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일 저녁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해외민주인사초청 환송 만찬'에서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가 참석자들의 손을 잡고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의 소원' '아리랑' 등을 부르고 있다.
26일 저녁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해외민주인사초청 환송 만찬'에서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가 참석자들의 손을 잡고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의 소원' '아리랑' 등을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6일 저녁 11시 40분 기사대체>

"나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송두율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던 중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송두율 교수.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던 중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송두율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재독 학자 송두율(59, 뮌스터대) 교수는 26일 저녁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 '대화의 집'에서 열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 아래 사업회) 주최 '해외민주인사 초청 환송 만찬'에 참석, 이와 같이 강조하며 "내일은 선영에 가서 그 동안 자식도리 못했던 것… 그런 기회가 일주일만에 왔다"고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송 교수는 이어 "헤어지는 마당에 여러 선배들을 만나게 돼 아쉽다"며 "독일 출국시부터 체포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조사과정에서 진실을 그대로 이야기했다고 본다"며 "어제로 일단 조사가 일단락 됐다"고 말했다.

사실 다른 민주화 인사들과 같은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하기로 했던 송 교수는 지난 22일 고국을 방문한 다음날부터 국정원에서 3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으면서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이날 만찬에는 서울, 광주 등으로 이어진 6일 동안의 일정을 모두 마친 해외민주인사 50여명과 가족들이 저녁 7시부터 아쉬움을 나누고 있었다.

송 교수는 낮 동안 서울 시내 모처에서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 등과 함께 국정원 출두와 향후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환송만찬이 끝날 무렵인 저녁 8시 50분께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20여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만찬장으로 향한 송 교수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세 번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와 유리하지만은 않게 돌아가는 여론 탓인지 피곤한 표정이 역력해 보이는 가운데 행사장으로 들어온 송 교수는 미리 참석하고 있던 부인 정정희(61)씨와 아들 준(28), 린(27)씨와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 테이블에는 광주 5.18 현장을 전세계에 알린 독일의 힌츠 페터씨 부부와 송 교수의 서울대 철학과 3년 선배이자 독일에서 함께 반유신투쟁을 펼쳤던 이삼열 교수도 함께 했다.

이후 송 교수는 행사 끝까지 함께 하며 참석자들과 같이 일어선 채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고 "아리랑"도 함께 불렀다. 이어 송 교수는 바로 숙소로 향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송 교수는 "이미 변호사에게 다 말했다"는 말만을 남겼을 뿐이다.

행사장에 도착한 송두율 교수가 부인 정정희씨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고 있다.
행사장에 도착한 송두율 교수가 부인 정정희씨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편 국정원 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던 송 교수는 내일(27일) 오전 10시 국정원에 재출두, 자신의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철 사업회 홍보과장은 "내일 국정원 출두는 조사받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며 "이전까지 조서를 받는 입장이라면 의견을 전달하는 입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조사는 오전 중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으며 이후 송 교수는 아버지 선영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 교수 아버지의 선영은 경기도 광주에 마련돼 있다.

다음은 송 교수의 인사말 전문.

"박 이사장님을 비롯해서 기념사업회 측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좋은 기회였는데 이렇게 마지막 헤어지는 환송회에서야 보게 됐다. 그 중간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37년만에 조국방문이었고 제 자식으로서는 부모의 땅을 처음 밟았는데, 그날부터 예기치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다 보니 오늘에야 헤어지는 마당에 만나게 됐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탈 때도 체포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상황에서도 공항에 도착해서 '자진 출두하는 그래서 내 진실을 그대로 이야기하겠다'고 했고 어제까지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이제 내일은 선영에 가서 그 동안 자식도리 못했던 것… 그런 기회가 일주일만에 저한테 왔습니다.

이러저러한 문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또 오해가 있는 부분은 다 이야기를 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송두율은 그 송두율이라고 믿고 또 그런 확신을 가지고 다시한번 만날 일이 있을 겁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