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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6일 전북 부안군 위도를 방문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강현욱 전북도지사, 김종규 부안군수(오른쪽부터)가 핵폐기장 예정지인 치도마을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윤진식 장관의 '도깨비 제안'

"차라리 청와대를 부안군 위도로 옮겨라."
"지금 '방폐장' 갖고 농담할 때인가."


17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의 '위도에 대통령 별장 설립' 발언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과연 주무부처 장관이 제 정신으로 이같은 정책 제안을 한 것인지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윤 장관의 이같은 제안이 당사자인 청와대와 전혀 상의없이 이뤄진 돌출 발언이라는 것이다. 윤 장관의 발언 직후 청와대는 즉각 윤 장관의 발언은 부인하고 나섰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윤 장관 개인의 생각일 뿐이지 청와대와 사전에 얘기된 바 없다"며 불쾌해 했다.

청와대의 한 국장급 행정관도 "윤 장관의 발언 내용을 처음 들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슨 생각으로 청와대와 일언반구 상의없이 그 같은 발언을 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며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인지 꼬이게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 놓았다.

▲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통령 별장' 파문은 이날 산자부 기자 간담회에서 시작됐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원전수거물 관리 시설에 대한 부안군 주민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고 (원전수거물 관리) 시설물 건립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위도 지역에 대통령 별장 설립 건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별장' 제안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의 안전성을 보여주기 위해 애초 한국수력원자력이 내놓은 안으로 알려졌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관리시설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2008년까지 건물을 지은 뒤 국가에 기부 채납한다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비록 윤 장관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수한 동기에서 이같은 제안을 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과 대통령 별장이 과연 무슨 연관성이 있는가. 현재 방폐장 건립을 둘러싼 정부와 부안 주민들 간의 갈등은, 이해 당사자인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 부재나 부지 선정의 적합성·투명성 등에 대한 현격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별장이 이같은 갈등 원인을 치유할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대통령 별장' 카드는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가 밝혀왔던 원칙과도 상반되는 발상이다. 지난 4월 18일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보낸 첫 번째 '대통령의 편지' 내용은 "대통령의 별장인 청남대를 국민 여러분에게 돌려드린다"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상이나 전시행정의 껍데기를 벗겠다는 상징으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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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통령이 청남대를 주민들에게 돌려준 게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대통령 별장을 짓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만약 윤 장관의 제안대로 실행된다면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난 뒤인 2008년에 완공되는 별장 아닌가. 생색은 현 정부에서 내고 뒷마무리는 다음 정부로 넘기겠다는 잔수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예상하지 못하고 '대통령 별장' 발언을 했다면 장관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 거꾸로 이런 문제점을 알고도 그같은 발언을 했다면 장관으로서의 양식에 하자가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충수다.

윤 장관이 대통령 별장 발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 또다른 이유는, 그가 부안 방폐장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를 때 위도 주민들에게 '현금 보상'을 약속했다가 불과 며칠만에 이를 뒤집은 전력 탓도 있다. 이미 한 차례 신뢰를 잃었던 터에 이같은 얼토당토 않은 도깨비 같은 제안을 하니 스스로 매를 번 셈이다.

고건 총리의 반대로 주민들과 대화가 무산된 김두관 장관의 탄식

▲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부안 방폐장 문제를 둘러싼 참여정부 내각의 악수(惡手)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부안 방폐장 문제를 둘러싼 또다른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 김두관 장관이 '주민들과의 직접 대화'를 강력히 주장했다가 고건 국무총리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된 일이 있었다.

지난 8월말 김 장관은 몇 차례 부안을 방문한 뒤 "방폐장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니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겠다. 부안군수조차 주민들과의 사전 대화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 상황이라 그냥 방치하게 되면 사람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장관이 직접 주민들을 설득해 과열된 분위기를 냉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고건 총리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고 총리는 김 장관의 이같은 제안에 제동을 걸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국책사업인데 왜 국무위원이 그런 과정을 밟으려 하느냐'는 게 고 총리의 반대 논리였다는 후문이다.

이후 부안 방폐장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주민들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급기야 지난 8일에는 내소사에 머물던 김종규 부안군수가 흥분한 주민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해 중태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김 군수가 폭행당하던 날, 김 장관은 참모들과 모임을 갖다가 이 소식을 접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측근에 따르면, 김 장관이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서 풀지 않고 공권력에만 의존하면 사람이 다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그렇게 심각성을 알렸는데도…"라며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김 군수 폭행 사건이 벌어진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 장관은 주민들과의 직접 대화를 제안했다가 좌절된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후 부안 방폐장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주민들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부안 방폐장을 둘러싼 두 주무부처 장관의 인식과 행보는 이처럼 큰 차이를 보였다.

노 대통령은 첫 번째 '대통령의 편지'에서 "개혁은 어려운 말이 아니다. 내용이 없는 단순한 구호도 아니다. 그것은 앞에 있어야 할 것을 앞에 있게 하고, 뒤에 있어야 할 것을 뒤에 있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부안 방폐장 문제를 푸는 해법에 있어서 무엇이 앞에 있어야 하고, 무엇이 뒤에 있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부안 방폐장 문제가 난마처럼 얽히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참여정부 스스로 '뒤의 것이 앞에 가 있고 앞의 것이 뒤에 가 있는' 혼란을 부추겼던 데 있었던 것은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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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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