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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는 이맘 때 추석빔을 준비하셨지요.
어머니는 이맘 때 추석빔을 준비하셨지요. ⓒ 김강임
포목점과 옷가게에는 추석빔을 준비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색동옷을 만져보며 흥정을 한다. 일곱 색깔 무지개로 만든 색동옷을 어린 시절 나는 때때옷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추석빔을 입을 사람도 없는데 괜히 그 앞에서 서성거린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맘때 어머니께서는 추석빔을 준비하셨다. 어린 시절 내가 입었던 추석빔은 색동저고리와 색동고무신. 그 옷을 입고 동네 어귀에 나가면 지나가는 어르신네께서는 "참 곱기도 하지"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어리석게도 나는 정말 내가 얼굴이 예뻐서 그런 인사를 받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어른이 되고 보니 그 '곱다'는 표현은 내 얼굴이 고운 게 아니라, 색동저고리와 색동고무신이 곱다는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만원에 운동화가 한컬레
1만원에 운동화가 한컬레 ⓒ 김강임
' 1만원에 운동화가 한 컬레'. 축구화와 운동화, 조깅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속된 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애들은 메이커를 따지며 몇 십 만원 호가하는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는데 사실인가 보다.

예전에 우리 자랄 때는 추석 때 운동화 한 컬레 얻어 신으려고 얼마나 엄마 아빠를 졸랐던가? 어쩌다 새 신을 신는 기분이란 펄쩍펄쩍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아도 모자랐으니.

지루한 장마끝에 탐스럽게 익은 과일
지루한 장마끝에 탐스럽게 익은 과일 ⓒ 김강임
지루한 장마 끝에 탐스렇게 익은 과일이 만추를 느끼게 한다. 지난 여름 장마 속에서도 빨갛게 익은 사과와 복숭아와 포도가 농부들의 손끝에서 익어갔을 생각을 하니 피와 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한 바구니에 5천 원이라니 이 정도면 값이 싼 것인지 비싼 것인지.

지나가던 아주머니 몇 분이 사과 한 바구니를 산다. 그리고 사과 한 개를 씻지도 않고 옷에 문지르더니 '아삭'하고 깨문다. 먹어보지 않아도 새콤한 냄새가 군침을 삼키게 한다.

조기.도미.오징어도 싱싱해 보이네요.
조기.도미.오징어도 싱싱해 보이네요. ⓒ 김강임
생선 시장에도 조기와 도미, 오징어가 선을 보이고 있다. 조기와 도미는 살이 통통히 쪄있다. 추석 상에 올리기엔 딱 안성맞춤이다. 생선을 유난히 잘 드셨던 어머님 생각이 난다. 물론 밥상에 생선이 올라오면 꼬리와 머리만 먼저 잡수셨던 어머니. 그때 나는 어머니께서 생선 머리와 꼬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몇번이나 만지작 거리며  흥정만 하는군요.
몇번이나 만지작 거리며 흥정만 하는군요. ⓒ 김강임
옷을 파는 가게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집안식구들 내의를 준비하기 위해 나온 아주머니는 계속 "이것은 얼마요. 저것은 얼마요"하며 가격만 물어보니 물건 파는 사람 짜증만 나겠다. 더구나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살 생각은 하지 않으니 서로가 답답할 지경이다.

오일시장에는 사지는 않고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추석이 풍요와 감사의 명절이라 하지만 올해는 특히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값을 흥정하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야채 팔아 " 손주들 용돈도 줘사 주!"
야채 팔아 " 손주들 용돈도 줘사 주!" ⓒ 김강임
제일 손님이 많은 곳은 그래도 야채시장이다. 텃밭을 일구어 그 열매를 따온 시골 이주머니들의 모습. 햇빛에 그을린 얼굴 표정이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파, 마늘. 애호박 등을 가지고 나오신 할머니. 할머니에게 가서 애호박 2개를 샀다. 그리고 할머니께 " 할머니, 이거 팔아서 어디다 쓰세요"하고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 고향 찾아오는 손주들에게 용돈도 줘사 주!"하고 말한다. 이마에 쌓인 주름만큼 그리움이 있다. 자식들을 기다리며 보고싶어하는 마음 때문인지 그들은 벌써 한가위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그래서인지 오일시장에 가면 삶의 애환이 묻어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아날로그 정취
보기만 해도 시원한 아날로그 정취 ⓒ 김강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1만5천 평의 재래시장을 다 돌아보기엔 목이 탄다. 시장 한복판에 얼음물에 담가놓은 음료수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얼음이 쏟아져 나오는 냉장고. 컵만 갖다 대면 시원한 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정수기에 비하면 이곳 재래시장에서는 아날로그의 정취가 흐른다.

벌초하기 위해 낫과 밀집모자를 샀지요.
벌초하기 위해 낫과 밀집모자를 샀지요. ⓒ 김강임
나는 일요일 벌초를 하기 위해 밀집모자와 낫을 샀다. 에누리를 해 봤지만 어림도 없다. 요즘 오일시장은 예전만큼 에누리나 덤으로 얹어주는 프리미엄이 인색해 졌다.

민속 오일시장은 만물상이다. 물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것에 비하면 번거롭기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가을볕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누렁이와 흰둥이
가을볕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누렁이와 흰둥이 ⓒ 김강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도 가을 햇빛에 무료함을 달랜다. 흰둥이는 새 주인을 기다리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검둥이는 새 주인 만나기가 두려운지 계속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다.

푸짐한 음식이 준비된 먹거리 장터에는 순대며 국수, 꼬치를 장만해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이곳 재래시장 장터에 오면 사투리가 어우러진 시골 인심에 느긋함을 배운다.

그 옆에는 노랗게 익은 달덩이 같은 호박이 마치 풍년을 기약한다. 둥그렇게 잘 익은 호박만큼이나 내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올해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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