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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 인효는 가끔씩 수다쟁이 아줌마가 됩니다.
ⓒ 송성영
“아빠 우리도 핸드폰 사자!”
“너 형아들처럼 핸드폰에 코 박아 놓고 오락하려고 그러지?”

추석 전날이었습니다. 사촌형의 핸드폰을 부러운 듯 만지작거리던 큰 아이 인효가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돈이 없어서 못산다고 했지만 아빠도 요즘은 돈 많이 벌고 있다고 했잖아!”
“아빠가 무슨 돈을 많이 벌어?”
“에이, 맨날 사람들한테 자랑해놓고, 요즘 백만 원도 넘게 번다고 그랬잖아.”
“그럼 좋다. 아빠를 설득해봐. 아빠에게 핸드폰이 왜 필요한지 세 가지만 말해봐라. 그럼 우리도 핸드폰 살게.”

세상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작은 아이 인상이 하고는 전혀 다른 인효. 뭐든지 한번 들으면 머리 속에 척척 입력시키고 한마디 하면 열 마디를 줄줄 늘어놓는 인효.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수다쟁이 아줌마'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인효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텔레비전 화면을 한번 쓰윽 보고 나더니 생각났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습니다.

“헤헤, 오늘 같이 저렇게 고속도로가 막히면 핸드폰이 필요하잖어. 할머니께서 늦으면 걱정하시니께, 그때 핸드폰 꺼내서 전화하면 되지.”
“헤, 요 녀석 봐라, 그래, 니 말대로 그럴 수도 있다.”

“거봐 핸드폰이 필요하지. 앗싸, 한 가지 성공했다!”
“아직 좋아하기는 일러 잇마! 차가 밀릴 때는 출발할 때 미리 집에서 할머니 차가 밀려서 늦게 될 겁니다. 전화하고 오면 되지, 그리구 할머니께서도 명절 때는 차가 밀리는 걸 다 알고 계시니께 걱정 없어 잇마.”

“좋아 이번에는 방송국에서 피디 아저씨들이 아빠 찾게되면 핸드폰이 필요하잖아, 저번에 핸드폰 없어서 누가 뭐라구 했다고 했잖아?”

묵묵부답의 인상이와는 달리 쉴 사이 없이 질문공세를 펴는 데 선수인 녀석은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빠 손님들이 찾아오면 옆에 척하니 붙어앉아 이러저런 세상 얘기를 주워 담기를 잘합니다. 언젠가 핸드폰 때문에 모 방송국의 PD와 신경전을 벌였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걸 옆에서 들었던 모양입니다.

언젠가 모 PD가 제발 핸드폰 좀 사라며 내 앞에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라는 것이었지요. 나 역시 신경질적으로 말해줬습니다. 핸드폰이 없었던 예전에도 방송일 지장 없이 해 왔다고.

“좋다, 방송국 일 때문이라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빠는 핸드폰이 없어서 방송 빵구 내 본 적 한번도 없었고, 또 급한 일이 있게 되면 아빠가 미리 알아서 집 전화로 방송국에 연락하면 되지. 그리고 또 방송국 아저씨들이 아빠가 급히 필요하면 언제든지 집으로 전화하면 된다. 아빠는 방송국 가지 않는 날이면 거의 매일 집에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가 산에 올라가 있거나 집에 없는 날이면 엄마가 전화 받아서 아빠 있는 곳으로 연락하면 되고…. 핸드폰이 없어서 방송국 아저씨들한데는 좀 미안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핸드폰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녀석은 어디서 그렇게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끊임없이 공세를 폈습니다.

“시내에서 헤어져 있을 때 있잖어. 저번에 대전에 나갔을 때 엄마하고 우리는 아빠 싫어하는 백화점에 갔고 아빠는 후배 만나러 갔잖아. 그때 핸드폰이 있었으면 좋았잖어”
“그때 아빠 후배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별 걱정 없이 다시 만났지? 그리구 우리는 백화점 같은데 일년에 많이 가야 몇 번밖에 안가잖아. 그것 때문에 핸드폰을 사?”

“핸드폰이 있으면 위치 확인을 할 수도 있대. 그러니까 사고가 나면 핸드폰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도 있잖아.”
“아들아! 넌 아빠가 사고나는 거 원하지 않지?”
“당연하지!? 에이, 또 당했네.”
“다음 이유는 또 뭐가 있을까?”

“아빠 그거 알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누구한데 보낼 수도 있대. 아빠 단편영화 만드니까 필요하잖아.”
“그 이유는 어째 우리 집 똘똘이, 인효답지 않다, 아빠에겐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좋은 캠코더가 있다는 것을 모르셨나?”
“아참 그렇지.”

“이제 항복하시지? 아빠가 핸드폰이 필요없다는 것을 알만큼 알았잖아”
“아직 멀었어! 잠깐 기다려.”
녀석이 잠깐만 있어봐 하더니 송편 몇 개를 손에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럼 좋아, 인상이네 반에서 우리 집만 핸드폰 없구, 우리 반에서도 핸드폰 없는 집은 우리 집 뿐이란 말여. 그러니까 우리도 사야지.”
“너는 그럼 남들이 죽으면 따라 죽을래?”
“아니? 내가 왜 따라 죽어.”
“아빠도 마찬가지여 잇마! 남들 다 핸드폰 있다구 따라서 사자구? 아빠도 그렇게 못하지.”
적당한 핑계거리가 없어서 이번에는 좀 어거지로 넘겼습니다.

“그럼, 미래에 핸드폰을 모두다 사야만 한다는 법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야!”
“야, 우리 인효 대단한데, 이번에는 제법 머리 썼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미래가 아니지? 그리고 법이 정해지면 그 때가서 사면 되지?"

별의별 얘기 끝에 이런 끔찍한 질문까지 나왔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처럼 우리나라로 쳐들어와 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해? 그때는 핸드폰이 필요할 걸? 아빠하고 우리하고 헤어져 있으면 서로 연락해야 되잖아. 그때 핸드폰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여?”

정말 못 말리는 우리집 수다쟁이 인효였습니다.

“전쟁 안 일어나. 너는 그런 걱정 하지마.”
“그래도 모르지.”
“그럼 그때 가서 핸드폰 살게. 됐지?”

“너 솔직히 말해봐, 아빠가 핸드폰 사면 그걸루 오락하려구 그러지?”
“아녀! 그게 아니라니께!”

녀석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에이 안되겠다. 투표해. 투표해서 결정해. 인상아, 너 핸드폰 필요하지? 엄마도 찬성이지?”
“투표는 무슨 투표여! 아빠한데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것인디. 자 이제는 포기하시지? 이래도 핸드폰이 필요하다고 말할껴?”

한계를 느꼈는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이번에는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아참, 아빠가 하두 이거저거 필요없다고 교육시켜서 내가 바보가 다 됐나봐, 다른 집에 다 있는 핸드폰도 없으니 내가 바보가 됐지.”
“아녀 잇마, 우리 집에 핸드폰이 없어서 너는 오히려 더 똑똑해 진 거야, 만약 핸드폰이 있었다면 니가 지금처럼 이렇게 많이 똑똑한 생각을 할 수 있겠어?”

‘핸드폰 당위성’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막을 내렸냐구요? 결국 아빠의 잔머리에 두손두발 다 든 인효 녀석이 스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구 아빠 잘 났어, 내가 돈 모아서 살 거여.”

추석 명절을 전후로 며칠 동안 핸드폰의 필요성에 대해 처절하리 만큼 머리를 짜냈던 인효. 추석 명절을 다 잊고 다시 학교에 등교하고 있듯이 녀석의 ‘핸드폰 당위성’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 버렸답니다.

내게 있어서도 핸드폰의 존재는 그런 것 같습니다. 공중전화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 아주 가끔씩은 핸드폰의 필요성을 느끼곤 합니다. 그 순간만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어딘가에 공중전화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모르는 일이지요. 언젠가는 핸드폰을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게 될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핸드폰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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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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