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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노인회(회장 차창현) 어르신들부터, 도회지에 나가 살다가 한가위를 맞아 고향을 찾은 이들의 어린 자녀들까지 모두 한 판 신명나게 어우러진 날이었다.
물론 남자들은 노래 잘 하는 몇 명을 빼고는 연신 고기 구워먹기에 바빴다. 청년회 총무를 맡은 성성모(40) 씨에 따르면, "낮에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고 했다.
동네 아낙들도 행주치마를 입은 채 몰려나와, 시댁 어른들이 대부분인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온 몸을 흔들어가며, 디스코에, 막춤에, 사교댄스까지 선보이며 오랜만에 신나게 놀았다. 그야말로 모처럼만의 여성해방! 그런데 어디서 그렇게 노래 실력 춤 실력을 쌓았는지! 거의 직업 연예인 수준들이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것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이 마을잔치가 없었으면, 고스톱 치는 아빠 곁에서 한 대 얻어맞고 "나가 놀아라!" 하는 핀잔을 받거나, 명절 내내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을 테지만, 이날은 동요가 아니라, "진달래꽃"이나 "내 생에 봄날은 간다" 같은 유행가를 불러도, 민속춤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굴러들어온 춤인지도 모르는 개다리춤을 추어도, 어른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날이지 않은가!
이 날은 돈을 써도 기분 좋은 날이다. 예전처럼 새끼줄에 매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흉내는 냈으니까, 비록 돈 만 원을 냈을 망정, 내 이름이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바람에 가벼이 흔들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 이만큼 살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주는 것이니까.
오랜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안부를 묻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하는 인사를 들으셔서 그런가? 노인회장님은 노래자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발써 취하셨나 보다. 인사말씀을 하시는 폼이 영 혀가 꼬이시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허리를 뒤로 제껴가며 박수를 쳐 대는 그 열기에 기분이 '업'되셔설까? "동네사람덜, 고마워! 청년덜두 고맙구, 부녀회원덜두 고마워! 다덜 고마워!"를 되풀이하신다. 연단에 오르내리실 때 부추김을 받으신 것은 꼭 연세 때문만은 아니고, 이 어르신을 기분 좋게 취하게 하신 알콜님 덕분일 게다.
올해가 2회째임을 알려주는 저 현수막은 2002년에서 마지막 2자 위에 3자를 덧씌워서 만든 것이다. 1년 동안 어디서 오늘을 기다렸을까? 4자를 덧씌우게 될 내년 한가위 때까지는 어디서 기다릴 것인가? 그 날도 오늘의 이 모든 어르신들을 다 뵈올 수 있을까? 모두모두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