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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작업복 - '블루셔츠'
ⓒ 조명신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네 번째 '초보목수이야기'를 언제 썼나 찾아봤더니 지난 2월이더군요. 어느덧 7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시간표로 따지자면, 봄학기와 여름방학을 지나 이제 다시 가을학기입니다. 땀을 한 말은 쏟아야 지날 것만 같았던 무더운 여름도, 식을 줄 모르는 듯 변함없이 따가웠던 텍사스의 열기도, 이제 서서히 물러가고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화씨 100도를 넘나들었던 텍사스의 여름을, 이제는 일상인 듯 아무렇지도 않게 목공일을 벗삼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일들 속에서 느꼈던 단편적인 생각들이나 감상들을 글로 옮겨 적기에, 태양은 너무나 눈부셨고, 대기는 일찍부터 더웠으며, 저는 너무 게을러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을학기가 시작하고 나서야 서서히 지나가는 여름을 주섬주섬 챙기며 정신을 차려가고 있으니까요.

부정기적으로 아주 가끔씩 써내려가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목수이야기'이니만큼 목수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여름 동안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도, 제 생각의 날이 무뎌진 탓인지 딱히 한 가지 일을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벽을 고치고, 바닥을 갈고, 천장을 수리했던 목공일 가운데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바로 '그 일'을 찾아내기가 말입니다.

▲ 목공소
ⓒ 조명신
자, 그럼 오늘은 '머피의 법칙(Murphy's Law)'에 대응하는 '폴의 법칙(Paul's Law)'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아마도 머피의 법칙에 대해서는 다들 한번씩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머피의 법칙이란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뜻으로 일이 예상과는 달리 자꾸 꼬일 때 사용하지요.

그렇다면 '폴의 법칙'이 무엇인지 궁금하시겠군요. 폴은 다름 아닌 저와 일하는 동료입니다.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든 백인 아저씨이자, 얼마 전에 박사과정에 들어간 늦깎이 학생이지요. 물론 저처럼 '파트타임'으로 학교 목공소에서 일을 하고 있지요.

'폴의 법칙'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 나니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가 임의로 만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주 사소한 일을 경험삼아 말입니다.

제가 일하는 목공소는 학교에 속한 건물들과 아파트들의 유지보수를 전담하는 곳으로서, 작업지시서에 따라 두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함께 일을 합니다. 트럭을 몰고 일할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이나 각종 자재들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기껏 일할 곳으로 갔는데 한 두 가지 빼놓고 온 물건들이 있으면, 누군가가 다시 트럭을 몰고 목공소나 자재창고로 돌아가서 가져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 조명신
며칠 전에 목공소에서 일할 곳으로 출발하려는데, 벽에 나사못을 고정시켜주는 '앵커(anchor)'라는 고정재가 두 개 필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자재창고로 가서 한 갑을 꺼내기에는 너무 적은 분량이라서, 마침 곁에 있던 폴에게 앵커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몇 개가 필요하냐고 묻길래 두 개라도 대답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해놓고 어디선가 세 개를 가져왔습니다.

별 생각없이 앵커 세 개를 받아서 가려다가 두 개면 된다고 재차 말했더니, 돌아오는 폴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네가 두 개를 가져가면 한 개가 부러지거나 해서 분명히 세 개가 필요할 것이고, 세 개를 가져가면 별일 없이 두 개만 사용할 것이라는 이야기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너는 당연히 세 개를 가져가야 한다는.

그 자리에서는 기막힌 논리라며 웃고 말았지만, 트럭을 타고 일하러 가는 동안 폴의 이야기는 여운이 되어 제 뇌리에 남았습니다. 두 개를 준비하면 늘 세 개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때때로 경험하게 되는 '머피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세 개를 준비하면 된다는 '폴의 법칙'으로 대응해나가는 것은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것이 '폴의 법칙'이건 '철수의 법칙'이건 간에 그 명칭이 중요하지는 않겠지요.

폴이 자신의 경험과 삶을 바탕으로 제시해준 작고 사소한 제안에 제 자신과 주변을 비추면서 돌아보곤 합니다. 더 이상 머피만 탓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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