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송성영
아내가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을 본체만체하고 불퉁하게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곧바로 설거지를 시작했고 '딸그락 딸그락, 우당탕'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려왔습니다. 아내와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 날 밤이었습니다. 일에 지친 몸으로 빈집처럼 휑한 집에 돌아와 먹을 것이 없어 라면을 찾고 있는데 때마침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던 것입니다. 전쟁의 발단은 거기에서부터였습니다.

"저녁 먹었어?"
"아직."
"내일 아침 일찍 첫차 타고 갈게, 아이들 그림도 가르쳐야 하고 …."

아내는 다소 미안한 투로 말했습니다. 나는 거기에 대고 다짜고짜 툭 쏘아붙였습니다.

"도대체 라면을 어디에 둔 거여!"
"거기 쌀통 옆 칸에 보면 있는데 …."
"에이, 알았어! 애들이나 좀 바꿔 줘."
"애들 옆방에서 잘 놀고 있는데 …."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오그라들기 시작했고 나는 걷잡을 수 없을 만치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윽박지르듯이 말했습니다.

"거참, 바꿔 달라면 바꿔 줘, 맨날 어딨다구만 하구,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여, 지 애비한테 안부 인사도 시키지 않구 말야 …."

아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불러댔습니다. 내 기운에 감염된 아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저만치서 수화기를 타고 가늘게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화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해 유독 유난을 떠는 내가 나흘 가까이 아이들의 목소리 한번 못 들어봤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속도 몰라주고 '애들은 뭘 해?' 물으면 '어디 어디서 잘 놀고 있어"라며 통화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바꿔줄 생각을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내야 고의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연이 겹치다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열흘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처형네 집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축농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작은 아이 인상이 때문이었습니다. 처형네 집 근처에 축농증 치료를 잘 한다는 한의원에서 매일마다 침을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공주에서부터 서울을 지나 경기도 구리까지 침을 맞으러 간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습니다. 이곳 공주나 가까운 대전에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괜찮은 한의원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그 먼 곳까지 찾아갈 이유가 있는가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게 뽀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축농증 잘 낫게 한다는 한의원을 찾아낸 것도 아니었고 어쩌겠습니까? 군소리 없이 다녀오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작은 아이 콧병이 완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방학이라고 신나게 놀러간 것도 아닌데 열흘도 못 참고 화를 버럭버럭 냈으니 아내도 할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나 역시 아내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습니다. 아내가 해놓고 간 반찬이라는 게 김치와 오징어포를 버무려 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무렵 아픈 이빨이 도졌던 것입니다. 치통을 견뎌내며 며칠 내내 오징어를 씹고 있자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김치와 오징어포, 그 외에 먹을 만한 반찬이 없었습니다. 본래 나는 맹물에 밥 말아서 고추나 오이, 멸치 한 가지만 있어도 며칠 내내 잘 먹고 잘 살아갑니다. 그걸 잘 알고 있던 아내는 달랑 두 가지의 반찬만 해놓고 갔던 것입니다. 여러가지 반찬을 해놓고 가면 남기기 일쑤였으니까요.

거기에다가 밥벌이가 겹치기로 한꺼번에 몰려들었습니다. 밤낮으로 정신 없이 일에 눌려 있었는데 업친데덮친 격으로 하필이면 그때 웸인가 웜인가 하는 빌어먹을 놈의 바이러스에 습격 당해 컴퓨터조차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굶주린 짐승'의 상태로 빈집처럼 썰렁한 집에 기어들어와 꼬르륵거리는 배때기를 채우겠다고 라면을 찾았는데 그 놈의 라면조차 눈에 띄질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폭발 일보직전의 화약고에 아내가 전화를 걸어 불을 댕겼던 것입니다.

아내가 다 늦은 아침상을 차려놓고 막대기 부러지는 소리로 불렀습니다.

"밥상 차렸어, 밥 먹어!"

단 둘이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아내의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밥숟가락을 뜨다 말고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아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본래 화가 난 상태로는 아무 일도 못하는 나는 아내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지를 빤히 알면서도 시비조로 따져 물었습니다.

"왜 그러는데, 왜 오자마자 화를 내고 그러는 거여?"
" … …."

"미치겠네, 이런 상태로 어떻게 밥을 먹으라구,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여?"
"몰라서 물어! 어제 생각 안나? 당신이 어제 먼저 화를 냈잖아, 어제 밤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구 …."

"나도 화 좀 내고 살면 안 돼나? 내가 오죽했으면 라면 찾다가 짜증을 냈겠어? 당신은 왜 맨날 당신 생각만 하는 거여! 내 입장에서 생각 좀 해봐!"
"뭐라구? 내가 맨 날 나만 생각한다구? 당신은 몰라도 한참을 몰라 …."

"내가 그때 어떤 상태였는지 당신 알아? 이빨도 아프고 또 컴퓨터도 고장나고 …."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데 …."

"화를 내도 내가 내야 하는데, 왜 당신이 화를 내고 야단법석을 떨어!"
"화는 어제 당신이 먼저 냈잖아."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씨! 그만두자, 백날 말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 …."

나는 눈물을 훔쳐내는 아내를 보다가 숟가락을 팽개쳐 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날 오후 내내 아내는 화 기운을 꾹꾹 눌러가며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내가 처형네 집에 아이들을 맡겨 두고 집에 잠시 다니러온 것은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그림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오후 내내 빈둥거리며 아이들에게 그림지도를 하고 있는 아내의 초췌한 모습을 훔쳐보았습니다. 외양간을 고쳐 만든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편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열댓 명을 가르친다고 해도 아내의 그림지도 수입이 한 달에 30여만원에 불과하지만 남편의 밥벌이가 신통치 않을 때 요긴하게 쓰이는 비상금이 되고 있으니까요.

생각해볼 것도 없이 부엌일이며 빨래며 집안 청소며 아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아내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맥없이 '단식투쟁'을 하면서 사랑방 벽에 고집스럽게 기대앉아 새삼스럽게 그런 사실을 곱씹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다 떠나 보내고 사랑방 청소를 해주겠다며 청소기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몹시 지쳐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내도 나를 연민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싱겁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이구 죽겠다, 이제 그만 싸우자, 배도 고프고 힘들어 죽겠다 …."
아내가 화답하듯 덩달아 환하게 웃었습니다.

같이 웃어주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또 그간 내게 시달려 초췌해진 모습을 보니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청소기를 돌리는 아내에게 다가가 힘껏 껴안아주었습니다. 아내가 왱왱거리는 청소기를 멈춰 놓고 목 메인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이구, 결혼 안 한다고 혼자서 도 닦겠다며 산 속으로 도망 다녔던 사람 맞아? 이제 마누라 새끼 없으면 못 살겠다구?"

아내 말이 맞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화가 난 진짜 이유는 아내와 아이들의 빈자리 때문이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허전함 때문이었습니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리면 뒤집어엎어 고치면 될 것이고 반찬이 없으면 뚝딱 뚝딱 만들어 먹으면 그만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때는 속박처럼 다가왔던 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였는데 이제 '팔불출'이 다 되었나 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처형네 집으로 나설 때만 해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씩씩한 척 '나도 이제 해방된 공간을 누려 보자'했지만 막상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다 보니 화가 났던 것입니다. 가출한 아이처럼 가족들이 보고 싶어 공연히 화를 냈던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