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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토) '경산사람들' 동성로 공연 현장
지난 23일(토) '경산사람들' 동성로 공연 현장 ⓒ 허미옥
두 아이의 엄마인 양경순(34)씨는 그룹사운드 '경산사람들'(회장 강정수)에서 드럼을 담당하고 있다. 경산민주청년회 회원 활동 중에 경산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문화의 소외지역 경산을 바꿔보자'는 다부진 각오로 이 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풍짝풍짝 쿵' 드럼소리와 '깨깨갱' 꽹과리 소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경산사람들에 가입하기 이전에 그녀는 장구와 꽹과리를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동일한 타악기인데, 두드리다 보면 뭔가 통하겠죠“하며 드럼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경순씨. 지난 2일(화) 경산지역 한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꽹과리와 드럼의 묘한 조화

현재 경산사람들은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신입단원 3명이 뭔가 일을 낼 듯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소년소녀가장돕기' 첫 자선공연을 시작으로 경산지역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경산사람들. 9월에서야 공식 창단한 경산사람들 자선공연이외에도 각종 시위, 집회 등에 단골 초청손님이 되었다.

올해초 경순씨는 경산사람들 홈페이지게 “신입단원 모집하지 않나요“하며 가입의사를 밝히게 되고, 가뜩이나 단원이 없어 고민하던 경산사람들 측에서는 “웬일이냐“며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신입여성단원 3명이 가입하면서 경산사람들의 활동 폭이 훨씬 더 넓어졌다.

'경산사람들' 주류 3인방(좌로부터 이경용, 도이정, 그리고 양경순씨)
'경산사람들' 주류 3인방(좌로부터 이경용, 도이정, 그리고 양경순씨) ⓒ 허미옥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도이정, 이경용 단원은 예전에 악기도 다뤄봤기 때문에 쉽게 적응하지만, 전 드럼이 처음이거든요. 이 바닥 정서에 의하면 드럼채를 잡기 전에는 자동차 폐타이어를 6개월 정도 두드리면서 연습해야 한다더군요 그 후 세팅된 드럼에 앉게 되는데, 전 그 과정 없이 곧바로 드럼채를 잡기 시작했죠“

그만큼 경산사람들에게는 ‘드러머‘가 급했다고 한다.

“이전부터 장구와 꽹과리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드럼을 익히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다“는 경순씨는 “꽃다지 음반에 보면 ‘강‘이라는 곡이 있어요. 여기에는 사물, 나발 등 온갖 악기가 동원되어 묘한 조화를 이루거든요. 드럼과 꽹과리를 통해서 이 조화를 이뤄보고 싶어요“라고 한다. 드럼을 배우는 중에 그녀는 다시 꽹과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타악기 둘이 만나는 아름다운 협연을 준비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지만 '배꼽 빠질 정도로 웃기는' 공연 중 일화

경산사람들은 무척 어렵다. 모든 시민단체나 문화운동단체가 그렇듯이 주머니 털어서 장비를 구입하고, 또 주변사람들에게 거의 강압(?)적으로 후원금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그룹사운드이니만큼 경산사람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악기.

경순씨는 “저희가 공연장에 들고 나가는 악기는 대부분 연습용 악기에요. 소중한 듯 꼭 안고 나가지만 연습용 악기가 가지는 사운드의 한계는 있거든요, 그래서 공연을 끝내고 나면 웃지 못할 일화들이 많습니다“고 말한다.

얼마 전 경북병원노동조합 파업전야제 공연. 경순씨는 “처음으로 앵콜을 받았던 공연“이라며 가슴 벅찼던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그 열광적 분위기 속에 드럼과 씨름했던 말 못할 사연을 털어 놓았다.

"공연 마지막 부분에 투쟁가 메들리를 불렀어요. 병원노조 관계자, 그곳에 있던 대부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죠."

마치 유명가수 라이브 콘서트 같았던 분위기 속에 경순씨는 자꾸만 밀려나가는 드럼의 대고(북)를 손으로 잡아 다시 제자리에 놓는 일을 여러번 반복해야만 했다.

병원 바닥이 미끄럽기도 했지만 드럼의 대고(북)를 고정시키는 핀이 없었기 때문에 신나게 연주하다가 대고 소리가 약해지면 연주를 잠시 멈추고 대고를 끌어당겨야 했던 것. 투쟁가 메들리이고 공연장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잠시잠시 끊어지는 드럼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동성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양경순씨. '한반도'기가 드럼 앞에 위치한 이유는 뭘까 ?
동성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양경순씨. '한반도'기가 드럼 앞에 위치한 이유는 뭘까 ? ⓒ 허미옥
두 번째는 지난 23일(토) 동성로 공연. U대회 북측선수단 참가로 대구지역 전역이 한반도기에 들떠 있을 때 경순씨의 드럼 대고 앞에도 ‘한반도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북측 선수단과 응원단을 환영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말 못할 또다른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드럼 앞부분 대고에 뮤트 즉 소리를 조정하기 위해 담요나 천을 넣어서 빈 공간을 메우죠. 즉 봉이 대고를 때리면 ‘둥~‘이라는 소리를 내지 않고 ‘턱‘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그룹사운드는 이런 작업을 하고 대고 앞에 ‘피‘를 대 대고를 채운 천, 담요 등을 보이지 않게 숨긴다.

경순씨는 “우리는 그 피가 없는 거에요. 만약 한반도기가 없었다면, 대고 안을 채운 담요, 천 등이 모두 보이는 상태에서 공연하게 되죠.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멋진 드럼 바로 앞부분에 위치한 대고를 보면 다양한 불순물이 구겨져 채워져 있는 것을 그대로 보니깐“

‘피‘로서 가려야 하는 부분을 ‘한반도기‘로 어설프게 가렸지만, 그 나름대로 분위기는 괜찮았다고 한다.

문화의 불모지, 경산을 바꾼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대도시가 문화적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소외된 곳은 대도시 근교의 중소도시다. 경산도 그 경우에 해당한다. 아파트 단지가 꽤나 많지만 이 곳 입주민 대부분 생활권은 대구다. 저녁에 잠자러 들어오는 것 말고는 일, 생활, 쇼핑, 문화공연 등을 누리는 곳은 대구일 수 밖에 없다.

"경산은 대학가가 많아 음악이나 풍물 등 문화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경산지역 자체에도 풍물 인구들은 꽤나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시민들과 함께 어울린다면 경산자체가 조금은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흥겨운 음악 속에 서로 어울리다 보면 이웃에 대한 정도 생기고.“

그 가능성을 지난번 남천 강변 공연을 통해 확인했다는 경순씨. 한강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있듯이 경산을 관통하는 남천 강변 주변 에도 고층아파트가 즐비하다. 얼마전 ‘소년소녀가장돕기‘를 위해 무대를 짜고, 엠프를 아파트 쪽으로 향하고 자선공연을 시작했다.

저녁 서늘한 강바람을 느끼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고, 음악소리를 듣고 나온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음악회를 만들어냈던 그날 밤. 딱 한시간 동안 공연했는데 모인 수익금은 50여 만원. 10원, 100원, 1000원 등 다양한 화폐가 모여서 50여 만원을 만들었다.

“금액의 많고 적고를 떠나서 아마츄어 그룹사운드가 공연하는데 함께 즐겼던 시민들 그리고 크고 작은 금액을 기증해 준 시민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죠.“

“문화를 즐긴다는 것이 이런 것인 것 같습니다. 유명 가수가 온 공연장에서 열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웃사람들과 함께 여유있게 한 순간을 즐기는 것, 그런 것 아닐까요? 뿐만 아니라 공연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웃사촌이라면 더 쉽게 어울릴 수 있죠. 경산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녀의 삶, 그리고 경산사람들

문화의 불모지 경산을 바꾸는 일꾼 양경순씨
문화의 불모지 경산을 바꾸는 일꾼 양경순씨 ⓒ 허미옥
두 자녀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그룹사운드의 드럼담당으로 그녀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일단 공연 일정이 잡히면 엄마로서 경순씨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 문제. 공연 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3~4시간씩 연습해야 한다. 그 시간동안 경순씨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다.

“연습실에 그냥 방치(?)해둬요. 자기들끼리 잘 놀거든요.“

엄마는 드럼을 치고, 아이들은 연습장을 어지럽힌다. 여기에 기타리스트 이경용씨의 아이도 함께 어울린다. 하지만 그 혼란스런(?) 공간 속에서도 나름대로 질서는 유지된다.

리듬 연습을 위해 ‘식탁을 너무 두들겨 깨먹기도 하고‘, ‘TV를 보면서도 채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는 경순씨. 그녀의 팔 근육은 ‘짝퉁이(?)‘다. 자주 쓰는 오른쪽 팔에는 근육도 있고 튼튼한데 반해 왼쪽 팔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최근 경산사람들은 새 둥지를 틀었다. 도심 속 방음되지 않은 사무실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연습하다 보니 악기 상태도 말이 아니다. 악기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야 하는데 연습용 악기에게는 너무 힘든 일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연습실은 지하다. 지하 습기로 인해 혹시나 기타줄이 녹슬까 걱정한다지만,그녀는 새둥지에 꽤나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안정적 연습공간이 생겼다는 기쁨과 함께 새 연습실 보증금 일부분을 그녀의 남편 김현욱(90년 경산대 총학생회장·대경총련의장 권한대행)씨가 선뜻 제공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4년, 경산지역에서 문화단체 네트워크를 구성해 볼 예정입니다. 경산에 있는 그룹사운드, 풍물, 개그동아리 등 모든 문화게릴라들이 함께 모여 흥겨운 잔치마당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운영비는 각자 담당한다. 이밖에도 공연기획, 연습, 악기세팅, 철수까지 그룹사운드 경산사람들 각 구성원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너무 많다. “공연이라 하면 흔히들 유명 가수 한두 명 불러다가 노래 몇 곡 부르고 박수 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 경산사람들의 꿈“이라는 경순씨는 “문화의 불모지 경산을 바꾸는 우리들의 노력에 더 많은 사람의 동참을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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