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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로판 싱귤러>의 4명의 보이지 않는 남자들
<셀로판 싱귤러>의 4명의 보이지 않는 남자들 ⓒ mizu to abura
때는 한밤중, 한 남자가 책을 읽고 있다. 밤의 긴장감이 온몸을 타고 흐는 침묵의 순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책읽기를 그만둔 채 자기 속의 자기를 찾아 나선다. 존재감이 없어 보이지 않는 남자들.

2003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초청돼 공연을 시작한 일본 공연팀 <미즈 토 아부라(물과 기름이라는 뜻)>의 한국 첫 공연작 <셀로판 싱귤러>의 초반 부분이다. 이 작품은 2001년에 프린지 문화예술축제로 유명한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헤럴드 엔젤 어워드를 수상한 이래 유럽 각국과 미국, 호주 등에서 수차례 상연돼 왔다. <미즈 토 아부라>의 이번 공연은 올 하반기 월드 투어의 첫 시작이며 아시아 나라에서의 첫 공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독립된 8개의 에피소드를 '어떤 남자'가 꾼 꿈과 환상으로 표현해 하나의 연결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 남자의 꿈과 환상을 통해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공포감으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광기, 모순, 욕망을 표현해낸다.

무대 위 등장인물인 4명의 보이지 않는 남자들은 검은 수트와 세련된 모자, 가죽 가방을 들고 무대를 누빈다. 힘이 넘치는 마임과 강렬한 몸동작으로 8개의 에피소드 속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모습을 알기 쉽게 표현해낸다. 이 작품의 원제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의미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점점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인간을 의미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남자'라는 원제가 <셀로판 싱귤러>가 된 것은 해외 공연 때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라고.

<셀로판 싱귤러>
<셀로판 싱귤러> ⓒ mizu to abura
한밤중처럼 온통 검은 무대 위에 검은 옷으로 치장한 네 남자가 나와 보여주는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매트릭스> 같은 가상공간의 그것과 닮았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역전(逆轉)'에서는 마임 동작을 통해 바닥과 벽, 천장이 역전하는 가상공간의 모습과 길거리에 떨어진 책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그것을 받아야만 하는 남자의 운명, 그리고 그 남자로부터 전화벨이 울리는 책을 빼앗으려는 남자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 자신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미즈 토 아부라>는 이번 작품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매우 평범한 보통사람, 혹은 나 자신, 그리고 관객의 기억들이 합쳐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코믹하며 거기에 힘이 넘치는 미즈 토 아부라의 <셀로판 싱귤러>, 외국에 나가지 않고서는 보기 힘든 독창적인 마임이며 그리고 매트릭스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보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작품이다.

공연은 4일부터 7일까지 홍대 근처 창무 포스트 극장에서 매일 오후 4시, 딱 한 번만 공연된다.

문의 02-325-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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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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