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로부터 기생이라면 단연 대동강변 부벽루의 절경에 걸맞는 평양기생이 으뜸이었다. 평안남도 평양시 모란대(牡丹臺) 밑 청류벽(淸流壁) 위에 자리잡은 누각 부벽루(浮碧樓). 모란봉을 깎아 세운 절벽아래 푸른 물에 떠있는 듯 서 있다는 부벽루는 인근 을밀대와 능라도를 포함해 평양 8경중 하나다. 고려 시인 김황원이 부벽루에서 황홀한 절경을 시로 표현하다 포기하고 그만 붓을 꺾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30년대에 한성(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탁월한 세 명의 기녀(妓女)가 모두가 평양 기생학교 출신이었다. 달처럼 고운 용모는 기본이요, 서화(書畵)를 갖추고 가무(歌舞)에 능한 것은 물론 몸과 마음의 정조(貞操)를 지키는 기녀의 도덕율(妓道)까지 겸비했다니 당대의 선비와 관리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송강의 관동별곡을 읊었다는 강릉 기생이 있고, 사서삼경을 유창하게 외웠다는 안동 기생이 있기는 하나 남자들의 눈길을 끄는 기색(妓色)은 단연 평양이 선두에 섰던 시절이었다.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있듯 일본에는 동남경녀(東男京女)라는 말이 있다. 관동지방의 남자가 미남이요, 쿄토의 여성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최근 북에서는 북남북녀라는 용어가 쓰인다고 한다.

최근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세계 대학생 체육 경기대회)에 참가한 300여 명의 북한 미녀 응원단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꽃미남이 한 때 뜨더니 요즈음 꽃미녀란 칭호를 유행시킨다. 동족간에 느끼는 보이지 않는 친근감의 표현이다. 정치적 이념과 핵문제를 떠나 스포츠를 통해 순수한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반가운 마음이야 이를 데 없다.

붉은 악마를 떠올리는 붉은색의 티셔츠를 차려입고 '반갑습니다'와 '옹헤야'를 합창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북측이 "우리는~"이라는 구호를 외치면 남측은 "하나다~"라는 구호로 답한다. 파도타기가 이어지면서 대형 한반도기가 양측 응원석을 넘나들며 이념의 벽을 깨고 동포의 정을 전한다. '하나가 되는 꿈'이라는 주제 아래 남북한 동시 입장이 이루어졌고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이라는 구호가 대구벌을 달구고 있다.

북한 선수단 경기의 입장권이 연일 매진되는 가운데 외신은 베이징 6자 회담을 앞둔 현실에 이상 기류라며 꼬집고 있다. 어찌 그것을 이상 열기라 할 수 있으랴. 민족의 분열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의 차가운 가슴에서 튀어나온 무미건조한 분석이다.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에서 풍기는 한민족 고유의 맑은 정서를 그들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아쉬운 것은 남북의 만남이 언제나 그렇듯 한시적인 것에 그치며 또한 기약없는 이별의 앞에 있다는 점이다. 남북이 갈라선지 반세기요 그 통합의 기약이 묘연(杳然)한 가운데 열린 스포츠 축제 마당이건만 이산(離散) 스포츠의 만남이므로 대회의 폐막은 곧 이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추석을 보름 앞두고 500만 실향민과 1000만 이산가족은 오늘도 고향 성묘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필자의 선친을 포함해 북에서 내려와 지금까지 고향 땅의 두고온 가족을 그리다 작고한 실향민들의 한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였다. 북녘을 향해 조용히 읊조려 본다.

북녀들이여~

그대들의 돌아서는 검정색 치마폭에
실향민의 애타는 그리움과 상념을 담아
고향산천 가는 길목 강과 들녘에
추석맞이 조상님들 쓸쓸한 제단에
두루두루 풀어 펼쳐 전해 주시오.

대동강변 부벽루여 을밀대 모란봉아
평양기생 섬섬옥수 따라주던 평양 청주
한사발 정성으로 부어 담아서
남포 앞바다에 띄워 주시면

그나마 이루지 못한 망향의 한을
서해 바다 뱃머리에 불러 보겠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라스베가스의 부활을 꿈 꾸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