정감사 이후 최병렬 대표나 정형근 의원 등의 잇따른 관련 발언 역시 치밀하게 계산된 전술로 풀이했다.

한나라당 소속 문광위원들. 오른쪽부터 고흥길, 강신성일, 권오을, 김병호, 신영균 의원.
한나라당 소속 문광위원들. 오른쪽부터 고흥길, 강신성일, 권오을, 김병호, 신영균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편, KBS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KBS 흔들기가 정치공세뿐 아니라 내부 분열을 시도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즉 KBS 밖의 '정연주 때리기'와 KBS 안의 '안티 정연주' 세력 조직화가 병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KBS의 한 중견간부는 "한나라당의 흔들기 공세로 정 사장 취임 뒤 인사에서 물갈이된 기득권층이나 과거 간부들이 불만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불만이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 인용하는 KBS 내부 의견"이라며 "그러나 이는 소수에 불과할 뿐 대다수 일선 직원들은 현재의 KBS 개혁을 시대적인 추세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KBS 보도국의 또다른 기자는 "사장이 '이런 방향으로 만들자'고 하지도 않지만 사장 코드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도 않는다"며 "지금은 9시뉴스 큐시트를 사전에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KBS가 누구에 의해 지시받는 시스템이 아니게 됐다는 사실을 강조한 뒤 "한나라당이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개혁'이라는 KBS 변화의 본질을 주목하지 않는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우리 마음대로 정 사장 사퇴시킬 수 있나"

그러나 한나라당측은 이같은 '국감 기획설'에 대해 선입견이라고 일축했다. 국회 문화관광위 한나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고흥길 의원은 지난 6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정 사장을 날리고 사퇴시킬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고 의원은 이어 "정 사장이 국무위원도 아닌데, KBS에서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유감"이라며 "우리는 공정하게 평가하고 결과를 도출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칼럼 등을 통해 성향이 알려진 정 사장이 취임한 뒤 단행된 프로그램 개편과 사회자 교체 등을 통해 KBS가 편향된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고 의원은 "정 사장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프로그램이 나가는 것을 보니 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줬다"며 "정 사장은 전혀 프로그램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래 사람들이 알아서 사장 코드에 맞춰 제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획 국감'과 관련, "사상적인 논쟁, 간첩 의혹은 처음부터 당에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이원창 의원이 개인적으로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즉 처음부터 당에서 정 사장에 대해 사상논쟁을 벌이거나 매카시즘으로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종수 KBS 이사장의 송 교수 접촉을 언급하면서 국감을 통해 드러난 의혹에 대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을 했다.

이번 보수진영의 'KBS 총공세' 사태를 두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벌써부터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 같다"고 진단한 후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당시의 교훈을 되새기지 못하고 다시 방송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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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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