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 아~ 주민 여러분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8시부터 회관 앞 마당에서 주민 노래자랑이 있습니다 ~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올해로 2회째 주민노래자랑을 연 안성 소신두리 성낙천 이장
"아~ 아~ 주민 여러분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8시부터 회관 앞 마당에서 주민 노래자랑이 있습니다 ~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올해로 2회째 주민노래자랑을 연 안성 소신두리 성낙천 이장 ⓒ 김용한

이 날은 노인회(회장 차창현) 어르신들부터, 도회지에 나가 살다가 한가위를 맞아 고향을 찾은 이들의 어린 자녀들까지 모두 한 판 신명나게 어우러진 날이었다.

기분 좋아 마신 술에 기분이 더 '업'되어 무대에 올라 격려사를 하시며 "고마워~ 고마워~ 즐겁게덜 놀어~" 를 되풀이하시는 노인회 차창현 회장
기분 좋아 마신 술에 기분이 더 '업'되어 무대에 올라 격려사를 하시며 "고마워~ 고마워~ 즐겁게덜 놀어~" 를 되풀이하시는 노인회 차창현 회장 ⓒ 김용한

물론 남자들은 노래 잘 하는 몇 명을 빼고는 연신 고기 구워먹기에 바빴다. 청년회 총무를 맡은 성성모(40) 씨에 따르면, "낮에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고 했다.

온몸 흔들어 땀도 빼고, 살도 빼고, 목청도 맘껏 질러 1년치 스트레스도 확 풀어버리고, 최우수, 우수, 인기, 장려 모두 쓸어버려 살림까지 넉넉히 장만한 소신두 부녀회원들
온몸 흔들어 땀도 빼고, 살도 빼고, 목청도 맘껏 질러 1년치 스트레스도 확 풀어버리고, 최우수, 우수, 인기, 장려 모두 쓸어버려 살림까지 넉넉히 장만한 소신두 부녀회원들 ⓒ 김용한

동네 아낙들도 행주치마를 입은 채 몰려나와, 시댁 어른들이 대부분인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온 몸을 흔들어가며, 디스코에, 막춤에, 사교댄스까지 선보이며 오랜만에 신나게 놀았다. 그야말로 모처럼만의 여성해방! 그런데 어디서 그렇게 노래 실력 춤 실력을 쌓았는지! 거의 직업 연예인 수준들이다.

"마을 잔치에 고기가 빠질 수 있나? 그래서 낮에 돼지 한 마리 잡았지!" 한밤중까지 "부어라, 마셔라, 한 잔 더 해! 한 첨 더 먹어!" 하는 재미에 자정을 훌쩍 넘겼다.
"마을 잔치에 고기가 빠질 수 있나? 그래서 낮에 돼지 한 마리 잡았지!" 한밤중까지 "부어라, 마셔라, 한 잔 더 해! 한 첨 더 먹어!" 하는 재미에 자정을 훌쩍 넘겼다. ⓒ 김용한

아이들이 기뻐하는 것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이 마을잔치가 없었으면, 고스톱 치는 아빠 곁에서 한 대 얻어맞고 "나가 놀아라!" 하는 핀잔을 받거나, 명절 내내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을 테지만, 이날은 동요가 아니라, "진달래꽃"이나 "내 생에 봄날은 간다" 같은 유행가를 불러도, 민속춤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굴러들어온 춤인지도 모르는 개다리춤을 추어도, 어른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날이지 않은가!

"아까 잘 못 불렀는데, 다시 한 번 더 부르면 안 될까요?" "춤을 젤 잘 추는 어린이에게는 상품을 잔뜩 줄 테니까, 한 번 신나게 흔들어 봐!" 사회를 맡은 김창용(44)씨는 아무래도 애들 궈삶는데는 귀신이다.  잔치는 역시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닐까?
"아까 잘 못 불렀는데, 다시 한 번 더 부르면 안 될까요?" "춤을 젤 잘 추는 어린이에게는 상품을 잔뜩 줄 테니까, 한 번 신나게 흔들어 봐!" 사회를 맡은 김창용(44)씨는 아무래도 애들 궈삶는데는 귀신이다. 잔치는 역시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닐까? ⓒ 김용한

이 날은 돈을 써도 기분 좋은 날이다. 예전처럼 새끼줄에 매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흉내는 냈으니까, 비록 돈 만 원을 냈을 망정, 내 이름이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바람에 가벼이 흔들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 이만큼 살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주는 것이니까.

바람에 펄럭이는 기부인들 명단. 이런 날은 돈을 내는 사람은 내서 즐겁고, 못 내는 사람은 공짜로 놀아서 즐겁다.
바람에 펄럭이는 기부인들 명단. 이런 날은 돈을 내는 사람은 내서 즐겁고, 못 내는 사람은 공짜로 놀아서 즐겁다. ⓒ 김용한

오랜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안부를 묻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하는 인사를 들으셔서 그런가? 노인회장님은 노래자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발써 취하셨나 보다. 인사말씀을 하시는 폼이 영 혀가 꼬이시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허리를 뒤로 제껴가며 박수를 쳐 대는 그 열기에 기분이 '업'되셔설까? "동네사람덜, 고마워! 청년덜두 고맙구, 부녀회원덜두 고마워! 다덜 고마워!"를 되풀이하신다. 연단에 오르내리실 때 부추김을 받으신 것은 꼭 연세 때문만은 아니고, 이 어르신을 기분 좋게 취하게 하신 알콜님 덕분일 게다.

올해가 2회째임을 알려주는 저 현수막은 2002년에서 마지막 2자 위에 3자를 덧씌워서 만든 것이다. 1년 동안 어디서 오늘을 기다렸을까? 4자를 덧씌우게 될 내년 한가위 때까지는 어디서 기다릴 것인가? 그 날도 오늘의 이 모든 어르신들을 다 뵈올 수 있을까? 모두모두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함께가는둥근세상 댕구리협동조합 상머슴 조합원 아름다운사람들식품협동조합연합 의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