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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수 천 만명의 국민들이 고향을 찾는 추석대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추석이 서러운 사람들 중에 탈북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비춰질 한가위 밝은 달은 북녘 고향에 대한 애닯은 그리움만 사무치게 할 뿐이다.

▲ 탈북자 최씨는 하루빨리 추석을 가족 모두가 함께 할 날만 바라고 있다.
ⓒ 김종호
최근 탈북자 동료와 함께 새롭게 둥지를 튼 탈북자 최기만(가명·63·여수시 화장동·남)씨. 올 추석에는 동료 탈북자들과 함께 북녘 고향을 향해 소주 한 잔 채워놓을 계획이다. 물론 서울에 있는 딸들에게도 갈 생각이다.

함경북도 새별군이 고향인 최씨는 몇 년 전 딸 둘과 중국으로 탈출한 후 줄곧 중국에서 숨어지냈다. 지난 2002년 5월 경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건너와 같은 해 8월 제2의 고향 여수에 도착해 여수시청 도움으로 현재 성실하게 직장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최씨의 마음은 항상 무겁다. 북녘 고향에 있는 팔십 노모와 중국을 거쳐 라오스로 들어가다가 적발돼 북한으로 송환된 아들의 생사여부가 가슴 한구석을 항상 짓누른다. 특히 요즈음 같은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쓰라린 마음 감출 수 없다.

최씨는 "북한에 남아있는 늙은 노모를 생각하면 불효를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들의 생사 여부만이라도 알렸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명절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최씨는 당시 북한 청진항에서 어선 항해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도 항해사의 경우 북한에서는 중간층에는 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재산을 모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94년 지병으로 숨진 아내의 병 간호를 위해 3년 동안 좋다는 약이며 병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남은 재산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같은 생활 때문에 큰딸의 뒷바라지를 하지 못한 것이 탈북 동기의 한 원인으로 이어졌다. 최씨의 큰딸은 북한에서 선호하는 직업중에 하나인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지만 엄청난 딸의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현재 큰딸은 서울에서 기거하고 있다. 중국으로 탈출해 공안에 적발돼지 않기 위해서 그곳에서 남자를 만나 생활했지만 이제는 정이 붙어 다시 만나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최씨는 "그나마 바람이 있다면 우리 딸아이가 중국에 있는 사위와 만나 같이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요즈음 추석이 다가올수록 최씨는 소주를 들이키는 횟수가 늘고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도 이것저것 준비하는 주위 사람들을 볼 때면 북한에 있는 노모와 아들이 그리울 뿐이다.

그래도 하루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 최씨는 "추석이 다가올수록 헤어진 가족 생각이 간절하다"며 "가족들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며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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